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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한줄 Jan 20. 2022

지금의 수빈이에게

초등(고학년)부 동상 - 민수빈

13살, 지금의 수빈이에게


안녕 수빈아. 나는 누구보다 너를 잘 아는 수빈이야.

육 학년. 진짜 정말 먼 미래라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가까웠던 거 같아.

입학하자마자 육 학년, 딱 하면 막 엄청 어른스럽고 멋있고 그럴 줄 알았는데 막상 돼보니까 별로... 내 앞에 올 중학생, 고등학생, 성인에 비하면 한없이 작아 보인다. 그래도 많이 컸어. 요즘 부쩍 더 느끼는 것 같아.


집 정리를 하면서 그림일기, 뭐 어렸을 때 풀었던 문제집 그런 게 발견되었는데 읽어보니까 그땐 오히려 많이 큰 줄 알았는데 되게 어렸었더라.


수빈아 요즘 공부는 어때? 이제 육 학년이라고 중학교 갈 준비 해야 한다고 다들 그러지. 맞아 그렇지... 사실 본진도도 이해가 잘 안 되는데 준비까지 하려니까 너무 힘들다. 그렇지? 마냥 쉬운 줄로만 알았던 과목들도 이제는 힘들고... 고생이 많아. 특히 1학기 막바지~방학은 정말 힘들었었어. 솔직히 네가 단 한 번도 맞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점수들을 봤잖아. 그때 정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 여기까지가 내 한곈가...' 싶기도 하고 솔직히 멘털이 나갈 대로 나갔을 법도 한데 수학 같은 경우는 높은 점수를 바라지도 않았으니까... 그래도 실수가 많았던 게 아쉬웠다.


너무 늦은 이야기 같지만 오늘 난 너에게 꾸중을 하려고 온 게 아니야. 이 편지를 쓰면서 애써 외면해보고 숨겨보고 했던 생각과 감정들을 알고 싶어서 왔어. 아무도 몰랐던 너의 진심 나도 궁금하다.


요즘 매일매일이 너무 지루하고 무료해. 그렇다 보니 쉽게 지치고 의욕도 잃게 되지. 멍 때리는 시간만 늘어나고 익숙했던 것만 찾게 되고 새로운 건 거부감 들고 기운 빠지고 피곤하고 귀찮고 그냥 다 지겹지? 스트레스를 푸는 곳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스트레스를 받는 곳에서 스트레스를 풀고 진짜 규칙도 없고 반복적인 삶은 싫고 그렇지? 근데 난 네가 행복하고 큰 문제가 없다면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들어. 솔직히 규칙 같은 거 짜서 지켜지는 경우 없고 반복적인 패턴 3일이면 무너질 거 생각하면 계획하는 시간이 너무 낭비야. 그냥... 네가 해야 하는 거 하면 안 되는 거 구분만 잘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적당히 그런 거 없고 편한 대로 해. 오히려 공부에만 집착하고 힘들어하는 게 더 안 좋을 것 같아.


작은 것에 희열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는 그게 얼마나 중요한 건데 꼭 큰 무언가를 이뤄낼 필요 없어. 큰 것에서 느끼는 그게 얼마나 중요한 건데 꼭 큰 무언가를 이뤄낼 필요 없어. 큰 것에서 느끼는 행복은 필요하겠지만 또 너무 그것만 바라는 것도 문제고 그냥 너답게 살아. '너답게'가 뭔진 아무도 몰라. '너답게'라는 틀에 박혀있으라는 것도 아니고 진짜 끌리는 대로 살아. 사실 지금 이 편지도 생각나는 데로만 쓰고 있거든...ㅎㅎ


나중에 말고 저번에 말고 지금. 지금 네가 뭘 해야 가장 행복할지 생각해. 나중에 행복할 일은 나중에 생각하면 되니까 지금을 살아. 그리고 항상 행복한 건 불가능해.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항상 행복한 게 어딨어. 그게 행복이니. 가끔 느껴지니까 행복한 거야 짧기도 하고. 항상 느끼는 건 보통의 감정이고 그 감정들 또한 소중하지.


수빈아 똑같은 날 같아도 2021년 9월 1일은 단 하루. 딱 한 번. 지금이라는 건 정말 중요해. 너 국어 시간에 읽었던 책 <이모의 꿈꾸는 집> 기억나? 그 책에서 꿈은 꾸는 게 행복한 거라고 했잖아. 꼭 이루지 못해도 꾸는 것만으로도 좋아야 한다는 거지.


너는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더 많아. 경험은 경험으로만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처음이니까 몰랐던 거잖아? 너는 정말로 항상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방황하고 모르겠더라도 걱정 마. 그건 과정일 뿐이야. 언젠가 끝이 나게 돼 있어. 사랑해. 건강하고. 또 네 얘기가 듣고 싶을 때 나를 찾아와. 열심히 끄집어내 줄게. 그럼 안녕 다음에 또 봐!!


2021년 9월 1일 수요일

너의 친구 수빈이가!!!!




2021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수상작

초등(고학년)부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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