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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웅 Jul 07. 2023

'자유의지'는 '껍질'을 파괴한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스파이더-버스>에 대한 단상

#시작하기에 앞서

본 글에서는 <스파이더맨 유니버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스파이더-버스>의 개봉 후 2회차까지 관람하고 남기는 단상이면서 동시에 차후 <매트릭스> 시리즈와 함께 비교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미리 끄적여놓았습니다. 따라서 다소 두서가 없고 정리가 되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 글 중반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유의해주세요.


#다양성(다원성)과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

<스파이더맨 유니버스>의 시작을 알렸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를 분석하는 학계의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바는, 이 작품이 "평행세계의 다양한 스파이더맨의 모습을 '연출'하면서 다양성, 혹은 다원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스토리'로는 스파이더맨 서사 및 영웅 서사를 함께 공유하며 정체성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다양성' 혹은 '다원성'과 '정체성'에 대해 말하고있는 이 작품은 '다양성'이 요청받는 오늘날 시의적절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출처: 이용민(소니 픽처스 이미지웍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를 통해 본 새로운 3D 애니메이션 스타일 연구,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20(2), 2020, p.13

우리는 흔히 성격이 맞지 않거나 여러 (개인적인, 혹은 사회적인) 이유로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당신은 꼭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 같아" 라고 합니다. 이러한 관점이 감독의 의도에 따라 모든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애니메이션 장르인 <스파이더맨 유니버스>에서는 위의 그림처럼 각각 다른 세계의 스파이더맨마다의 다른 스타일의 연출로 표현이 되죠. 물론 이 작품에서는 스파이더맨마다 각자 멋있게 표현됨으로써 이 작품이 다양성과 다원성에 대해 어떤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일즈 모랄레스를 제외한 5명은 설정상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스파이더맨들이기 때문에 각기 다른 시공간에 따른 그들만의 스타일을 갖고 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이 부분을 서로 다른 렌더링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표현하였다. 마일즈는 80∼90년대 미국 코믹스 스타일을 차용해서 제작되었다. (중략) 스파이더 누아르는 30년대 코믹 스타일을 대변하는 캐릭터다. 흑과 백, 하프톤으로 명암을 표현한 누아르는 최대한 단순한 모습을 주려고 했다. (중략) 페니 파커는 재패니메이션 스타일에 2D와 CGI의 하이브리드 형태로 디자인됐고, 스파이더 햄은 그야말로 2D 카툰 그 자체다. 스파이더 햄 역시 음영이 존재하지 않는 단색의 2D 형태이기 때문에 항상 강한 조명이 뒤에서 그를 따라다니며 한 겹의 하이라이트를 더 해줌으로써 조명 효과를 살리고 시각적인 단순함을 줄이려고 노력했다. 
- 이용민(소니 픽처스 이미지웍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를 통해 본 새로운 3D 애니메이션 스타일 연구,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20(2), 2020, p.13에서 인용.

비록 현실에서 전세계에 다양한 사람이 살고 있고 이 작품에서도 많은 평행세계에서 다양한 스파이더맨이 살고 있지만 결국 이들은 모두 '인간' 혹은 '스파이더맨'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달라보여도 서로 함께 공유하고 있는 '정체성'이 이들을 묶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번 후속작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스파이더-버스>에서 부르는 '공식설정'은 지금의 '스파이더맨'을 존재하게 만드는 거역하지 못할 '운명'과도 같습니다. 

사실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도 스파이더맨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각자의 삶의 방식이 있고 가치관과 생각을 갖고 있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태어나면서 하나의 사회, 혹은 집단에 속하게 되고 그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면 그토록 다양한 인간도 유사한 방식의 삶을 살아가고 있죠.


#사랑, 자유의지, 그리고 혁명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와 비교하면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스파이더-버스>의 이야기는 좀 더 어두워지고 무거워졌습니다(반대로 연출면에서는 더 과해지고 유려하고 화려해졌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앞선 작품이 '평행세계'를 다루긴 했지만 주인공인 '마일스 모랄레스'가 살고 있는 '브루클린'이라는 도시 안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면 후속작인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스파이더-버스>에서는 본격적으로 '평행세계'를 넘나드는 이야기로 무대가 크게 확장되기도 했고 또 앞에서 이야기한 '운명'이 엮어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영웅'이 그렇듯이, 또 유독 '스파이더맨'은 항상 '외로움'을 겪어야만하는 운명이었습니다. 이는 이 작품에서의 마일스 모랄레스도, 다른 스파이더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마일스 모랄레스'는 다른 스파이더맨과 크게 다르지 않죠. 하지만 그는 다른 스파이더맨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 지금부터 강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본래 '마일스 모랄레스'는 스파이더맨이 될 운명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다른 평행세계에서 넘어 온 거미에 의해 능력을 부여받아스파이더맨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마일스 모랄레스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원래 죽지말았어야 할 스파이더맨이 죽고 모랄레스에게 능력을 준 거미가 살고 있던 세계에서는 스파이더맨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즉 스파이더맨 멀티버스를 관리하는 '미겔 오하라'의 말처럼 마일스 모랄레스는 '변칙점'(Original Anomaly)인 것이죠.


이 지점에서 떠오르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매트릭스> 시리즈의 '네오'입니다. '네오' 또한 매트릭스 세계관에서의 '변칙점'입니다. 사실 그 이전에도 변칙점으로 '네오'는 반복되어 존재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전임자와 달랐습니다. 그에겐 전임자에게는 없었던 '트리니티'라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네오'는 전임자와 달리 '시온'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트리니티'를 살리는 것을 선택합니다. 즉 '네오'는 변칙점의 변칙점이었던 것입니다. 세계가 나의 선택으로 멸망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는 선택을 한다. 이는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뿐만 아니라 워쇼스키 자매가 자신들의 작품에서 꾸준하게 강조하는 '사랑'의 높은 가치를 보여주는 사건이죠. 그런데 결국 '네오'의 선택은 인류가 멸망하는 결과로 나아가지 않고 '매트릭스'라는 기계가 만들어낸 시스템을 해체하는 결과로 나아가게 됩니다. 즉 혁명이 완성됩니다.


그럼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스파이더-버스>로 다시 돌아와볼까요? 

<매트릭스> 시리즈의 '네오'처럼 마일스 모랄레스 역시 동일한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스파이더맨의 평행세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스파이더맨의 '공식설정'을 따르고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그가 사랑하는 자신의 아버지를 구할 것인가를 두고요. 

그리고 '네오'와 마찬가지로 '마일스 모랄레스'는 아버지를 구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이 선택에 있어 마일스 모랄레스가 아버지를 깊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도 동기가 되지만 그가 "자신의 이야기는 나 스스로 만들어가겠다"라고 말했듯이 여기서 중요하게 바라보아야할 것은 그의 '자유의지'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스파이더-버스>에서 주목할 사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공식설정'대로라면 그웬의 아버지는 경찰서장이기 때문에 모든 스파이더맨 서사에서 그랬듯이 죽어야할 운명입니다. 하지만 딸인 그웬과의 관계가 무너지자 자신이 사명이라고 생각했던 경찰로써의 역할이 그의 인생에 있어 의미가 사라지고 이로 인해 그웬의 아버지는 경찰서장을 그만두기로 선택을 합니다. 그웬의 아버지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고 그는 자신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바꾸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결국 그의 선택은 그를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도록 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그웬'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그웬은 전작에서의 모랄레스와 마찬가지로 한층 더 성숙해지는 것이죠). 

이제 그녀는 그녀의 '자유의지'로 동료를 모아 '마일스 모랄레스'를 구하러 가는 선택을 합니다. 즉 이 작품에서 각 인물이 가지고 있는 '자유의지'와 그에 따르는 선택은 정해진 운명을 변화시키는 힘입니다(사실 <매트릭스> 시리즈의 3편 '레볼루션'에서 '네오'도 '자유의지'로 모든 것의 변화를 가지고 오죠. 그는 왜 끝까지 자신과 싸우냐는 '스미스 요원'의 질문에 답합니다. "그것이 내 선택이야"라고.. 어쨌거나 두 작품 모두 영웅 서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닮아있을 수 밖에 없겠죠. 이러한 이유로 또 우리는 이 작품들을 좋아하는 것이구요).


번외로 모랄레스의 선택을 보고 있으면 흥미롭게도 신세기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신세기 에반게리온: 파>에서 '이카리 신지'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그 또한 '아야나미 레이'를 구하기 위해 각성하면서 세계 인류가 사라질 수 있는 서드임팩트가 일어날 '뻔' 하죠.. 물론 보신 분인 아시겠지만 다음 작품에서 원래대로 돌아와버렸지만... <스파이더맨> 유니버스는 <매트릭스> 시리즈와 같은 결말로 나아갈지.. <신세기 에반게리온> 시리즈와 같은 결말로 나아갈지... 물론 어느정도 예상은 됩니다만... 결말은 나와봐야 아는 거겠죠.


#그럼에도 결국 보편성, '가족'이라는 이름은...

평행세계를 넘나드는 큰 세계관, 애니메이션만이 보여줄 수 있는 유려하고 화려한 연출, 이 작품에 환호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점을 언급하지만 제 생각에 결국 이 작품에 강력한 힘을 불어넣어주는 것은 '어른'과 '아이', 그리고 '가족'의 관계에 대해 깊이 다루기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웬의 아버지가 말했듯이 '부모'의 일이라는 것은 언제나 미스터리라는 것,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그만큼 가깝기에 다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분명히 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어른도 아이도 함께 성장해야한다는 것, 아이는 빨리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지만 어른은 세상이 그리 친절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떠나보내야할 아이를 걱정할 수 밖에 없는 것, 어떤 방향이로든 아이는 성장을 하고 이 성장이 부모의 입장으로써 아쉬울 수 있다는 것, 모든 세상이 나에게서 등을 돌려도 결국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라는 것, 이 모든 의미에 대해 이 작품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관객인 우리가 이 작품에 깊이 빠져들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호비브라운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스파이더-버스>에서 수많은 스파이더맨이 나오지만 '호비브라운'이 참 멋지더군요. 가면을 써도, 가면을 벗어도.. 그의 말처럼 24시간 내내 쿨한 그의 모습에 개인적으로 다음 작품에서 좀 더 많이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짧게 (그리고 강렬하게) 등장했지만 모랄레스에게도 그웬에게도 그는 조언자로써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다음 작품에서 멋진 역할을 맡을 듯 합니다(아마 그가 가면을 벗었을 때 모습은 '장미셸 바스키아'에서 따온 것이겠죠).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스파이더-버스>와 주제의식과 닮아있는 한국 음악

본 글을 쓰다보니까 이 작품의 주제의식가 닮아있는 한국의 음악이 떠오르더군요. 

고 신해철씨의 <껍질의 파괴>라는 넥스트 시절의 곡입니다. 아래에 가사를 적어봅니다.



부모가 정해놓은 길을 선생이 가르치는 대로 친구들과 경쟁하며 걷는다.

각본대로 짜여있는 뻔한 인생의 결론 향해 생각없이 발걸음만 옮긴다.

세상은 날 길들이려하네 이제는 묻는다. 왜

Fight! Be free!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이대로 살아야 하는가 Fight! Be free! The revolution of the mind!

껍질 속에 나를 숨기고 


생각할 필요도 없이 모든 것은 정해져있고 다른 선택의 기회는 없는가

끝없이 줄지어 걷는 무표정한 인간들 속에 나도 일부일 수밖에 없는가

세상은 날 길들이려하네 이제는 묻는다 왜

Fight! Be free!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이대로 살아야 하는가 Fight! Be free! The revolution of the mind!

껍질 속에 나를 


몸부림치면 칠수록 언제나 그 자리일 뿐 뛰어도 돌아도 더 큰 원을 그릴 뿐

세상의 모든 고통과 좌절과 분노를 내게 다오

영원히 마르지 않을 눈물을 핥게 하고 고독의 늪에서 헤매이게 하라

그럼으로써 내가 세상에 온 이유를 알게 하고 내게 주어진 시간이 다 가기 전에 내가 누구인지 말하게 하라 Fight! Be free!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이대로 살아야 하는가 Fight! Be free! The revolution of the mind!

껍질 속에 나를 숨기고


언젠가 내 마음은 빛을 가득 안고 영원을 날리라




*성민영, 배상준,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멀티버스에 관한연구: 양상 실재론의 개념을 중심으로, 2023 / 김기범, 디지털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스토리 구조 분석 연구: 스토리의 사건과 사물 요소를 중심으로, 2020 / 김윤경, <스파디어맨: 뉴 유니버스>의 만화 이미지 차용에 관한 연구, 201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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