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부 동상 - 이정순
아버지.
평생 처음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아버지는 구순을 훌쩍 넘기시고 저도 환갑을 지낸 무심한 세월이군요,
이 나이가 되도록 아버지에게 온 마음으로 제대로 감사 한 번 드리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죄송해요.
돌이켜보니 내 인생에서 생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절망에 빠져있을 때 나를 일으켜 세워 희망으로 이끌어 주신 분이 바로 아버지 당신이셨어요.
아버지는, 언제나 그림자처럼 저와 함께 계셨어요.
초등학교 다닐 때 날씨가 춥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저를 업고서, 다리 건너에 있는 학교에 데려다주셨고, 중학교에 가서는 저금 많이 하고 공부 잘해서 체신부 장관상을 받게 되자 가문의 영광이라며 온 동네에 자랑하던 모습이 지금도 내 기억 속에서 환 등처럼 떠오릅니다.
아버지에게도 저에게도 그때가 화양연화였네요.
그러나, 아버지와 저에게도 고난이 덜컥 발목을 걸어왔지요.
느닷없이 아버지가 쓰러지셨어요.
아버지의 입은 귀밑까지 돌아가고, 말을 할 수 없어지셨죠.
놀란 어머니는 우리들을 돌보지 않은 채 아버지와 함께 한의원으로, 병원으로 정신없이 다녔어요.
그즈음 저는 대학에 합격해 진학을 앞두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청천벽력 같은 공언을 했지요.
"아버지를 살리려면 네가 대학을 포기하고, 네가 대학에 가겠다면 아버지를 포기해야 한다"는, 저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워 몇 날 며칠을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다가 진학을 포기하고 가출을 해버렸습니다.
빛날 일만 남았던 청춘에 거센 광풍이 나를 휘감았습니다.
저는 온갖 방황과 비행, 그리고 이상과 전혜린에게 심취되어 흉내를 내며 만신창이가 되어 나락으로 떨어져 가고 있을 때, 친구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전해 받았습니다.
낯익은 손 글씨, 눈물에 얼룩진 종이는 바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라는 아버지의 편지였습니다.
저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아버지에게 대학 가는 대신 소설가가 되겠다며 서울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제 소원을 들어주셨지요.
아버지와 함께 처음 기차를 타고 용산역에 내려서 고모네 집에 갔던 일, 그해 겨울 제가 쓴 원고를 누런 봉투에 담아서 신춘문예 응모작이라고 커다랗게 써 함께 신문사로 갔던 일이 주마들처럼 스쳐 새삼 울컥해지네요.
물론 신춘문예에 당선은 못 되었지만, 아버지의 사랑과 다독임으로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 대학도 가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내리사랑 주며 한때는 찬란한 시절을 보냈고 아버지는 안심하시고 기뻐하셨지요.
그러나 언제나 욕심이 화를 부르는 걸 잊었지요.
무리한 레스토랑 사업과 남편의 잘못된 이직으로 파탄지경에 이르렀지요.
또다시 아버지에게 손을 벌리러 찾아간 저에게, 아버지는 제게 말씀했죠.
"백 원을 벌려면 만원을 투자해야 하는 무리한 사업을 접고,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다시 일어서려면 뒷정리를 해주겠다"는.
저는 그날 강둑에 앉아 울었고, 아버지는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저 강물처럼 다 지나간다며 저를 달래주셨지요.
저는 결국 아버지를 따랐지요.
아버지, 아버지는 무슨 죄로 언제나 저를 그렇게 애면글면 지켜주셨나요?
그렇게 언제나 넘어져도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는 아버지와 함께여서 정말 고맙고, 다행이었어요.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어느새 아버지는 구순을 훌쩍 넘기시고, 저도 환갑을 넘겼지요.
나이가 들어 모든 게 서글퍼지던 어느 날 문득, 사십 년 전 아버지와 함께 신춘문예의 꿈을 꾸던 생각이 났지요.
그날의 저의 꿈과 아버지의 사랑이 나비의 날갯짓으로 파문을 일으켜, 제가 환갑을 넘겨서 모 신문사의 신춘문예 소설가로 당선이 되었지요.
2019년 3월 15일, 시상식 날.
광화문의 프레스센터에 들어선 저는 깜짝 놀랐어요.
식장 맨 앞자리에 아버지가 꽃다발을 들고서 앉아계셨어요.
안내를 하시는 분이 할아버지가 제일 먼저 오셔서 제 이름을 대서 앞자리로 모셨다고 하는 순간 저는 눈물이 터지고 말았었죠.
아버지는 사십 년 전 저의 꿈을 잊지 않고 언제나 저와 함께 살아오신 분이셨어요.
이 나이가 되어 함께 늙어가면서도, 아버지에게 저는 아직도 첫정을 준 귀한 맏딸인가요?
그 후로도 아버지는 제가 상을 받는 곳이면 노구를 이끌고 어디든지 빠짐없이 와주셨지요.
저는 아버지에게 자랑하고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서 더 열심히 공부하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아버지, 이제 우리가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겠지요.
하지만 아버지는 영원한 내 마음의 등불입니다.
아버지의 그 깊은 내리사랑도 이어받아 사랑하며 잘 살아가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