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본부 작가 노트 : 제3의 시공간

by 김본부
02. 중첩 75x143cm Acrylic on Hanji Mounted on canvas 2025 (250426) (보정).jpg 중첩 75x143cm Acrylic on Hanji Mounted on canvas 2025



<중첩> 시리즈는 내가 평소에 작업하던 웹툰이나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등의 시나리오의 A4 수정 원고에 있던 교정부호를 옮겨 그린 것이다. 그렇기에 내용적으로는 완성되지 않은 상태이고, 감상자에게 작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형식적으로는 완성 상태다. 따라서 작품의 제목은 필연적으로 <중첩>이 되었다. 서로 다른 질감의 시간이 충돌하니까. 이러한 중첩 상태의 회화적 평면은 과정도 결과도 아닌, 둘이 결합한 제3의 시공간을 창출한다. 제3의 시공간은 창작자와 감상자가 관계 맺는 방식 그 자체를 모방한 메타적 시간이다.


감상자와 창작자는 작품을 통해 소통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완전한 소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둘의 소통을 막는 것에는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내 관심사는 감상자와 창작자가 작품을 만들고 감상하는 구조 자체에 있다. 나는 감상자가 결국 완성된 작품을 감상할 수밖에 없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명제에 의문을 갖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창작자, 작품, 감상자가 하나의 수평선 위에 가로놓이는 종래의 3항 구도를 뒤로 하고, 제3의 시공간 안에서 이 셋의 관계를 조금은 다른 방법으로 재규정하고 싶다. 제3의 시공간 안에서는 창작자, 작품, 감상자 사이의 관계 모델은 하나로 딱 떨어지지 않고 주체가 무엇이냐에 따라 그 도상이 달라진다.


먼저 작품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3항의 관계 모델은 문과, 그 안팎에 서 있는 존재로 이루어진다. 이때 문은 작품이고, 문 안에 있는 존재는 창작자, 그리고 문 밖에 있는 존재는 감상자다. 작품이라는 문은 안에서는 열리고, 밖에서는 열 수 없다. 이러한 한계는 창작자와 감상자가 지닌 작품에 대한 정보량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며, 그것을 “문”에 비유하는 이유는 감상자가 작품 너머에서 나오는 관성에 이끌리기 때문이다. 감상자는 작품을 보며 자연스럽게 질문한다. 이 작품은 뭘 나타낸 거지? 창작자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거지? 작품 너머를 향한 감상자의 이와 같은 관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그 너머로 갈 수 없는 불가능성이 작품을 “열리지 않는 문”으로 만든다.


감상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3항 구도는 종래의 3항 구도와 같이 평행선상에 나란히 놓이지만, 순서가 다르다. 감상자, 창작자, 작품 순이다. 또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창작자는 감상자에 의해 선택되기도 하고, 배제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감상자는 작품을 감상할 때 창작자를 배제하고 작품을 작품 그 자체로서 감상하기도 하지만, 마치 사진을 찍을 때 필터를 사용하듯, 선택적으로 작가라는 프레임을 선택해 작품을 바라보기도 한다. 작품을 감상하는 감상자에게 창작자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선택적인 존재다.


창작자 입장에서 3항 구도를 바라볼 때 작품은 껍질이 된다. 껍질 내부에 채워진 알맹이는 당연하게도 창작자다. 감상자는 작품이라는 껍질을 외부에서 바라볼 뿐이다. 창작자는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전 과정에 전적으로 개입하며 작품의 시작과 끝, 그리고 감상자는 절대 알 수 없는 내밀한 것까지 다 알고 있다. 작가는 이와 같은 창작 행위 그 자체로 작품 내부를 가득 채운다. 또한 작품이 완성된 이후에도 끊임없이 창작자는 작품 내부에 머무르며 생각을 재정리한다. 감상자가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에도 창작자는 완성된 작품을 바라보되, 감상자의 그것과는 다르게 창작자만의 주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한편 고립되어 있다는 점은 감상자도 마찬가지다. 감상자 또한 작품 내부로 들어오지 못하고, 오로지 작품의 바깥에서 작품을 감상할 뿐이다.


나는 이와 같이 종래의 단순했던 창작자, 작품, 감상자 3항 구도를 보다 입체적으로 서술함으로써 소통의 방식을 좀 더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작품을 통한 소통의 한계점에 대해 직시하고자 한다. 어쩌면 우리는 작품을 통해 소통하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우리는 각자 서로의 일을 하며, 자신의 시선을 통해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고, 보고 싶은 것을 볼 따름인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창작자와 작품, 그리고 감상자의 관계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채, 그 자체로 완성되는 아이러니를 가능하게 한다. 제3의 시공간에서는 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김본부 작가 노트 : 시간이 겹치는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