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에는 처음과 끝이 있다.
이야기 창작의 처음과 끝도 있다.
그렇다면 이야기 기획에도 처음과 끝도 있을까.
있다.
당연히.
창작자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스토리 개발의 첫 삽을 뜬다.
누구는 호기심, 누구는 발언 욕구 뭐가 됐든지간에.
그리고 어떤 순간에 도달한다.
뭔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느낌.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
재미가 없다는 느낌.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니라는 느낌.
이런 느낌은 수정하는 과정을 통해 교정되고, 다시 반복되고 교정되기를 거듭한다.
그러다가 어떤 순간에 도달한다.
'이를 테면 이 이야기는 원래 어떤 식으로 정리했어야 맞아.'
'내가 하려던 이야기는 이런 거였어'
하고 이야기의 처음과 끝을 꿰게 되는 순간.
<인사이드 아웃>에 등장하는 두번째 주인공 "새드니스"의 자리는 원래 "피어"의 차지였다.
하지만 창작자는 스토리가 지지부진한 데 슬픔을 느끼던 순간 슬픔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피어" 대신 그 자리에 "새드니스"를 놓았다.
<주토피아>의 초기 버전은 주디가 아니라 뒷골목 생활을 하는 닉을 중심으로 펼쳐치는,
지금보다 훨씬 어두운 배경과 세계관의 스토리였다.
이 두 작품은 스토리의 방향을 크게 틀었고, 결과적으로 크게 성공했다.
그럴 수 있었던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내가 주목하는 건 아래와 같다.
완료된 작업물을 보고 방향성을 검토했다는 것.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물은 결과적으로 더 좋은 방향으로 나가기 위한 발판이 되었다는 것.
흥미로운 것은 기획의 시작과 끝, 이 둘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될지 우리는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다만 기다려야 한다.
우연히 무언가를 보거나, 듣거나, 접하기를.
아니면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거나 무언가를 깨닫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