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주인공을 만든다.
작가는 주인공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
주인공이 움직이려면
기본적으로 주인공은 원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해서 작가는 자신의 눈 앞에 서 있는 주인공에게 물어본다.
“니가 원하는 게 뭐야?”
이는 잘못이다.
그런다고 주인공이 대답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야기 창작의 초반에는 주인공에게 물어서는 안 된다.
대신 작가는 알려주는 존재여야 한다.
주인공 자신이 뭘 원하는지를.
어떤 욕망을 갖고 있는지를.
이렇듯 작가는 주인공의 욕망을 심어주어야 한다.
적어도 이야기 창작의 초반에는 말이다.
주인공이 작가에 의해 심겨진 욕망을 바탕으로 행동하기 시작하고
작가는 그 뒤로 계속 이야기를 펼치며 주인공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발견하게 된다.
여정의 한 가운데에서 말이다.
자신이 처음 심어주었지만
자신도 몰랐던 주인공 욕망의 진정한 뒷모습을 말이다.
웹툰 <존 웹스터 도난사건>을 쓸 때도 그랬다.
나는 창작자로서 주인공 예지에게
“너는 죽은 가족 때문에 악기를 되찾는 데 집착하는 거야”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주인공과 여정을 함께 하면서
그 가족이 구체적으로는 언니이며,
언니는 대단히 재능 있는 천재였고,
예지는 언니의 못 다한 꿈을 대신 이뤄주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차례대로 알게되었다.
그리고 내가 마침내 알게된 예지 욕망의 뒷모습은
그런 예지가 결국 해야 할 일은 언니를 마음 속에서 놓아주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완성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