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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한줄 Jan 20. 2022

7살의 작은 거북이, 다은이에게

고등부 금상 - 이다은

7살의 작은 거북이, 다은이에게


안녕, 다은아. 잘 지내고 있어? 나는 잘 지내고 있어. 20살이 된 지금, 나는 너를 이제야 좀 안다고 할 수 있게 되었어. 너도 7살 어린 나이인데 매일 아침 스스로 옷을 입고, 세수를 하고 씩씩하게 유치원 셔틀버스에 오르고 버스에 오르며 인사도, 한 살 어린 동생을 버스에 먼저 오르게 하는 것도 꼭 잊지 않았지. 유치원에 있는 동안 엄마가 보고 싶고 괜히 낯선 기분이 들어서 몇 번씩이나 혼자 울음을 참았던 것도 알아. 그래도 동생이 엄마가 보고 싶다고 너를 찾아오면 울음을 꿀꺽 삼키고 동생의 눈물 맺힌 눈이 안쓰러워서 한참 달래 줬잖아. 너도 어린데…. 너도 엄마가 보고 싶고 울고 싶었지? 너도 울어도 됐는데. 동생처럼 너도 유치원 가기 싫다고 떼써도 됐는데. 네가 타고 싶던 시소, 동생 그네 밀어주지 않고 타도 됐는데…. 7살의 너를 생각하면 항상 나는 왠지 모르게 안쓰럽고 서러운 기분이 들어.


네 태몽은 흰 거북이가 달빛 아래 물속에서 천천히 헤엄치는 꿈이었대. 거북이는 느림보. 나도 처음엔 이런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어. 건강하지만 작게 태어나 또래보다 몸집도 작고, 글자를 읽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이해 속도도 느리고, 생각이 너무 많아서 정서적으로도 쉽게 지치고…. 이런 너를 보며 참 답답해서 이 느림보야 하고 너를 정말 수도 없이 미워했는데. 바다거북은 육지에서는 느리지만 바닷속에서는 빠르게 헤엄쳐. 바다거북이들은 장거리 수영에 잘 적응되어 있을 뿐 아니라 순간적으로 빠르게 헤엄칠 수 있고 짧은 거리에서는 32km/h 이상으로 헤엄치는데, 평균 유영속도는 20km/h에 이른대. 바다에 들어가면 수영으로 바다거북을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다은아, 미래의 너는 홈스쿨링을 하다가 1년 늦게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지금 고3 막바지를 지나고 있어. 처음 해보는 학교생활에, 또래보다 늦게 입학하고 이해력도 느려서 사실 나는 지금껏 그래 왔듯이 너를 믿지 않았어. 그런데 지금 너는 전교 선생님들께 사랑받고, 높지는 않아도 좋은 성적과 성실한 활동의 결과로 원하는 대학에 원서를 쓸 수 있게 되었어. 왜 나는 늘 결과로 너를 판단했을까. 왜 7살의 어린 네가 순간순간 원하는 것들을 미루고 너의 진짜 마음에 귀 기울이지 못했을까. ‘오늘 하루는 어땠어? 친구들하고 무슨 놀이 했어? 엄마 보고 싶어서 힘들진 않았어? 하고 벅찰 정도로 많이 질문받고 싶었는데, 세 자매를 키우느라 지치신 엄마를 먼저 생각했던 너. 너의 기분보다 다른 사람의 표정을 살피며 괜히 조잘거리며 밝은 척했던 너. 마트에서 먹고 싶은 거 고르라고 해도 껌 하나 고르며 이거면 됐다고 하던 너. 그땐 그런 네가 생각이 참 깊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어렸지만 네 인생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 학교라는 바다에서, 너의 인생에 집중하며 살고 있는 지금 나는 바빠도 사실 참 행복해. 단거리보다는 장거리와 잠수 능력에서 발군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 바다거북처럼, 너는 조금 느려도 긴 거리를 꾸준히 갈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이젠 알아.


7살의 다은아, 13년 뒤의 너는 여러 방법으로 온전히 너 자신에 대해 이해하고, 13년 전의 너의 힘든 순간들에 찾아가 말없이 꼭 안아주려 노력하고 있어. 7살의 다은아, 느리다는 이유로 너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 이상 신경 쓰지 말고, 그만큼 너의 행복에 집중해봐. 지금 너는 너에게 맞는 바다에서 자유롭게, 웃으며 헤엄치기 시작하고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너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싶어. 미안해, 다은아. 너를 충분히 이해해주기보다 작은 실수에도 모진 말들을 해서 네 마음속 기억들을 하나씩 검게 만든 것 같아서 미안해. 7살의 다은아, 유치원 다녀와서 힘들었던 거 마음껏 티 내도 괜찮아. 버스에서 동생 챙기지만 말고 너도 잠깐 눈 붙여도 괜찮아. 괜찮아, 다은아.

그렇게 듣고 싶어 했던 말, 이제야 해줘서 미안해.


앞으로 너는 넓고 푸른 사회라는 바다에서 누구보다 행복하고 자유롭게 헤엄칠 거야. 난 그렇게 믿어. 묵묵하고 우울하기도 했던 7사의 작은 흰 거북이 다은아, 이젠 신나게, 행복하게 헤엄치며 살자. 너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사랑해.


2021.8.11. 20살의 다은이가, 7살의 다은이에게.




2021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수상작

고등부 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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