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예의는 지능이라는 말을 신뢰한다.
나는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신작 <퀸의 대각선>에 나오는 개인주의자 모니카와 흡사하다.
부단히 사회생활은 하고 있지만 꽤나 버겁다.
홀로가 가볍고 편하다.
그럼에도 인정할 것은 인정한다.
<퀸의 대각선>에서 집단주의자 니콜과 같이,
결국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다.
개인의 감정은 혼자가 편할지 모르지만 살아가기 위해서는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자세는 지적 능력을 갖춘 어른이라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불쾌한 메일을 받았다.
심지어 비즈니스 메일임에도,
이제는 사회를 알만한 나이에 직급을 가진 분이 말이다.
육두문자를 쓴 것은 아니지만 마치 군대에서의 명령과 같은 메일을 받았다.
바쁜 와중에 혹시 내가 잘못 본 것은 아닐까,
새로고침을 했다. 오해는 없었다.
딱히 내가 그분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거니와 명령을 받을 관계도 아니다.
나 역시 조직의 장으로서 조직원들에게 체면이 서질 않기도 했으며, 이런 분과 협업한다면 우리 조직원도 똑같이 취급하겠구나 생각이 미쳤다.
짤막한 메일 한통이,
그 분과 그 조직의 수준을 알게 했다.
굳이 함께할 분도, 조직도 아니다.
물론 그분이 나와 함께 하지 않음이 아쉽지는 않을 테다.
나 역시 전혀 아쉽지 않기에 답변하지 않기로 했다.
삶의 모토가 그렇다.
이유 없는 삶은 없다.
문제 상황에서 상대의 입장을 고려한다.
그래,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야.
하지만 이유를 찾음에도 찾을 수 없을 때는
상대방은 잘못이다.
이유 없는 삶도 없지만 잘못이 없는 삶도 없다.
잘못하면 사과를 해야 하나,
그럴 마음이 없다면 관계를 종료한다.
그것이 내 삶의 모토다.
이로써 오늘, 한 명의 사람과 조직은
(관심이 있든 말든) 나와의 관계는 종료한다.
내 굳은 다짐이 약한 마음에 무너지지 않도록
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