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아이덴티티>에서부터 <본 얼티메이텀>까지 feat:<제이슨 본>
*본 글은 2017년 8월에 작성되었으나 처음 적었을 당시에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아 메모장에 한참을 넣어둔 글입니다. 언제 한번 보강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딱히 앞으로도 발전되지 않을 듯 하여 문장만 다듬어서 그대로 발행합니다. (<제이슨 본>이 feat. 인 이유는, 저장해둔 글이 아니라 글을 수정하면서 평소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짤막한 감상 정도로 정리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래된 작품이기에 처음부터 스포일러가 한가득입니다.
미국의 정보부 CIA에 의해 비밀리에 키워진 킬러,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능력을 지닌 '제이슨 본'
그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기억을 잃어버렸다. <본 아이덴티티>에서 제이슨 본은 그 기억을 쫓았고 그러는 도중에 '마리'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미국정보부는 그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어쨌거나 갖은 고초를 겪고 모든 것을 해결한 제이스 본은 '마리'에게 되돌아간다. 그리고 미국 정보부는 제이슨 본을 만들어냈던 트래드스톤 프로그램의 책임자 콩글린을 살해하고 해당 프로젝트 또한 지워버린다.
이어지는 <본 슈프리머시>.
'마리'와 함께 숨어지내며 행복한 삶을 보내는 제이슨 본이지만 그는 악몽을 꾼다. 그는 과거에 누군가를 죽였고 그 사실이 자신을 계속 괴롭힌다. 이때 프랑스에서 또다른 음모가 꾸며지고 있다. 전편의 책임자였던 '콩글린'을 살해했던 자가 자신이 과거의 저지른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그것을 밝히려던 미국정보부의 일을 방해한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러시아의 인물과 합작하여 이것을 제이슨 본의 짓으로 꾸미고 제이슨 본에게도 킬러를 보낸다. 제이슨 본을 살해함으로써 모든 상황을 그의 책임으로 돌리려고 한 것.
하지만 킬러는 본래 목적이었던 제이슨 본 대신에 마리를 살해하고 만다.
이렇게 진실이 뒤엉키면서 미국의 정보부가 제이슨 본을 쫓고 반대로 제이슨 본 역시 미국의 정보부를 쫓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이 후에 여러 사건이 지나고나서 결국 모든 진실이 밝혀진다. 제이슨 본을 음모에 빠트리려 했던 인물은 자살하고 러시아의 인물도 감옥에 수감된다.
제이슨 본 역시 사건이 해결되면서 자신을 끝까지 괴롭히던 꿈의 진실을 알게된다.
그리고 자신이 죽인 부부의 딸을 찾아가 진실을 밝힌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에게 진실을 밝혀야했다고 이야기하는 본. 그 역시 사랑하는 사람인 '마리'를 잃었고 과거의 일에 대해 강한 죄책감을 가진다.
<본 슈프리머시>의 초반으로 돌아와보자.
만약 제이슨 본이 이 음모에 휘말리지 않았다면 과연 그는 부모를 잃은 딸에게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까? 혹은 다른 누군가에게라도 진실을 알 수 있는 기회가 그 딸에게 주어졌을까?
만약 제이슨 본이 계속 숨어지낼 수 있었다면 이러한 진실을 밝힐 수 있었을까?
개인의 욕심(석유채굴권을 둘러싼)에 의해 기록에 남지 않는 임무를 수행해야 했던 제이슨 본은 임무였기에 그것에 따랐다(이는 그의 비공식적 첫 임무였다).
그러나 이 임무는 제이슨 본에게 죄책감으로 남아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고 기억을 되찾으며 모든 진실을 알게되었을 때 그는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제이슨 본은 결코 그 진실에 눈을 돌리지 않았고 자신이 살해한 부부의 딸에게 진실을 밝힌다. 그의 이러한 숭고한 행동은 '자살'하면서까지 "난 국가를 위해 충성해왔어, 죄책감은 없어" 라고 이야기하던 자와 비교가 된다. 그러나 그렇게 말한 자는 결국 죽었고 제이슨 본은 살아남았다.
여기까지가 <본 아이덴티티>(2002)와 <본 슈프리머시<2004>의 이야기이다.
잘 알려져있는 사실이지만 본 시리즈의 시작인 <본 아이덴티티>는 더그 라이먼 감독, 이어지는 <본 슈프리머시>는 폴 그린그랜스 감독으로 다른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각본은 '토니 길로이'로 같다)
그리고 필자의 경우 사실 제일 처음 본 시리즈는 2007년에 나온 <본 얼티메이텀>이다.
당시 군인이었던 나는 휴가를 나와 오랜 친구의 추천으로 영화관에서 이 작품을 감상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나 또한 센세이널한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 참지 못하고 당시 운영되고 있던 비디오(DVD) 대여점에서 <본 아이덴티티>를 빌려서 보고 또 이에 감동받아 당일 빌린 <본 아이덴티티>를 반납하고 바로 <본 슈프리머시>를 본 기억이 있다.
이러한 기억 때문인지 필자는 본 시리즈 중 최고의 작품을 항상 <본 얼티메이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 구매했던 블루레이로 전 시리즈를 다시 감상하며 <본 슈프리머시>에 대해 새롭게 보이게 된 것이 있다.
모든 시리즈에서 나오지만 특히 이 작품에서 제이슨 본의 '카 체이스'는 유독 고통스럽다. '카 체이스' 뿐만 아니라 모든 시리즈 중에서도 제이슨 본의 추격과정은 <본 슈프리머시>에서 가장 격렬하다. 그렇다면 더그 라이먼 감독으로부터 시리즈를 이어받은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왜 그러한 연출을 했을까?
아마 그에게 있어 사람이 '과거의 죄'와 마주하는 일, 과거의 죄를 피하지 않고 진실을 대면하는 일은 제이슨 본이 겪는 살이 발라지고 뼈를 깎는 고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고통 속에서도 그래야만 하는 것. 그것을 감독은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자. 그렇다면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뒤이어 연달아 맡은 후속편인 <본 얼티메이텀>에선 어떤 이야기가 관객을 기다리고 있을까?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설립된 미국정보부 CIA.
이들이 진행한 트래드스톤프로젝트와 그것의 실패 이 후 이름만 바뀐 블랙브라이어 프로젝트, 두 프로젝트는 모두 '국가를 위해' 라는 명분 아래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허용되는 프로젝트이다(<라이 투 미>드라마에서 나오는 대사처럼 항상 권력은 '필요'라는 이름으로 닦인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과 관련 요원들, 그리고 프로젝트에 관여되는 모든 사람들, 또 이로 인해 희생된 자들 등등, 제이슨 본의 기억상실증에 의해 어긋나기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결국 제이슨 본이 자신을 찾음으로써 그 끝을 맞이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제이슨 본은 옥상에서 자신을 죽이려했던 킬러와 마주한다. 킬러는 앞에서 자신을 죽일 기회가 있었는데 왜 죽이지 않았냐고 제이슨 본에게 묻는다. 그 때 제이슨 본은 킬러에게 말한다.
넌 왜 날 죽여야하는지는 알아?
우릴 봐, 저들이 만든 우리 모습을.
그리고 제이슨 본은 강으로 뛰어든다. 그 사이 그를 쫓아온 CIA 부국장은 그를 향해 총을 쏜다. 그러나 3일 간에 수색 끝에도 제이슨 본의 시체는 강에서 찾을 수 없었다. 마지막에 그를 향해 발사된 CIA 부국장의 총성은 제이슨 본은 이제 더 이상 없음을.. 즉, 그의 죽음을 의미한다. 이미 제이슨 본은 모든 기억을 되찾은 후에 자신을 만들어낸 박사에게 이야기했다.
난 이제 제이슨 본이 아니야
인류문명에서 동서양 구분없이 '강'은 죽은 자를 보내는 곳과 동시에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는 공간이다.
제이슨 본은 강에서 죽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찾았고 그 강에서 다시 태어났다.
<본 아이덴티티>는 제이슨 본이 어떻게 이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는지 보여주었고 <본 슈프리머시>는 제이슨 본이 자신이 저지른 과거의 죄에 대한 속죄를 말했다. 그리고 <본 얼티메이텀>에서 그가 그러한 과거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얻는 과정을 그렸다.
즉, 본 시리즈는 <본 슈프리머시>와 <본 얼티메이텀>으로 완전히 종결된 것이나 다름없다.
본 시리즈를 관통하는 문장은 아래와 같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인가?"
feat. <제이슨 본>(2016)
알려진 소식에 따르면 폴 그린그래스 감독과 제이슨 본 배역을 맡았던 '맷 데이먼'은 본 시리즈를 이어나가고 싶었지만 마땅한 시나리오를 발굴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본 시리즈는 <본 얼티메이텀>에서 완전히 종결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아마 굉장히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9년의 시간이 지나 나온 결과물이 <제이슨 본>이다.
작품은 좋았다. 그러나 앞선 시리즈의 완결성이 완벽했던 것만큼 조금은 아쉬웠던 점도 있었다.
이 작품에서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제이슨 본이 아버지에 관해 가진 기억을 끌어오면서 본 시리즈의 정체성은 이어나갔지만 이전 작품과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의 방향성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제이슨 본'은 <본 얼티메이텀>에서 온전한 자유를 찾았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았는데 이전 시리즈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끌어오면서 다시 자신을 잃어가는 모습의 제이슨 본의 모습이 처음에는 이입이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슈를 캐치했고 필자가 볼 때 그것은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세대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억압하는 구세대와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신세대 사이의 갈등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본 시나리오를 결정한 것은 최고의 선택은 아니었지만 시리즈의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보인다(그러나 '맷 데이먼'이 연기하는 제이슨 본은 더 이상 보기 어려울 것이고 그의 제이슨 본을 넘을만한 또 다른 '제이슨 본'이 등장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