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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본부 Jun 21. 2021

[02] 구조와 구성

디즈니, 픽사, 지브리 작품으로 보는 애니메이션 시나리오의 구조

목차 : https://www.notion.so/a35af4313127472fafbfde94d1fccfea


구조와 구성

건물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하나의 목조 건물이 여러 개의 기둥과 보, 서까래, 벽채 등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하나의 이야기에도 캐릭터, 장면, 시퀀스, 갈등, 변화, 장 등 여러 가지 요소가 한 데 어우러져 있습니다. 하나의 요소가 다른 요소와 모여 전체를 이루고, 서로 다른 요소가 한 데 어우러진 이러한 양상을 우리는 구조(plot)라고 부릅니다.

작가(作家)라는 말뜻을 한자 그대로 풀어보면 집을 짓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작가는 이야기라는 집을 설계하는 건축가이자, 설계한 집이 이상이 없는지, 안전한지 계산하는 구조공학자이기도 합니다. 창작자는 이야기의 구조를 만듭니다.  행위,  이야기의 구성 요소를 선택/배제하고, 순서를 결정하는 과정 등의 모든 행위를 구성(ploting)이라고 합니다. 간단히만 예를 들면 <하울의 움직이는 >소피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장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습니다. 주인공과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해서 무조건 많은 장면을 할애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야기는 소피와 하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소피와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는 대폭 배제하고 필요한 만큼만 보여주기로 창작자는 결정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선택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과정이라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창작자마다 이야기를 어떻게 정의하는지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어떤 창작자는 작법이라고 규정된 규칙 안에서 작업하기를 선호합니다. 픽사에서 선보이는 작품이 보통 그렇습니다. 픽사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매번 세계관과 인물들이 다른데도, 러닝 타임의 비슷한 지점에서 비슷한 일들이 발생합니다. 주인공의 욕망을 주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도 눈에 띄는 공통점입니다. 어떤 창작자는 규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브리에서 나오는 작품이 그런 경우입니다. 지브리 작품은 주인공의 욕망을 중심 축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클라이막스에 주제가 전달되는 작품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습니다. 비교적 작법이라는 틀에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구축하는 편입니다. 한편 디즈니는 작법 안에서 작업하면서도, 어린이 감상자들을 타깃으로 삼는다는 목표가 분명하기에, 개연성을 포기할 때는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이 특징적입니다.


클래식과 재즈

클래식 음악은 작곡가의 의도가 최우선입니다. 클래식 작곡가는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려하게 음들을 쌓아 올렸는지, 클래식 연주자는 작곡가의 의도를 얼마나 정확하게 포착해서 섬세하게 표현했는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재즈는 조금 다릅니다. 클래식과 달리 자유로움과 즉흥성이 가장 강조되는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불협화음도 얼마든지 수용해서 표현의 한 요소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이 둘을 뒤섞는 경우도 있습니다. 클래식 곡 중에도 불협화음을 수용하는 경우가 있고, 재즈 연주자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다 프리 재즈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협업의 문제

언제나 문제는 협업을 할 때 발생합니다. 재즈를 전공한 피아노 연주자와 클래식을 전공한 바이올린 연주자가 만나 협주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어떨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조율해나가야 할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닐 것입니다. 구조와 구성을 논하는데 왜 이런 얘기를 꺼내냐구요? 협업하는 글쓰기에서는 다른 무엇보다 파트너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나와 죽이 잘 맞는 파트너와 일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그걸 마다하는 창작자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어느 정도 운이 작용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나와는 성향이 완전히 다른 사람과 협업하게 된다면 어떨까요?


서로 다른 창작자의 창작 성향

예를 들어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두 창작자가 이야기를 처음부터 기획한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작가고, 작법 안에서 작업하기를 선호한다고 합시다. 그런데 함께 일하기로 한 감독은 구조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재미있는 장면의 연속, 혹은 반대로 작품을 통해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일단은 "말이 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당신은 그러한 감독의 관점이 불안합니다. 당신의 최우선 관심사는 구조와 개연성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구조와 개연성에 대해 당장 고민하지 않는 그들이 잘못된 것일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작업 과정에서 우선 순위로 놓는 항목이 서로 다를 뿐입니다.

창작자마다 이야기를 기획하고, 발전, 안착시키는 방법이 다릅니다. 우리는 앞으로 디즈니, 픽사, 지브리의 작품을 검토해보면서 세 회사가 본질적으로 이야기를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다른지를 파악하게 될 것입니다. 짧은 시간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쓰면서 주변에 있던 작가들이 협업 과정에서 어떤 스트레스를 받아 작업을 포기하는지 적지 않게 목격해 왔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상대의 성향을 알게 되면 그가 하는 말의 의도가 무엇인지, 왜 그렇게 말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되고, 포기할 확률도 0%라고 장담할 순 없지만 현저하게 줄어들게 될 것은 분명합니다. 이제 구성이 정말로 무엇인지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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