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픽사, 지브리 작품으로 보는 애니메이션 시나리오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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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질문부터 해보겠습니다. 이야기란 무엇일까요? 관점에 따라 다양한 정의를 내릴 수 있겠지만, 크게 본다면 아래와 같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무언가를 무척이나 원해서 그것을 추구해나가고
그 과정에서 장애 요인을 만나지만 헤쳐 나가는 과정을 통해
처음 원하던 바를 얻거나, 혹은 얻지 못하거나, 혹은 전혀 다른 것을 얻게 된다.
<인사이드 아웃>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라일리의 머릿속 기쁨이는 라일리가 항상 기뻐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슬픔이가 라일리의 감정을 슬프게 만들지 못하도록 막다가 슬픔이와 함께 본부 바깥으로 튕겨져나간다. 기쁨이는 본부에 자신이 없으면 라일리가 행복할 수 없기에 빨리 본부로 돌아가려고 한다.
본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라일리의 머릿속 세상을 모험하며 복귀를 위해 고군분투하던 기쁨이는 마침내 기억 폐기 장소에 버려진 구슬 하나를 발견하고, 슬픔은 기쁨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본부에 복귀한 기쁨이는 전과 달리 슬픔이가 패널을 만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가출했다 집으로 돌아온) 라일리는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느끼고, 어린 아이에서 사춘기 청소년으로 성장한다.
1은 주인공의 욕망, 2는 장애 요인과의 갈등, 3은 변화의 경험을 나타냅니다. 1, 주인공의 욕망은 다양한 방식으로 형성됩니다.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욕망일 수도 있고, 상황의 변화에 따라 형성되는 욕망일 수도 있습니다. 성격에 기반한 욕망일 수도 있고, 성격과는 무관한 욕망일 수도 있습니다. 욕망은 능동적일 수도 있고, 수동적일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는 주인공이 무언가를 욕망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감상자로 하여금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만듭니다. 주인공에게 이입한 감상자는 주인공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주인공과 그 주변을 둘러싼 비밀 중에서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며 이야기를 지켜봅니다.
주인공은 적대자 혹은 문제 상황 등 장애 요인과 마주칩니다. 둘은 서로 대립하며 주인공은 때론 장애 요인에 휩쓸리기도 하고, 반대로 극복하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해나감으로 인해 전개가 심화되고, 더 큰 갈등을 마주하게 되는 만큼 감상자의 몰입도를 더욱 높입니다. 그러는 한편 초반에 다 설명되지 않았던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 혹은 장애 요인에 관한 본질적인 정보가 추가적으로 제공되기도 합니다.
주인공은 이야기의 끝부분에 다다라서 가장 큰 갈등 상황을 마주하게 되고, 연이어 가장 큰 변화를 경험합니다. 가장 극적인 부분이기에 그것이 어떤 감정이 되었든 가장 커다란 감정적 충격 혹은 여운을 선사하며, 더불어서 감상자들에게 전달되는 메시지 또한 가장 강렬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물론 욕망보다는 주인공의 근원적인 성격, 혹은 장애 요인이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도 합니다. 감정적 충격이나 메시지 또한 흔히 클라이막스라고 부르는 지점 외의 지점에서 갑작스럽게 전달되기도 합니다. 이런 변형 모델들 또한 차근차근 배우게 될 것입니다. 각론에 대해서도 더 디테일하게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이야기의 정의는 이야기의 큰 틀뿐만 아니라 장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 또한 기억해두시면 좋습니다. 장면에서도 장면을 주도하는 인물이 있고, 장애 요인과의 갈등을 통한 전개가 있고, 변화를 경험하는 전환점이 존재합니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라일리가 전학 온 학교에 첫 등교하는 장면을 보겠습니다. 라일리는 이사야 어찌되었든 새로운 학교에서는 기분좋게 출발하려고 마음먹고 등교를 합니다. 선생님은 라일리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하고, 라일리는 미네소타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라일리의 머릿속에 있던 슬픔이가 핵심 기억 구슬에 손을 대는 바람에 해당 기억이 슬픔으로 물들고, 라일리는 갑작스레 눈물을 머금습니다. 기쁨이는 슬픔이를 만류하려다가 그만 슬픔이와 함께 본부에서 빨려나가게 됩니다. 장면 안에도 기쁨이라는 주도적인 인물이 존재하고, 라일리의 교실 상황, 머릿속 본부 상황이 얽히며 전개되고, 마침내 기쁨이와 슬픔이가 본부 바깥으로 빨려나가는 동시에 라일리의 감정이 소거되는 변화도 존재합니다. 이야기를 이루는 구성 성분은 크든 작든 동일합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 안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의 제목에서도 밝혔듯 앞으로 전개하는 이야기의 구조는 디즈니, 픽사, 지브리의 작품을 기준으로 설명할 것입니다. 이야기의 정의 범위를 좁히는 이유는 그래야만 심도 있는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이야기의 영토를 한 데 묶어 설명하려면 결과적으로는 개괄적 설명에 따르는 손실율 때문에 손에 쥐게 되는 것은 별로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디즈니, 픽사, 지브리의 작품으로 범위를 한정해서 이야기해서, 이 한 권의 책을 다 읽었을 때는 "나도 이런 종류의 이야기라면 이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느끼도록 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