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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한줄 Oct 25. 2023

아이들에게

일반부 장려 - 김지혜

안녕, 오늘도 즐거운 학교생활 보내고 있니? 등교하는 얼굴을 보니 금방 자다 깨서 학교에 온 것 같은데. 아니, 오늘도 학교에 가기 싫다고 엄마랑 잔뜩 싸우고 왔구나. 그래도 씩씩하게 학교에 와서 금세 친구들과 조잘조잘 떠드는 모습을 보니, 오늘도 시끄러운 하루가 되겠네.

 선생님은 오늘 아침부터 수업을 준비하느라 분주했어. 너희들이 교무실에 찾아와서 이것저것 이야기하고 친구들이 장난친 걸 이르는 것도 들어줬지. 장난치다가 다친 아이는 밴드를 붙여 주고 아픈 친구는 열을 재주고, 보건실에 데려다주고 바쁜 시간을 보내다가 수업에 조금 늦었더니 그새 모여 장난을 치고 있었구나. 그래도 선생님이 들어오면 후다닥 자리로 돌아가는 발걸음들이, 혼날까 봐 도르르 굴러가는 눈동자들이 참 귀엽다고 생각했어.

 늘 하는 일이긴 하지만 수업 종이 치면 긴장하곤 해. 오늘은 준비한 수업을 다 할 수 있을까. 이번 교시는 장난꾸러기들이 모여 있는 반인데 잘 이끌어 갈 수 있을까 하고. 하지만 항상 이런 말을 하다가 시간이 다 가버리곤 하지. 수업 시간에는 조금만 조용히 해줄래? 선생님이 말하고 있잖아. 화장실은 한 명씩만 가줘. 밖에서 놀다 들어오는 거 선생님은 다 안다. 간식은 쉬는 시간에 먹으렴. 선생님도 먹고 싶으니까. 수업하는 건지 잔소리하는 건지 모를 45분이 지나가면 선생님은 쉬는 시간이 반갑기도, 지나가 버린 수업 시간이 아쉽기도 해. 조금 더 재미있게 활동할 수 있었을 텐데, 조금 더 쉽게 설명해 줄 수 있었을 텐데. 잔소리할 때는 좀 더 상냥하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말이야. 선생님 마음 이해하지?

 학교생활을 하면서 행복이 무엇일지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선생님은 어렸을 때 큰돈을 벌어서 맛있는 것도 마음껏 먹고 커다란 집에서 사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어른이 되어보니 행복이란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닌 것 같아. 요즘 학교 일을 하면서 문득문득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곤 하거든. 수업하면서 아이들에게 재미있다는 말을 들을 때, 선생님은 가장 행복해. 통 말을 하지 않던 학생이 드디어 입을 열어 재잘재잘 이야기할 때도 행복하고, 아이스크림 하나에 행복해하는 너희 얼굴을 볼 때. 혼나서 시무룩하다가도 금세 잊고는 선생님을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을 봐도 행복하지.

 비유와 상징에 관한 단원에서 먼저 피는 꽃과 나중에 피는 꽃이 나오는 수필을 배웠지. 기억나니? 그때 선생님은 너희가 빨리 많은 걸 알았으면 해서 활동지를 채우는 데 집중했어. 빨리 답을 안 쓰는 친구들을 재촉하기도 했지. 그런데 한 친구가 손을 들어서 ‘선생님은 어떤 꽃이에요?’하고 물어봤어. 그때 선생님은 깜짝 놀랐는데, 내가 어떤 꽃인지는 그동안 생각해 보지 않았거든. 그때 잠시 수업을 멈추고 나는 어떤 꽃인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봤어. 수많은 꽃 중에 나는 어떤 계절에 피는 꽃일까, 하고. 나는 늦게 피어서 불행한 꽃일까, 아니면 늦게 피어나서 더 행복한 꽃일까? 선생님은 너희를 가르쳐 주러 수업에 들어갔는데, 오히려 너희에게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고 나온 것 같았어. 그래서 나는 주게 피어났지만 행복한 꽃이라는 걸 느꼈단다.

 그런데 선생님도 가끔은 상처를 받을 때가 있어. 어제는 청소 시간에 땡땡이를 치고 놀다가 걸린 아이들을 불러서 다그쳤어. 왜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느냐고 말이야. 선생님들이 말씀하시는 게 우습냐고도 했지. 그러고는 밤새 마음이 아팠단다. 나는 왜 아이들에게 너그럽지 못할까. 아이들은 왜 내 마음을 몰라줄까, 하고. 오늘은 한 학생에게 국어 수업이 재미없다는 말을 들었어. 선생님이 일주일을 고민해서 준비한 수업이었는데 말이야. 지나가듯 한 말이었는데도 선생님은 수업을 하다말고 울고 싶은 심정이었지.

사실 선생님은 조금 힘들기도 해. 30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을 하루 종일 살피고 수업을 준비하고 학교의 다양한 업무를 처리해야 하니까. 하루 일과 시간이 부족할 때도 많단다. 그래서 가끔은 너희가 하는 말을 잘 못 들어줄 때도 있고, 수업 준비가 미숙할 때도 있어. 그래도 한 번씩만 이해해 줄래? 선생님도 가끔은 실수할 수도 있다는걸. 조금은 부족한 면도 있을 수 있다는 걸 말이야. 그래도 항상 너희를 지켜보고 있어. 혹시 장난치다가 다치지는 않는지, 친구와 다투고 혼자 지내는 건 아닌지, 말 못 할 고민이 있는지 늘 유심히 살펴 보고 있단다.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 올해가 벌써 얼마 남지 않았구나. 조금 있으면 너희도 고등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고 사회로 나가겠지. 둥지를 떠나는 새끼 새를 보는 것처럼, 너희들이 어떻게 각박한 세상을 살아갈까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기도 해. 그래서 더 많이 가르치고 더 많이 혼내면서 욕심을 부리는 것 같아. 언제나 1년이 지나면 헤어지는 게 우리 사이이지만, 그래서 사랑을 쏟는데 참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 서로 사랑하면서 이 짧은 시간을 소중히 보내자. 항상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


선생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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