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3반 담임선생님께

일반부 장려-배정주

by 편지한줄

선생님 안녕하세요.

초면에 불쑥 편지를 쓰게 되었네요.

저는 2학년 3반 고원이 할머니 배 정주입니다.

여린 새싹 보살피느라 얼마나 애쓰실지요.

할머니로서 손자의 담임선생님께 편지를 쓰게 되니

반가우면서도 떨리고, 한편으로는 선생님이 놀라지는 않으실까

염려도 되는군요.

이젠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저의 아들이 어렸을 때

담임선생님께 편지를 써본 이후로, 학교선생님께 드리는

몇십 년만의 편지입니다. 이젠 어머니가 아니라 할머니로서

쓰는 편지여서 감회가 새롭군요.

고원이를 잘 보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힘드시지요

평생을 교직에 몸 담아온 저로선 교사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며칠 전 아들이 가족회의를 소집했을 때 불길한 예감이

스쳤어요.

저의 예상대로 우리는 가족회의를 무척이나 힘들게

진행해야 했습니다.

아들 내외가 부모로서 겪었을 마음의 상처가 안쓰럽더군요.

부모의 마음이니 오죽 아팠을까 싶었습니다.

며느리가 선생님의 호출로 학교로 오갈 때의 걸음을

헤아려 보았어요. 얼마나 멀고 긴 길이었을까요.

학교 상담선생님께서 고원이 진단을 받아보라고 권유하실

때도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는 고원이는 너무나 착하고 심성이

바른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아홉 살이 될 때까지 가까운 곳에 사는 고원이는 우리와

자주 시간을 보냈고, 문제적 행동을 한 적이 없는 쾌활하고

긍정적인 아이입니다.

그런 고원이가 ADHD 진단을 받았다니 놀랐지만 긍정적인

방향을 모색 중입니다.

선생님이 며느리에게 보내준 사진 속의 고원이가 축구 골대

앞에 혼자 있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저렸어요.

세게 차지 말라는 선생님 말씀에도 공을 뻥뻥 차다가 친구

머리에 맞았으니 혼자 격리된 것이겠지요.

하지만 고원이가 일부러 친구머리를 향해 공을 차지는

않았을 거예요.

고원이가 친구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니 용서하셨으리라

믿어요.

고원이가 혼잣말을 크게 하고, 친구들에게 장난치는 걸

좋아한다니, 그것 또한 잘 가르쳐 보겠습니다.

지금 학급에 19명이라 고원이가 짝이 없다니

혼자 앉더라도 격리되는 마음이 들지 않도록 가까운

곳에서 사랑으로 지켜봐 주세요.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선생님은 피곤하시겠지요.

하지만 학교에선 선생님이 부모이니 교원이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선생님만큼 위대한 존재가 있을까요?

헬렌 켈러가 보지도 듣지도 못할 때 자신의 입술 모양을

만지게 해서 글자를 익히도록 도와준 설리번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그분이 없었다면 헬렌 켈러라는 사람은

없었을 거예요.

정년을 2년 남겨둔 지금, 저는 설리번 선생님처럼

제자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돌아볼 때가 부쩍 많아졌어요.

어른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아이들을 속박하지는 않았을지요.

지금 선생님이 고원이에게 쏟아주시는 관심은 저를

부끄럽게 합니다.

저는 고원이를 믿어요. 선생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착한 아이입니다. 넘치는 에너지는 어디에 적절하게

써야 할지, 공공장소에서의 에티켓은 어떻게 지켜야

할지, 더 세밀하게 관찰하고 돌보겠습니다.

칭찬과 사랑으로 고원이를 보살펴주시는 선생님이

계시니 고원이에게 있는 어떤 문제도 긍정적으로

해결되리라 생각합니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도 ADHD가 아니었을까요?

우리 가족은 고원이의 에너지를 잘 분상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책을 사고 논문을 읽고 서로 가족 회의를 하면서요.

아프리카에선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마을 전체가 힘을 모으는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감히 선생님께 편지를 드리는 건 선생님과 우리가족이

힘을 모으고 싶은 간절함이 있기 때문이에요.

아이를 사랑으로 이끌었을 때 모든 문제들이 사라질 것을

확신합니다. 칭찬과 관심으로 고원이가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부족한 할머니의 간절한 당부 올립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2025년 6월 25일

고원 할머니 배 정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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