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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한줄 Jan 20. 2022

후회·낙관·자유

고등부 은상 - 정영민

영민에게


안녕, 나. 그래, 또 나야. 하지만 네게 편지할 궁리를 하면서도 나는 네게 썼던 수많은 편지를 떠올려내려고 애써야 했어. 그래야만 이전의 내가 네게 전하고 싶었던 진심의 무게를 이어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작년 책쓰기동아리를 마무리하면서 선생님이 내게 요구했던 자가의 말이었어. 나도 기억이 새록새록 했는데 너도 마찬가질 듯하니 발췌해 옮겨 : “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면서, 벼랑에서 뛰어내릴 때도 밑이 보여야 덜 무섭구나, 깨달았다. 사람이 불확실한 앞날을 애태우는 것은 확실한 앞날이 더 두려움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말투를 보아하니 지난여름의 너는 꽤 감성적이었고 또 퍽 불안했던 것 같아.


하지만 너는 두 계절을 넘었고, 네가 다할 수 있는 최선은 더 웅숭깊어졌지(내가 알기론). 그만큼 새로운 혼란과 곤혹스러운 고비들이 마주쳤음은 물론이야. 그래서 나는 이 낯선 시련들과 그 세 개의 해법을 너와 의논하고자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 너에게 편지한다는 건 내게 답장하는 일이니까. 먼저 첫째 문제 항목을 살펴보자, 여기서 우리는 후회를 의논하는 거야. 한국의 어른들이 나쁜 이유는 그들이 아이들에게 후회를 가르치기 때문이지. 나는 “좋을 때다.”하는 어른들을 보며 나만큼은 후회란 하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왔어. 그런데 내 안에 있는 소리와 다른 말을 할 때, 저이가 보여주려는 모습에서 흠을 탐색하는 나를 발견할 때, 그리고 -헤세가 말했듯이- 그 사람에게서 내가 찾으려는 흠이 사실 내 것임을 알아차렸을 때, 나는 불쾌한 후회를 삼켜야 했어.


결론부터 말하자면 후회라는 건 사실 과거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는 눈멂이지. 난 이제 그걸 깨달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회심이 몰려올 땐,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緣起)를 생각하기로 했어. 네가 외고 입시에 합격했더라면 너의 여름방학은 프랑스어 공부와 Y와의 농구와 탄방동으로의 여정으로 채워져 있어 아무런 공백도 얻질 못했겠지. 그랬더라면 너는 이 지나는 여름, 비트겐슈타인과 보르헤스와 파르메니데스와 움베르토 에코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고 더 넓은 우주를 맛보지 못했겠지. 삶은 강요라고 해, 선택은 필연적이므로.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삶은 선택의 연쇄지. 그러나 너는 네가 생존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찰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리하면 이 하루의 끝에 너는 감사할 수 있으니까. 이건 정신승리를 위한 운명론이 아니라 고요하고 숭고하게 감사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해두자.


그러나 내가 지금 네게 해주고 싶은 말은 (네가 알고 있을) 둘째 항목에 대한 해법이란다 : 낙관과 긍정의 차이를 되새기는 일. 무근한 긍정은 낙관이 되고 낙관을 신봉하는 무책임한 낙천가는 악몽에서 도피하며 살게 되겠지. 그러나 여기서 소리치지 :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야!” 그러면 메아리가 날아오기 : “안 중요한 때는 없다고!” 도무지 어떤 부담이 나은 선택을 만들게 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어. 나를 무모하지 않게 해주는 것이 오늘의 열정에 대한 맹신뿐인지도. 그래서 나는 윌리엄 포크너의 사고방식을 빌려 왔어. 만년의 인터뷰에서 포크너는 이렇게 말했지 : “우리 모두는 우리가 꿈꾸는 완벽함에 필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가능한 일에 얼마나 멋지게 실패하는가를 기초로 우리들을 평가합니다.”


물론 나는 맹신이 안 되는 사람이야. 맹신할 수가 없는 사람이지(하지만 맹신하지 않음에 맹신하면 태풍을 피하려고 태풍의 눈에 들어가 버리는 꼴이 되겠지). 그래서 나는 내 태도가 얼마간 있으면 또 바뀌라라는 걸 알고 있어. 그러나 이 편지에서 나는 네게 부탁한다. 계획을 세워보자. 어느 영화에 나왔던 것처럼 무계획이 최고의 계획이라고 믿었던 나지만 한 학기를 무작정하고 살아보니 그 힘듦이 아직껏 남아 있질 않겠니. 이것이 내게의 예의고 앞날의 우리에 대한 예의려니 생각해. 사실 진정한 계획자는 즉석에서 모든 계획을 수정할 수 있는 이겠지. 봉준호 감독은 또한 자신이 만든 시나리오와 스토리보드를 스스로 부정하고 뒤바꿀 수 있을 때 비로소 연출다운 연출을 했다고 뽐낼 수 있다, 말했어.


그러니 계획하자. 계획의 본질은 수정이라고 생각하면서. 오히려 계획이 자유의지에 윤기를 낸다고 역설하면서 말이야(이것이 셋째 해법이다!). 내게 유일한 고통은 속박이고 규칙화지. 하지만 자유가 방종이 되고 여유가 방탕이 되는 순간을 구별하도록 해보자. 짜임새 있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인지도 모르며 포크너가 말했듯이, 멋진 실패는 이상을 아로새긴 자에게만 가능하니까.


2021년 8월 30일, 파란 방에서

정영민




2021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수상작

고등부 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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