'끈기'는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프로에게는 그보다 더한 '독함'이 있다
저는 영화를 좋아합니다. 만화책도 좋아하구요. 음악도 즐겨듣는 데요.
영화는 영화관에서, 만화책은 서점에서, 음악은 음반가게에서 공수를 합니다.
하지만 아직 계속 공부를 하고 있기 입장이기에 종종 이 비용이 부담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좋아하기 때문에 '끈기'있게 모으고 있습니다.
특히 용돈에 의지해야 했던 고등학교때는 점심을 굶는다던지와 같은 방법으로 모았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제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된다거나, 만화가가 된다거나 음악가가 된다거나 하기 위함은 아닙니다.
때로 나름대로 영상을 촬영하기도 하고 영화 시나리오의 소재가 될 만한 아이디어를 써보거나 기타를 연주를 할 때도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좋아하기 때문에 하는 수준에서입니다.
그런데 저는 석, 넉달에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했있었습니다. 당장에 써야 할 돈이 없었던 겁니다. 그렇다고 당장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설령 구한다고 하더라도 당장에 쓸 돈이 없었습니다.
저는 눈 앞에 닥친 일을 해결하기 위해 선택을 해야했습니다.
당시 제가 가지고 있던 자산은 그동안 모은 만화책, 도서, 음반, 블루레이 입니다. 물론 이를 판매하는 것은 상당히 마음이 아픈 일입니다. 판매한다고 하면 1/10정도 되는 가격에 팔 수 있는데다 무엇보다 그 동안 이를 모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죠. 저의 선택은 '판매한다'였습니다. 정말 아끼는 만화책과 블루레이 외에는 모두 판매했고 덕분에 당장의 급한 불은 껐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영화감독이나 만화가, 음악가를 지망했다면 혹은 그들이었다면 이런 선택을 했었을까요?
저는 '끈기'있게 그것을 모으기는 했으나 그것을 '독'하게 지키지는 못했습니다.
대학원 연구생은 무슨 일을 할까요?
네.. 연구를 하지요. 논문을 통해서요.
그러면 논문을 쓰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할까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쓰고자 하는 주제와 관련된 광범위하고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자료들을 모으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자료들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통해 연구를 해나갑니다.
그렇다면 '논문의 질'은 무엇으로 결정이 될까요?
물론 자료를 찾는 능력과 그것을 분석할 수 있는 눈-관찰력-입니다.
이 두 능력은 공통적으로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분석할 수 있는 눈이 있다고 해도 자료를 찾을 수 없다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고 또 아무리 풍부한 자료를 모은다고 해도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없다면 그 자료는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죠.
그러나 무엇보다도 눈문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입니다.
어떤 질문이요? 많은 질문이 있습니다.
' 과연 이 자료를 근거로 삼는 것이 타당한가?'
' 더 좋은 자료는 없을까'
' 심리학이나 철학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을까'
등등....
그리고 이 질문은 때로 연구자를 '딜레마'에 빠지게 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든 자료를 검토하고 이를 통해 2-3일 동안 밤을 새워가며 쓴 글을 뒤집어야 할만한 자료가 갑자기 나타나는 상황과 같을 때입니다.
당연히 옳은 선택은 어떤 노력이 있었든지 그 모든 것을 뒤집고 다시 쓰는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이 일이 눈 앞에 닥치게 되면 결단을 내리기 쉽지는 않습니다.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 즉 아마추어라면 이 때 큰 고민없이 기존의 글을 버리지 않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완벽함을 추구하는 프로라면 이 경우에 결단을 내리겠지요.
물론 이러한 경우가 자주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연구자가 논문을 쓸 때 자료를 전체적으로 검토한 후에 결과를 낼 수도 있겠지만 프로의 자세를 가진 연구자라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더욱 치열한 고민 끝에 결과를 낸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제가 항상 문제가 되는 지점은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는 점에 있었습니다.
그것을 깨닫는데 무려 3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그럼에도 깨달음만큼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독한 마음' 입니다.
우리는 때로
'저 인간 왜 이렇게 독해? 저렇게 까지 해야되는 거야?'
라는 말을 종종 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일인데 굳이 신경쓰는 것 같은 경우이지요.
물론 인간관계에 있어서 좋은 말만 주고 받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을 일도 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정말 사랑하는 그, 또는 그녀, 또는 자식, 혹은 같은 목적을 바라보는 팀원이라면 그들이 상처를 받을 것임을 알면서도 옳은 말을 해주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 때는 정말 독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끈기'는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프로는 '끈기'만으로 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독함'이 요구되요.
그래서 2016년 한 해 동안
저는 더 이상 물러터지지 않고 독하게 살아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