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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한줄 Jan 20. 2022

나에게 쓰는 편지

일반부 은상 - 김선희

나에게 쓰는 편지


덥다 덥다 하며 여름과 실랑이하다 보니 어느덧 고놈도 떠날 때가 다 되었네. 있을 때 잘하란 말은 어디다 붙여도 다 말이 되는 거 재밌지 않아? 요즘 지내기 어때? 생소한 일 적응하느라 힘들겠구나. 답답한 마스크 속에 얼굴 숨기고 한숨짓다 보니 벌써 8월 말이지 뭐야. 새직장이라고 출근한 것이 한 달이 다되어가는데 아직 도통 누가 누군지 얼굴도 모르겠고 그래. 인사하려고 몇 마디 주고받아도 말이야. 말똥거리는 눈만 쳐다보고 이야기해서 그런지 다시 보면 또 기억이 안 나는 거야. 애당초 곱든 밉든 간에 눈, 코, 입 죄다 보아야 동그란 얼굴이 떠오르게 만드셨나 보다 생각했다니까.


나는 요즘 익숙한 것, 몸에 배어 버려 한 몸같이 된 습관에서 벗어나려고 노력 중이야. 이 십 년을 아침마다 늘 하던 것처럼, 머리를 매만지고 화장을 하다가 혼자 피식 웃기도 했어. 누가 본다고 이러나 하고 말이야. 당장 출근을 하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비어있는 기숙사 건물로 들어갈 테고, 퇴근할 때나 돼서 몇 사람 마주치는 게 전부일 텐데 아침마다 찍고 바르고 하고 있더라고. 오랜 직장생활에 지칠 대로 지쳐있던 때에 하필 코로나까지 겹쳐 정말 사면초가가 되어버렸잖아. 수입마저 반 이상으로 줄면서 수시로 밀려오는 불안감으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싶으니 오히려 용기가 나더라. 과감하게 헤쳐나가야겠다 맘먹었던 거지. 늘 긴장감과 스트레스로 둘러싸인 복잡한 세상에서 도망치고 싶었어. 그러던 중에 늘 바라던 혼자만의 세상을 만난 거라고나 할까.


‘학생 기숙사 청소’라는 문자가 왔을 때, 사실 나 약간 겁이 나더라. 일자리 구하기 사이트에 접속한 것도 처음이었고, 바라는 직종에 ‘학교 청소’라고 체크를 하긴 했어도 막상 문자를 받고 보니 순간 멍하더라고. 책상에만 앉아 있던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야. 근데 바로 용기를 냈지. 사실 내가 찾던 일이었거든. 사람 없는 곳, 경쟁 없는 곳, 주말 있는 곳, 빨간 날 노는 곳. 모든 게 내가 원하는 것과 딱 맞았으니 얼마나 좋았겠어. 뭐, 물론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도 하고, 걱정도 하고 염려도 하고 그러긴 했지. 어떤 친구들은 “네가 그런 일을 하게 될 줄 몰랐다”면서 속상해하지 뭐야. 글쎄 뭐 그럴 일도 아닌데 말이야. 그동안 정신노동을 했으니 이젠 머리는 좀 쉬게 하고 적당히 몸을 움직이다 보면 전체적인 균형도 잡히고 얼마나 좋아. 내가 새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고 염려도 했는데 그거 다 괜한 걱정이었어. 한 달쯤 일 해보니 나랑 정말 잘 맞는 거 같아. 난 내가 잘 해낼 줄 알고 있었어.


사실 걱정이 있었다면 이전보다 현저히 적어진 수입이었지. 그래서 직업을 바꾸는 것에 대해 미련이 있던 것도 사실이야. 그 돈이 꼭 필요하다기보다 자신의 가치가 작아진 것을 인정하는 것이 어려웠던 거야. 누구나 사회생활이 왕성할 때는 최고의 능력과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않았겠어. 그러나 나이를 먹다 보면 경쟁력도 떨어지고, 성과도 낮아지고 처우도 변하게 되는 거. 그것을 인정하고 나니 모든 상황에 순응하게 되더라.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것은 정말 별거 없어. 이전에 걸었던 산티아고 순례길을 한번 생각해봐. 출발하려고 배낭을 쌀 때 말이야. 혹시나 해서 집어넣던 것, 불안해서 넣었던 것들이 막상 걷다 보니 모두 내 몸을 괴롭히는 짐이 되었잖아. 결국 그 짐들은 얼마 못 가서 하나씩 꺼내어 두고 다시 길을 떠나야 했지. 배낭 하나만 채워 두 달을 걷고 다녔지만 지내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는 것과, 그동안 살면서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는 부끄러운 맘도 들었었어. 그렇게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뭔지 기억나? 입지도 않으면서 주렁주렁 걸어놨던 옷, 가방, 모자를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줬던 일이잖아. 서랍 속의 양말을 세어보니 내가 죽을 때까지 신어도 다 못 신고 갈 만큼 많아서 얼굴이 다 화끈거리더라. 내 안에 꽉 찬 물욕이 이 정도였구나 싶어 정말 반성 많이 했어. 다려진 블라우스에 선이 고운 스커트를 입고 출근도 해 봤고, 남보다 넉넉한 월급으로 아이들 뒷바라지도 해 봤으니 무슨 미련이 있겠어. 이제 나도 내 인생 후반기를 알차게 보낼 수 있는 일을 해보려고 하는 거야. 건강을 위해서 주말에 좋은 길 찾아 걸어도 보고, 가족들과 시간도 많이 갖고, 친지들도 찾아뵈며 그동안 바쁜 일상으로 못했던 일을 해보려 해.


마지막 하나. 정말 내가 도전하고 싶은 게 있어. 오 년 전 오십 중반 늦은 나이에 방통대 입학을 한다고 했을 때 말이야. 과연 환갑 전에 졸업이나 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했지만 무사히 졸업했잖아. 글을 쓰고 싶어 한 공부이니 이제 남는 시간에 글을 좀 써 보려고 해. 행복한 마음으로 좋을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 어느 자리에 있는지 내 삶의 주인공이 되어 마지막 페이지까지 잘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 분명 잘할 수 있을 거야.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멋질 너의 인생을 위해 끝까지 응원할게. 김선희 파이팅~!!! 잘해보자고~


늦여름의 지루함과 다가올 가을에 대한 설렘의 가운데에서,

金 善 熙.

2021. 08. 29.




2021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수상작

일반부 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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