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부 동상-이선옥
날이 요즘 부쩍 무더워지고 있지만 녹음이 짙어가고 있으니, 삶에 지친 마음이 한결 위로가
되는듯 해. 당신에게도 그런 위로가 있었으면 좋겠네.
당신에게 편지를 쓰려니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 문득 연애 시절부터 결혼하고
아이 낳아 키우던 옛날의 기억을 천천히 떠올리게 되네. 근데 왜 눈물이 먼저 아른거리는지,
행복하기도 서글프기도 했던 우리의 옛 추억이 이렇게 진한 감정으로 다가오나 봐.
대학을 졸업하고 똑부러진 직장 하나 갖지 못해 이론 나이부터 학원 강사로 일하다가 학원
에서 만난 당신, 처음엔 내 남편이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던 나의
20대에 내 곁에 우연히 다가와 버팀목이 되어 주었지. 늘 재미난 말로 메마른 내
마음을 녹여 주었고, 당신에게 확신이 없었던 나에게 "걱정하지마, 난 나중에 학교를 설립할
사람이야!" 하며 굳은 믿음을 주려고 노력했지. 그땐 왜 그렇게 두려웠을까? 당신과의
결혼이 잘한 결정인지 나 자신을 믿을 수 없어서 늘 불안했던거 같아. 그래서 추석 명절,
가족들이 모두 모여 있는 당신 집에 갔다 와선 그렇게 펑펑 울었는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결혼해서 소꿉장난 하듯 신혼을 보내며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 보니 내가 조금씩
강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일까? 그 책임감이
괜한 욕심과 불안감으로 힘들 때도 있었어. 특히 아이들 교육시키는 어린 시절엔 늘 돈이
없어 한숨만 쉬며 당신이 언제 월급을 가져다 주나 눈치만 보고 살았지. 학원 사업을 하며
매달 돌려 막아야 할 것들이 수두룩한 상태에서 난 당신에게 손 벌리는 게 늘 힘들었어.
그래도 나에게 눈치 보지 말고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한 당신이 고마웠어.
경제적으로 어려워 시부모님을 내 집에 모셔와 아이들을 맡기며 일을 하러 다닐 땐
정말 젊었으니까 모든 걸 견디며 살았던 거 같아. 어머님과의 신경전, 할 일이 배로
늘어난 집안일들이 너무 버거워서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나. 지금도 우리집
가까이 모셔와 시부모님을 살펴야 한다는 게 중압감으로 다가오지만 우리가 받은 은혜를
갚고 살라는 하나님의 미션이 아닐까 생각해. 그래도 나에게 부담 안 주려고 일주일에
한 번씩 부모님 집에 들러서 식사 챙기랴, 필요한 거 장봐다 주랴 고생하는 당신! 정말
고마워.
직장 때문에 당신과 떨어져 지내온 세월이 10년이 넘었다고 하니 믿기지 않네. 벌써
그렇게 됐나? 처음엔 떨어져 있는게 너무 안쓰러워 걱정도 많이 했지. 식사는 잘 하고
있나, 회사 기숙사에 늘 남자들만 있으니 술, 담배로 쩌들어 살진 않나, 건강 염려증도
있었고 근데 이젠 나 혼자 지내는 이 생활이 익숙해졌나봐. 안 그러면 퇴근하고 피곤
한데 식구들 식사 챙기는 거며 마지막 문단속까지 다 내 몫일거 같아 힘들거라 생각해.
나도 깡마른 체형으로 부산 떨며 살다 보니 이젠 허리 통증에 손가락 관절염까지 안 아픈
데가 없네. 당신도 어깨가 계속 아프다고 하니 마음이 쓰이긴 해. 직장에서 몸 쓰는 일을
많이 해서 병난 게 아닌가 내가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아프면 병원 치료 받으며 건강
관리 잘했으면 좋겠어. 덧붙이자면 이젠 금연도 하고 비만 관리도 해야 하지 않을까?
요즘 배가 많이 나왔던데... 당신은 나한테 잔소리 대마왕이라고 놀려댔지? 사는
동안엔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같이 늙어갔으면 해서, 또 당신이 다른 사람 보기에도 멋진
사람으로 보여지길 원해서 귀담아 듣지도 않는 잔소리만 늘어놓게 되나봐.
우리, 애들도 독립해서 각자 잘 살고 있으니 부모된 우리도 애들한테 걱정 안되게
잘 지내야 할 거 같아. 머지 않아 퇴직하고 둘만 덩그러니 집에 남아 있을 텐데, 같이
산책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찾아 먹으러 다니며 재미나게 살았으면 좋겠어! 당신이 좋아
하는 바다 낚시도 함께 가자. 예전엔 결혼 기념일마다 둘만의 여행을 하고 저녁 식탁
에서 케이크에 와인 한 잔으로 분위기를 냈었는데, 그 시절이 그립다. 나이 들었다고
무미건조하게 타인처럼 거리두지 말고 서로 사랑하며 건강하고 즐겁게 삽시다. 물론
각자의 자유는 존중해 주고, 서로 듣기 싫어하는 잔소리는 하지 않기로 해요.
"사랑합니다."
2025. 6. 20. 당신의 연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