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지한줄 Jan 20. 2022

새로운 길을 걷는 나에게

일반부 금상 - 권택환

새로운 길을 걷는 나에게


삶에 이정표를 세운 지는 얼마 되지 않았구나. 이정표가 없는 길의 끝은 언제나 벼랑이라는 사실을, 아슬아슬 그 길 끝에서야 깨닫고 먼 길을 되돌아오고는 했구나. 나에게 묻는다. 이제 어디로 갈래? 그전에 잠깐 왔던 길을 더듬어 보자.


심심 산골에서 6.25동난이 한창이던 때 태어났다. 그때 그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자. 엄마가 싸준 도시락이 부끄러웠던 초등학생 택환이가 선택한 부끄러운 길이 있구나. 5학년 어느 날, 둘둘 말아 대각선으로 어깨에 메고 간 책보 안에 밥그릇이 쏟아져 그날 싸간 김치며 고추장이 뒤범벅이 되었다. 매운 냄새가 진동했다. 순간 내 얼굴도 고추장처럼 벌게져 나는 보자기를 들고 나와 얼른 쓰레기장에 버렸다. 그러고 점심시간에는 울면서 수돗가에 가 밥 대신 수돗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날 이후론 엄마가 도시락을 싸주어도 화를 내며 냅다 뛰어 학교에 갔다. 그렇게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매일같이 고추장 아니면 김치였어도 점심시간에 내 자식 배 굶기지 않으려 한 어머님의 사랑보다 나는 친구들 앞에서의 창피하고 부끄럼이 더 많았다.


고등학생이 된 택환이가 선택한 또 하나 부끄러운 길, 통학하기 멀어 엄마는 나와 동생이 지낼 자취방을 읍내에 하나 얻어주셨더랬지. 그런데 내가 동생을 얼마나 미워하였으면, 동생이 또 얼마나 나와 지내기가 괴로웠으면 엄마에게 자전거를 사달라고 졸라 그 먼 거리를 집에서 통학하였을까. 그 새벽부터 도시락을 싸주시며 그 먼 길을 자전거 타고 학교 가는 동생을 볼 때는 얼마나 또 마음이 안되셨었을까. 그 동생은 무엇이 그리 급했던지 일찍 어린 두 딸을 남겨 두고 먼 길을 떠났구나. 마음이 아프다 난 얼굴에 눈물을 묻는다.


나는 군복 입고. 군인으로 평생을 살고 싶었구나. 그러던 서른 살, 중매로 만난 시골의 이쁜 처녀를 각시로 얻었지. 이쁜 각시 혼자 두고 술과 친구를 더 좋아하여, 봉급날 외상 술값 다 갚고 얇은 봉투만 던져주기 일쑤였구나. 그런 남편 어디가 미더웠겠느냐. 아내가 어린 두 딸 데리고 갈 월세방 값 벌어 보겠다며 부업으로 구슬 끼우고 인형 눈 붙일 대도 나는 만날 화만 내고 가정은 등한시하고 밖으로 돌아다녔지.


그렇게 처자식을 둔 마흔이 되어도 나는 철이 없었구나. 자식들 위해 호미 들고 흰 고무신 신고 무명치마 삼베적삼 입으시고 죽도록 땡볕에서 일만 하시다 골반 다쳐 3년 동안 집안에서 앓아누우신 우리 어머니. 누워만 계셔 욕창이 생겨 고통으로 사시다 소쩍새 울음 따라 하늘 가신 우리 어머니. 어쩌면 어머니 삶의 욕창은 몸에 생긴 그것이 아니라 그때까지고 철들지 못한 못난 아들 바로 내가 아니었을까. 휠체어 한 번 태워 어머니 바깥 구경, 맛난 음식 한 번, 새 옷 한 번 사 입혀드리지 못한 것이 내 마음에 한이다. 그렇게 어머니를 보내고 군 생활을 청산하고 험한 세상 나와서도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지. 아내가 알뜰히 모은 전재산을 어리석게도 사채업자의 꼬임에 넘어가 모두 날려버리고 말았을 때, 아내 얼굴의 눈물 한번 닦아주지 못하고 화만 내며 술만 마시었구나. 


그렇게 오십을 먹어 나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지. 점점 앞이 뿌옇게 보이질 않아 아내 손에 의지해 이 병원, 저 병원 다 다니며 민간요법 다 써보았지만 헛수고, 완전 실명이라는 캄캄한 어둠이 내 앞에 찾아왔었지. 절망과 한탄과 온갖 후회와 누군가에 대한 원망이 뒤섞인 속에서 머리를 벽에 가져다 박고, 방바닥을 치며 분노해 보았지만, 어둠은 더욱 짙어질 뿐이었지. 아내와 부둥켜안고 참 많이도 울었구나. 그렇게 아내의 가슴에 상처와 눈물이 강이 되게 했는데 ‘당신은 할 수 있어요.’ 용기를 주는 아내에게 나는 생명이 여러 개여서 영원히 머슴살이를 해도 모자라다 느껴질 만큼 미안하기만 했다. 존재만 있을 뿐 보고 배울 것이 없는 아비도 아비라고, 그럼에도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바르게 자라준 두 딸에 대한 아비로서의 부끄러움과 미안함도 어둠 속에서야 켜진 등불이다.


나의 길은 막혔다고 주저앉았는데 또 다른 새로운 길은 있었지. 기억한다. 시각장애인으로서의 내 새로운 삶의 첫 이정표. 우리나라 100대 명산 등반. 처음 아내의 가방 끈을 잡고 산을 오르던 날의 그 두려움과 다른 한 편의 타오르는 의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발바닥에서 느껴지던 그 땅의 굴곡, 발끝에 차이던 돌의 둔탁함, 새들의 지저귐, 나무들이 뿜어내는 상쾌한 공기... 산의 온전한 기운이 고스란히 몸에 전달되는 느낌이 가슴 벅찼지. 시각 장애인 내가 두려움을 이겨 내고 산 정상에 올랐을 때는 감격의 눈물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네. 산을 오를 때마다 나는 원망도 분노도 욕심도 비로소 하나씩 내려놓게 되었어. 그렇게 2008년부터 시작한 우리나라 100대 명산 완등 도전이 11년간의 꾸준한 노력으로 마침내 2019년 7월 6일 전남 장흥에 있는 천관산에서 대단원의 꽃을 피웠지. 산을 오르고 오르며 정상에 오를 때마다의 그 감격의 순간들을 함께 해 준 아내와 친구들과 가족들. 그들 내 든든한 지원군이 없었던들 내가 이루어낼 수 있었을까.


택환아! 세월 따라 바람 따라 걸어온 길 벌써 노년이 되어 가는구나. 목표를 설정했으면 과감하게 실천하자. 지금은 시와 수필 쓰기에 전념하고 있지. 몇 년 전부터 제 이름으로 된 시집 한 권, 수필집 한 권을 출간하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해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시와 수필을 쓰고 있지. 또 책을 읽고 글을 써서 문학 공모전에 보내여 기쁜 소식을 기다리는 순간은 행복하지. 시각 장애인인 내가 내 인생의 이런 작은 행복을 누리는 것도 나의 눈과 손발이 되어 사랑과 헌신으로 함께해 준 아내의 덕분이지.


택환아!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아내와 두 딸에게 칭찬과 사랑을 표현하면서 웃으며 생활하는 가정으로 만들자. 아마 이 편지도 내 인생의 동반자, 내 영원한 안내자인 아내가 대신 부쳐주겠지. 그리고 내 가는 길에 두 딸과 사위들과 손자 손녀들이 열심히 응원가를 불러주겠지. 내 나머지 인생을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이제 눈물이 아닌 기쁨이 될 수 있음에 행복하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에 진정한 권택환이를 만나러 가는 권택환이 길에서 쓰다.




2021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수상작

일반부 금상

작가의 이전글 대학생 이지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