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형에 대해 말하려고 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어쨌든 그는 어렸을 때 알고 지내던 동네 형이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형에 대한 기억은 그가 즐겨 먹던 간식이다. 어느 날 그는 작은 약통을 내게 불쑥 내밀었다. 열어 보니 약통 속은 알 수 없는 분말로 가득 차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나는 수상한 눈길로 형을 바라보았다. 형은 한번 맛을 보라며 그것을 내게 권했다. 여전히 내가 경계를 풀지 않자 형은 시범을 보이듯 자신이 먼저 통에 든 수상한 가루를 입안 가득 털어 넣고 오물오물 씹었다. 그 순간 안심이 됐다고 할 수는 없고, 다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서 나도 그 미심쩍은 가루를 입에 대 보았다. 혀끝에서 느껴지는 맛은 다름 아닌 인스턴트 커피였다. 나는 깜짝 놀랐다. 커피 가루와 프림, 설탕을 섞어서 약통에 담아 들고다니면서 먹는다니. 심지어 그게 이렇게 놀라운 맛을 자랑한다니.
“어때?”
그가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그 통에 든 가루를 한 번 더 입에 털어넣었다. 정말이지 맛있었다. 집에 가서 나도 따로 먹어봐야겠다고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나는 커피가 어느 회사에서 만든 제품인지를 물었다. 형은 시중에서는 팔지 않는 거라고 대답했다. 뚜껑을 닫고 약통을 탬버린처럼 짤랑거리면서 말했다.
“내가 직접 섞은 거거든.”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나는 그처럼 경제적이면서 창의적으로 무언가를 해내는 사람을 지금껏 본 적이 없다. 다른 많은 학생처럼 당시 그와 나도 컴퓨터 게임에 심취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고가의 게임 CD를 살 돈이 없었다. 그래서 천 원, 이천 원씩 모아서 만 원, 이만 원으로 만든 다음 청계천으로 갔다. 그런 날이면 형은 줄곧 나를 데려갔다.
그때 청계천에서는 천 원짜리 한두 장이면 게임 CD 하나를 살 수 있었다. 대개 중국이나 일본에서 오래전에 출시되었거나 조악하게 만든 것들이었다. 게임 CD 여러 장을 사보면 실행조차 안 되거나 치명적인 버그로 더 이상 진행이 안 되는 게임도 많았지만, 더러는 내가 몇만 원을 주고 구입한 게임보다도 더 재미있는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재미있는 게임을 골라내는 형의 직감을 흉내 내기 위해 나 혼자 청계천에 원정을 떠나기도 하였으나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오직 그만이 CD케이스 앞뒤에 꽂힌 인쇄물을 보는 것만으로 재미있는 게임을 식별할 수 있었다. 그 경지는 도저히 나로는 흉내낼 수 없는, 보다 더 높은 차원의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고가의 게임 CD와 형의 것들을 기꺼이 맞바꾸어 플레이했다.
수중에 그마저도 돈이 없을 때 형은 동네 주민센터 2층에 있는 지식정보방에 갔다. 그곳에 비치된 컴퓨터는 PC방 컴퓨터보다는 사양이 한참 떨어지는 것이라서 일반적인 게임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인터넷 TRPG라는, 그림과 글로만 이루어진 게임의 존재를 나는 그곳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우리가 하도 오래 앉아 있는 바람에 9급 공무원에 의해 쫓겨날 때까지도 TRPG가 주는 흥분이 가시지 않으면 형은 돌아오는 길에 나에게 룰을 설명해주면서 말로 주고받는 또다른 TRPG를 시작했다. 마법사 역할을 맡게 된 그가 지진 마법을 사용하겠다고 선언하면 곧 이어서 오로지 목소리로만 이루어진 지진 효과음이 뒤따르는 식이었다.
“뜨드드드드드!”
지진 마법은 상위 클래스에 속하는 공격 마법이었고 피하기가 쉽지 않은 광역 대미지를 주었으며 공격력이 매우 뛰어났다. 형이 지진 마법을 시전한 이상 나는 그에 대한 리액션을 취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윽!”
“대미지 100. 너 피 10 남았어.”
게임에 대한 형의 사랑은 조금 지나친 데가 있는 게 사실이었다. 형은 거의 게임 말고는 몰랐으니까. 거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그의 부모님은 일찌감치 고속버스터미널에 오락실을 열어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 잘 살아가고 있었다. 형은 동전이 포대자루에 담겨 드나들고 전자오락 배경음과 효과음이 정신없이 울려퍼지는 오락실에서 유년을 보냈다. 또래의 누구보다 게임에 대해 잘 알았고, 능숙하게 플레이했고, 무엇보다 좋아하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핑계라면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 모든 것은 IMF 때문이었다. 오락실이 문을 닫게 된 것도, 집안 사정이 거짓말처럼 어려워진 것도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마치 원두 가루와 설탕, 프림의 비율을 정확히 맞추고 그 가루를 약통에 보관해서 혀로 녹여 먹는 최적의 식용 방법을 찾아낸 것처럼 그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게임을 계속 하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터득했다. 아침에 빵을 사먹으라고 부모님이 준 천 원짜리 지폐를 삥 뜯는 형들한테 두들겨 맞으면서도 지켜내며 돈을 모았고, 나와 함께 수시로 청계천에 갔으며, 여지없이 좋은 게임을 골라냈다. 얼마 되지 않는 푼돈마저 수중에 없을 때는 주민센터 2층 지식정보방에서 TRPG를 하면서, 그것도 안 될 때는 언어로 룰을 고안하고 말하면서 게임을 즐겼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IMF라는 커다란 규모의 지진이 우리나라를 빗겨갔더라면, 그래서 그의 부모님이 운영하던 오락실이 문을 닫지 않았더라면 그는 게임으로 먹고살 수 있는 무엇이라도 되지 않았을까. 김택진이나 임요환 같은 사람은 아니더라도 게임을 만든다거나 정말로 잘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그와 연관이 있는 업종의 일을 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았을까.
얼마 전에 형에게 연락을 해 보았다. 최근에는 온라인 게임은 완전히 접었고 콘솔 게임만 이렇게 저렇게 가지고 논다고 그는 말했다. 통화를 하는 내내 형은 늦게까지 일하고 퇴근하면 잠자기 바쁘다고 엄살을 피웠다. 나와 흡사한 처지였다. 재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내가 털어놓으니, 자기도 실은 얼마 안 됐다고 대답했다. 형 또한 작년 12월에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떠나보냈다는 거였다. 우리는 서로 못 가봐서 미안하다는 말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서로의 소식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과거에는 IMF라는 지진이 우리 삶의 지형을 뒤바꾸어놓았듯 얼마 전에는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또 하나의 거대한 지진이 나와 그를 차례대로 흔들어 놓았다. 앞으로 그와 비슷한 규모의 강진이 우리를 몇 차례나 더 흔들어 놓을지 모르겠지만 다만 우리는 그것을 견디고 살아남아야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이 어렵게 세워 놓은 오락실이 붕괴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형은 지진 마법으로부터 살아남아야 하는 건 비단 게임 속 캐릭터만의 고뇌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우쳤던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 이유가 아니라면 그가 그토록 게임에 매료되었을 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