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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한줄 Jan 20. 2022

5년 후 작가가 되어있을 나에게

일반부 동상 - 김미자

5년 후에 작가가 되어있을 나에게


미자야, 요즘은 너를 닮은 매화꽃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아!

어릴 적 네가 살던 한옥 마당에는 오래된 매화나무가 있었지. 추운 겨울 끝에 피어난 매화를 보며 너는 깜짝 놀랐었어. 너는 털장갑을 끼고도 추워서 떨고 있는데 매화는 맨몸으로 겨울을 견뎌내고 어여쁜 꽃을 피웠기 때문이야. 그 모습이 무척 매력적이었어. 그때부터 너는 매화를 좋아하게 되었지.


사람이 그렇듯 매화도 꽃을 피우기까지 견뎌내기 힘든 시간이 많았겠지.

너는 힘들 때 무엇을 하며 견뎌내니?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이겨낼 것 같아. 그런데 말이야.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일을 겪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더라. 자신도 자신을 어찌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거지. 침대 위에 누워서 식물인간처럼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자살을 생각하기도 해.


나도 그랬어. 오십에 혼자 살기 시작했는데, 금융사기로 전 재산을 잃었어.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허리가 무너져서 통증과 고군분투하게 되었어. 매일 죽고 싶었지. 그러다 죽을 때 죽더라도 글이나 한편 남기고 죽자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어. 유서 같은 글이었지. 그런데 다음 날도 유서를 쓰고 그다음 날도 썼어. 참 신기하게도 유서가 생명줄이 되었단다.


그래서 알게 되었지. 지금을 살아내기 고통스러울 때는 침대에 누워만 있는 것보다는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여서 무엇이든 매일 묵묵히 하는 것이 생명을 이어가는 길이라는 것을. 내가 매일 글쓰기를 해온 이유야. 매일 글을 쓰니 몸에서 살고 싶은 에너지가 마구마구 나오더라. 누군가는 걷기를 할 때 건강한 에너지가 듬뿍 나온다고 했어. 어느 날 많이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매일 묵묵히 걷기를 하며 견뎌내고 좋을 거야. 그러면 매일 뭔가 조금씩 했던 그 움직임이 너를 살리는 군불이 될 거야. 매일 조금씩 하는 글쓰기는 나에게 군불을 지피는 일이었어. 그래서 작가의 꿈을 품게 되었지. 나를 살리는 일을 하며 살고 싶어 졌기 때문이야.


언젠가는 매일 나에게 군불을 지폈던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하고 싶어. 사람들은 많은 날들을 힘든 시간 속에서 고통스럽게 보내는 듯해. 그들에게 매일 군불을 지피는 시간이 있어야 따뜻하게 살아낼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은가 봐.


작가의 꿈이 깊어지면서 5년 후에 너의 하루를 상상해 보았어. 왜냐하면 그때쯤이면 네가 작가의 일상을 보내고 있을 것 같아서야. 너는 아침에 풍경소리에 눈을 떴을 거야. 바람과 풍경이 만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더 행복한 아침이지. 햇살이 쏟아지고 하얀 무명 커튼의 자수도 좋아라 들꽃을 피우지. 커튼 속 들꽃들이 햇살을 쬐는 동안, 너는 스트레칭을 하며 몸에게 인사를 하지.


바깥 풍경이 궁금해서 커튼을 열었을 때 파란 하늘과 호수가 한눈에 쏙 들어올 거야. 복사꽃이 산골 소녀처럼 수줍게 웃고 있고 텃밭의 채소들은 밤사이 자랐는지 키가 더 커 보이지. 독서모임 하는 분들이 오면 함께 맛나게 먹어야겠다고 생각할 거야.


마당에는 계절마다 꽃이 피지. 매화, 벚나무, 이팝나무, 배롱나무, 봉숭아, 코스모스, 동백나무가 정답게 살고 있으니까. 한옥에서 피어난 꽃들이라서 더 매력적이지. 밤에는 한옥에 꽃등이 켜지고 개구리와 귀뚜라미 그리고 이름 모르는 풀벌레들이 한옥의 꽃등과 함께 멋진 공연을 하지. 누구라도 들어와서 따듯한 차 한 잔 나누고 싶고, 그러다 밤이 깊어지면 그대로 함께 잠들어도 괜찮을 듯한 집에 살고 있을 거야.


네가 사는 집은 ‘지금변화연구소’야.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는 일을 하고 있지. 그들과 함께 배우고 성장하며 살고 있어. 책모임, 글쓰기 모임, 작가 초청 강연회도 가끔 해. 네가 재밌어서 하는 일이지.


며칠 후에 너의 두 번째 책이 출간될 예정이지. ‘지금변화연구소’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야. 오늘은 세 번째 책의 꼭지 글 하나를 완성하려고 하지. 필사로 시작하는 사유의 글쓰기야. 꼭지 글 제목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 될 거야.


상상인데도 지금 겪은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네. 그때도 지금처럼 매일 글쓰기가 하루를 살아내느라 수고한 너를 따듯하게 안아주는 시간일 것 같아. 내가 쓴 글이 누군가의 가슴을 데우는 군불이 되어있겠지. 매화도 그런 군불이 있었으니 엄동설한을 견뎌내고 그토록 어여쁜 꽃을 피웠지. 누군가 내 책을 군불 삼아 자신만의 꽃을 피우면 참 고마울 거야. 나는 네가 마음이 추운 사람들에게 군불을 지피는 작가가 되리라 믿어져.


너는 지금처럼 미래에도 웃으며 따뜻하게 살고 있을 거야.

미래의 미자야, 5년 후에 반갑게 만나자!


2021년 9월 7일

-미자가-




2021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수상작

일반부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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