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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한줄 Jan 20. 2022

열심히 살아온 너에게 칭찬과 격려를

일반부 동상 - 조정림

쉰두 번째 생일, 너에게 칭찬을 선물해!


새벽녘 차가운 공기가 가을이 방문턱을 넘어 들어온 걸 알리는 것 같아. 환절기 목감기로 따뜻한 물이 든 텀블러를 끼고 사는 너를 보며 이젠 온전히 너부터 챙기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 갑자기 찾아온 노안은 또 얼마나 나를 괴롭히는지, 삶의 질이 떨어져 힘들지만 여전히 묵묵히 네 자리를 지키며 너의 몫을 해내는 모습에 칭찬과 응원을 해주고 싶어 편지를 쓴다.


지천명의 나이를 넘기며 어느새 자리를 잡아가는 주름들과 각종 잔병들에 ‘이렇게 나에게도 노년은 찾아오는가?’ 두렵지만 열심히 산 너에게 주어진 훈장처럼 생각하고 더 긍정적으로, 더 열심히 전진하길 바라.


오늘이 네 생일이잖아? 늘 주변 사람들 챙기기에 바빠서 소홀했던 날이지만, 오늘만큼은 5대 종부로서, 젊은 날 혼자되신 엄마의 딸로서, 한 사람의 아내로서, 세 아이의 엄마로서, 교사로서, 학생으로서 무거웠던 책임감을 내려놓고 맘껏 즐기길 바라. ‘한 번도 못 가져본 명품백을 하나 살까? 예쁜 보석을 하나 살까? 옷 한 벌 빼 입을까?’도 생각해 봤지만 너에겐 역시 인정과 격려가 가장 큰 선물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


먼저 어려웠던 환경을 이겨내고 너의 꿈을 이룬 점을 칭찬해. 대학 3학년 봄에 아버지께서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충격에 누우신 어머니를 대신 살림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대학을 졸업하여 교사가 되고, 애 셋을 키우면서 밤잠을 줄여 미술교육 학위를 받고, 50이 넘은 나이에 상담심리 공부를 해서 전문상담교사 자격증을 따낸 너의 열정과 끈기는 자랑할만해. 공부한 것들을 교육현장에서 실천할 시간이 많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지만, 100세 인생 시대에 건강관리만 잘하면 남은 절반 가까운 인생에 유용한 자산이 될 거라고 믿어.


네 주변 사람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너를 칭찬해. 맏며느리로 여든을 훌쩍 넘기신 시부모님을 30년 가까이 경제적으로나 마음으로 챙겨드린 건 정말 잘한 것 같아. 덕분에 너의 세 자녀들도 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예의 바른 청년들로 자랐잖아. 혼자되신 친정어머니께서 점점 쇠약해지시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지만, 이제부터라도 더 잘하면 될 거야. 만 28년을 변함없이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노력한 너를 칭찬해. 어릴 적부터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하던 네가 어려운 환경에서도 꿈을 이룬 그날부터 지금까지 재미있는 수업을 하는 선생님, 칭찬을 많이 하는 선생님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멋져. 힘든 상황이 와도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과 때로는 엉뚱한 장난에 ‘빵’ 웃음이 터지는 너는 선생님이 ‘딱’이야.


근검절약하고 소탈한 너의 모습을 칭찬해. 결혼식 대 받은 예물을 IMF 때 처분한 이후로 값비싼 보석을 사 본 적이 없지만, 딸이 만들어준 비즈 액세서리로도 충분히 멋을 낼 줄 아는 멋쟁이라고 생각해. 너의 희망처럼 곱고 멋있게 늙어가는 할머니가 될 거라고 믿어.


칭찬할 점은 많지만 너무 자랑만 해주는 것 같아 이쯤 해두고 몇 가지 당부할게. 먼저 건강을 좀 더 챙기라는 거야. 건강검진에서 발견된 혹만 하더라도 몇 개니? 급한 치료를 요하지 않아 지켜보기로 했지만, 몸속에 혹이 자꾸 늘어가는 건 좋은 일이 아니잖아? 만성적인 인후통과 손가락 관절 변형과 불편한 시력, 무릎 통증 등 당장 병원 순회를 해야 할 판인데 여전히 영양제조차 안 챙겨 먹는 너는 혼이 좀 나야 할 것 같아. ‘체력은 국력이다.’ 영양제 꼭 챙겨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자.


두 번째 당부는 좀 더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는 거야. 일어나지도 않은 온갖 걱정을 미리하고, 성인이 된 세 자녀의 일상까지 간섭하고 걱정하는 모습은 지나친 오지랖이야. 긍정심리학 책을 그렇게 읽고도 아직 마음수련이 덜 된 것 같아.


세 번째 당부는 ‘꼰대’가 되지 말라는 거야. 매일 상상력과 창의성이 넘치는 학생들을 만나는 덕에 젊은 감성에 민감한 편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어느새 고집도 늘고, 새로운 정보와 다른 의견에 귀를 닫는 때가 늘어가는 것 같아. ‘나는 늙어도 저렇게 꽉 막힌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수없이 생각해놓고 “요즘 아이들은~”이라는 말을 하거나 훈계하는 말투로 충고하고 있는 너를 발견할 때마다 깜짝 놀라곤 해. 몸은 늙어가도 마음과 생각은 항상 젊고 새로웠으면 좋겠어.


이렇게 편지를 쓰면서 너에 대해 생각해보니, 그래도 너는 정말 열심히 살아온 멋있는 사람이라 생각돼. 물론 사회적으로 큰 업적을 이룬 것도 아니고, 큰 부를 쌓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너는 정말 대단해. 부지런히 살아왔고 네게 주어진 어느 한 가지 역할도 대충 하지는 않았잖아. 또 너를 꼭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항상 네 옆에 있잖아. 가끔 농담으로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고 했지만 그건 너의 본심이 아닌 걸 알아. 이제 또 ‘화가’라는 새로운 꿈을 향해 이미 발을 내딛고 있는 너를 응원해. 75세에 그림을 시작해서 유명해진 ‘모지스 할머니’보다는 시간이 훨씬 많잖아. 그리고 퇴직 후에도 네가 가진 재능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길 바라. 앞으로 10년은 교사로서, 그 이후에는 화가로, 상담가로, 봉사자로 살아갈 너의 인생 후반이 너무 기대된다.


매일 행복한 날 되길 바라며 이만 안녕! 파이팅!!


2021년 8월 29일

생일을 축하하며 림.




2021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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