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이자, 작가이자, 작가

by 김본부

몇해 전 클럽하우스라는 앱이 잠깐 유행한 적이 있다.

글이나 영상이 아닌, 서로의 목소리로 소통하는 SNS였다.

나도 호기심에 몇 번 이용해 봤는데,

거기에는 핫한 것을 찾아다니는 감각 좋은 사람이나 인플루언서도 많았고

기업 CEO나 연예인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조금 특이하다고 느꼈던 점은, 사람들이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이었다.

이용자들 중 몇몇은 자신의 프로필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직업을 병렬시켜 놓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배우이자, 식품회사 경영자이자 안무가.

혹은 영화 프로듀서 겸, 작곡가 겸, 환경운동가.

10개라고 하면 너무 과장이고, 직업이 5, 6개가 되는 사람도 더러더러 보였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프로필을 보면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대체 뭘 하는 사람이라는 거지...?

하는 일의 수가 한 두 개만 됐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런가보다 했을지 모른다.

가령 프로듀서 겸 환경운동가라면, 프로듀서로 돈을 벌고, 시간이 날 때 환경운동을 하시나?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그들이 자신을 지나치게 과대포장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당연히 생각이 바뀌었다.

그렇게 된 데에는 내가 겪는 직업적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한몫 했다.

나는 극영화, 다큐영화, 애니메이션의 시나리오를 썼으니 영상매체 관점에서 보면 시나리오 작가다.

웹툰을 기획하고 스토리를 만들었으니 웹툰 글작가이기도 하다.

시나 소설, 에세이도 썼기에 출판의 관점에서도 작가가 맞고

(이제 막 첫발을 내딛긴 했지만) 회화 작업도 하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이쪽 바닥 또한 창작자를 "작가"라고 부른다.

결국 작가라는 이름으로 수렴되는 게 사실인데,

문제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와 TV 시리즈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작가의 일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독립 다큐멘터리 구성안을 쓰는 것과 회화 작업을 하는 것이 하늘과 땅 차이인 것처럼.

그래서 나는 누군가 내게 뭐 하는 사람인지 물었을 때

작가이자, 작가이자, 작가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는 편의상 줄여서 그냥 작가라고 말한다.

가끔 뭐하는 작가냐고 한 번 더 질문을 받게 되면 그 때부터 나는 좀 말이 길어진다.

하지만 이런 건 약간의 불편함일 뿐이고

가장 중요한 건 나 스스로 내가 대체 뭘 하는 사람인지가 정말로 궁금하다는 점이다.

글을 쓴지는 정말 오래 되었고, 오히려 이전에는 커리어가 약간 부족한 상황이더라도, 지향점이 비교적 분명해서 정체성(?)의 혼란은 훨씬 덜했다.

지금은 지향하는 곳이 없냐하면 그것도 아닌데...

뭘까 이 아리송함은.

혹시 나이를 먹어서 이러는 건가.

아니면 출세작이 생기면 이런 문제가 좀 해결이 되려나?

지금 시점에서 내가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은 클럽하우스의 파이브잡, 식스잡을 뛰는(?) 그 사람들의 심정 정도인 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애니메이션 회사와 처음 일했을 때도 비슷했다.

애니메이션 경력이 없던 나는 영화, 시, 소설, 에세이 할 것 없이 그동안 내가 썼던 작업들을 총망라해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제출했었으니까.

산다는 건 어쩌면 라인업을 짜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일단 되는대로 가지고 있는 선수들을 총출동시키다가, 새로운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가장 안좋은 선수를 방출하는 식으로 팀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

어쩌면 이게 최고의 팀을 만드는 최선의 방법인지도 모른다.

영입과 방출을 계속 반복하면서 최고의 조합을 찾아내는 것 말이다.

기왕이면 그때가 좀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자기소개를 할 때 입이 좀 덜 아플 것 같다.

정말이지 이제는 좀 올 때도 되지 않았나...?











작가의 이전글김본부 작가 노트 : 제3의 시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