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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영 Nov 22. 2022

120일만의 글

방황하다. 하고 있다.

나는 '번아웃'이라는 단어가 싫다.

활력이 소진된 상태를 뜻하는 번아웃이 흔히 게으름의 핑계 수단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번아웃을 무기 삼아 현재의 게으름을 정당화하는 내 자신을 두고 보기가 힘들다. 아니다. 번아웃이 오는 나를 인정할 수가 없는지도 모른다.


성격 탓이기는 하다. 스스로를 매질해가면서 게으름의 멱살을 끌고 앞으로 간다.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자, 번아웃이 올 자격도 없다는 삶의 태도로 지금을 만들었다. 물론 지금이 썩, 완벽하다고 느끼지는 않지만 부던히 무언가 했다는 생각은 한다.


그래서 말인데, 지금 나의 상태를 정의하기가 어렵다. 번아웃이라고 말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하고 무기력증이라고 말하기에는 기력이 없지는 않다. 지금껏 열정과 성격으로 끌고 오던 내 인생이 헛헛하게 느껴진다. 옳은 방향이었는가에 대한 고민과 삶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온다. 누구인들 쉬운 답을 내긴 어려울테다. 삶의 명확한 지표를 잃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번아웃도 무기력증도 아닌 또 다른 무언가다. 가장 가까운 단어는 '방황'이 아닐까.


지금의 상태를 방황이라는 단어로 정의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만 3개월. 그즈음 걸린 모양이다. 문제가 여럿있다. 문제의 정의를 하는데 3개월이 걸렸으나 해결까지 얼마나 걸릴지 도통 알 수 없다. 그리고 내 삶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나는 홀로가 아니기 때문에 방황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내가 앞장서야 하는 조직의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알고 있다.


알고 있음에도, 충분한 해결책을 내어놓지 못함이 하루하루 답답하다. 요즈음 특히 독서량이 늘었다.(물론 절대적 양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늘었다.) 지금의 방황을 면피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정답이 아니라도 좋으니, 해답에 가까운 힌트라도 얻고 싶은 마음. 내 삶의 이정표가 필요하다.


아마 3개월 전부터 가벼운 일상을 제외한 모든 글은 쓰지 않았다. 열정적인 글쓰기를 해오다가, 어느 시점부터 어떻게 글을 써야할 지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이다. 어떻게 써왔고 무엇을 써야할지 모든 것이 막막해졌다. 원래 '감'이 떨어진다는 것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것인가도 싶었다. 결과물의 퀄리티를 떠나서 애초에 시작하기 너무 어려웠다.


3개월 중에 첫 1개월은 번아웃이 아닌가. 그럴리 없어의 반복이었던 것 같다. 그 다음 1개월은 그마저도 생각하지 않고 일상을 흘러가는대로 두었다. 그리고 마지막 1개월 동안 상태에 대한 점검을 했다. 목적을 잃고 방향 감각을 상실한 '나'를 마주하고 이 글을 다시 쓴다. 지금은 매질해서 끌고 갈 게으름도 없다. 여전히 부지런히 움직이고 일한다. 하지만 새롭고 도전적인 일이 없을 뿐이다. 지금을 넘어서 다음 스텝이 무엇이어야 할지 너무 많은 길 앞에 압도 당해버렸다.


어쩌면 3개월이라는 시간이 굉장히 짧을 수도 있겠다. 내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단어를 찾아낸 것이 의미있는 3개월이기도 하다는 긍정적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지 모르겠지만, 몇 날 며칠이 걸려도 또 생각을 짜내야 하지 않을까. 어느 순간 방황이 다가온만큼 불현듯 내가 가야 할 목표가 생각 나지 않을까 고대해본다.


어제, 브런치에서 오랜 기간 글을 쓰지 않았다고 팝업 알림이 왔다. 사실 3개월 내 두어번 받은 것 같다. 그마저도 1초만에 닫았다. 방황이라는 표현하기 어려운 단어보다는 내 행동은 차암 단호했다. 어제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용기내어 글을 주저리 쓰게 된 것은 오전 6시 눈을 떠서 책을 읽다가 나는 방황 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무기력했던 내 마음의 원인을 찾아서이다. 또 한동안 어떤 자세가 될지 모르겠지만 원인을 확신하게 된 것은 의미있지 않을까. 확신의 결과가 브런치에 글을 다시 쓰도록 만들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이기도 하다.


방황의 시작이나 이유까지는 모르겠다. 경주마처럼 달려오다가 고개를 드니 여기가 어디지. 나는 왜 달리고 있지라는 물음이 생긴 것 같다. 그냥 내가 달려 온 삶의 궤적에 대하여 의문이 생겼나보다. 하지만 이것을 번아웃이라는 단어로 퉁치기에는, 나는 그만큼 달리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삶이 확장이었다면 앞으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겠다. 당연히 구체적인 목표 의식도 필요할테며 이에 따른 학습과 추진력도 필요하다.


다들 느끼는지 모르겠다. 이 짧은 감상글의 그라데이션을 말이다. 글이라는 것이 감정을 정리해주는 좋은 도구이다보니 주절주절 쓰는 글은 아이디어가 점점 구체화되어 결론을 맺는다. 나는 방황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일단 써내려간 글의 끝에는, 다시 나에 대한 다짐을 한다. 목표부터 구체적으로 잡아보자. 지난 3개월이 방황의 정의를 찾아내었다면 앞으로의 시간은 목표를 잡는데 할애해야겠다. 목표가 공고해지면 그 때는 흔들림 없이 다시 앞으로 나아가리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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