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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영 May 02. 2023

'123' 집중의 법칙

자괴감으로 시작한 나만의 집중의 법칙에 대하여.

나름의 노력과 그간의 경험이 의외로 쓸모가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을 때 엄습하는 무력감은 쓸데없이 강력하다.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는 주변의 응원과 따뜻한 시선은 예상 외로 그림자를 더 진하게 만들 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렇다. 인간이란 존재가 마냥 못나지만 않았기 때문에 퍼즐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딘가 끼워 맞춰지는 그림이 있을터. 그럼에도 나의 모든 세상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고 무엇부터 해야할지 막막함만  남았다. 인생에는 지름길은 없다는 믿음 아래, 무너진 세상을 일으키는 것은 다시 처음부터라는 단단한 각오뿐 아니겠는가 마음을 잡아보려 하지만 이미 무너진 세상의 막막함 앞에 단단한 각오란 쉽지 않다.


스스로 갉아먹는 감정이 무서운 것은 그 감정을 버티고 무너진 세상을 다시 일으킬 사람은 자신 뿐이라는 것이다. 누워있어도 숨막히는 감정을 딛고 일어서서 돌덩이를 다시 하나씩 쌓아야 하는 현실은 닥쳐본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다. 혼자라는 고독의 감정까지 짝처럼 몰고 오니, 한겨울 검은 밤에 벌거벗은 채 오돌오돌 떨고 있는 짝이 아닌가 싶다. 감정의 명확한 정의가 어디 있겠는가만은 오롯이 감내해야 하는 중압감은 분명 존재한다.


자괴감의 시작이 정확하게 어느 시점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숫자판에 안경알을 가져다 둔 것처럼 목표가 선명해진 이후 '무력감(無力感)'이 느껴진 것은 분명하다. 사실 나는 뿌연 세상이 좋았던 모양이다. 그 세상 속에서는 무력한 나를 숨길 수 있었던 모양이다. 어찌됐건, 선명해져 버린 세상 속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부터 허우적거린 것은 맞다. 세상은 밝아졌는데 당장 내 한 발은 내딛기가 쉽지 않았다. 차라리 모르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선 때가 좋았다.


 



조직에서의 '나'는 사실 내 인생에 중요하지 않다. 업(業)이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기(century)의 통념이 나의 신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에서의 '나'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조직에서는 대체가능한 누군가가 있지만 가족 구성원 중에서는 그 누구도 대체불가하다. 이것이 조직에서 '내'가 중요해져야 하는 이유다.


자괴감(自愧感)은 스스로를 부끄러워 하는 마음이다. 나는 조직에서 무력감을 시작으로 나에 대한 필요성을 망각했으며 존재 가치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어느 시점부터 내가 부끄러워졌다. 월마다 통장에 들어오는 급여가 부끄러웠고, 내가 먹는 밥과 입는 옷이 못마땅스러워졌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나면서 속병이 생겼다.


지난주, 지인 소개로 새로 사업하시는 누군가와 미팅을 했다. 한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었나보다. 사회라는 것이 필요에 따라 취하고 버리는 것이 명확한 곳임을 알고 있지만, 한시간 대화 속에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필요에 의해 취해진다는 것은 필요가 없다면 버려질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지만 나는 나만의 색(色)으로 세상에 필요하구나 느꼈다. 내 자리가 아닌 곳에 내 퍼즐을 끼워맞추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번뜩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해야 할 것은 두가지였다. 잘하는 것을 강화하는 것. 그리고 못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채워나가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멀티플레이가 잘 되어야 한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실무가 몰아치는 상황에서의 멀티태스킹다. 이제는 '생각'을 하기 위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점이 온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인생사가 내 맘대로 한가지 일에 집중하도록 두질 않는다. 하지만 내가 집중할 수 있는 범위는 한정되어 있다. 내 능력을 떠나서 몰아치는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앞으로 내가 잘하는 것만 할 수 없기 때문에 더 난해해져 버린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까.


원론적인 이야기로 돌아왔다. 너무 흔해서, 흔하게 지나가는 단어에 집착했다. '선택' 그리고 '집중'. 단어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깊게 생각하거나 실천하는 사람들은 많을까 싶다. 해야 하는 것을 아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이 다른 것처럼, 지금까지 나는 멀티태스킹에 집착한 나머지 기초를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선택'이 먼저다. 벌어져 있는 업무들에게 Tag를 붙여준다. 단어로 치환하면 '우선순위'다. 너무 적게 나누면 선택의 폭이 좁아서 업무 쏠림이 나타나고, 너무 많이 나누면 우선순위를 나누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업무가 될 수 있다. 우선순위는 4단계다. '오늘 안에 해결해야 하는 일', '일주일 안에 해결해야 하는 일', '한달 안에 해결해야 하는 일', '언제든 하면 되는 일'이다.


단계를 나누었다면 선택하기는 수월하다. 우선 순위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면 된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상황적 이슈가 생긴다. 오늘 안에 해결해야 하는 일이 3가지다. 일주일 안에 해결해야 하는 일이 10가지다. 이러한 상황을 어떤 기준으로 나눠야 할지 다시 고민이다. 여기서 123법칙을 적용하려한다.


123법칙은 '집중'과 관련된다. 우선순위에 따라 어떤 일을 먼저할지 결정했다면 몇가지 일에 집중을 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오늘 안에 해결해야 하는 일이 3가지인데, 업무 난이도가 상, 중, 하로 나뉜다고 하자. 난이도 상에 해당하는 업무는 해당 업무에만 집중해서 끝낸다. 1가지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난이도 중과 하는 퀄리티보다 속도감에 힘을 싣는다. 두가지 업무를 멀티태스킹한다.


변형 문제로 오늘 안에 해결해야 하는 일이 난이도 중 1개와 난이도 하 2개가 있다면 세가지를 한번에 멀티태스킹을 할 수 있다. 따끈하게 최근 있었던 일을 예로 들자면 아이와 캐릭터 전시회를 다녀왔다. 아이와 놀아주는 동시에 회사에서 업무 메일을 일정 간격에 맞춰서 체크해서 처리가 필요한 경우 바로 회신을 보냈다. 그리고 와이프가 내린 미션(?)도 동선에 맞춰서 해결했다. 오늘 해야하는 일들이 3가지였지만 '집중'보다 '분산'을 통해 모든 역할을 수행했다.


개인적인 생각이다. 범인(凡人)이라면 멀티태스킹의 한계가 있다. 그리고 나는 최대 3개 이상의 업무를 인간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밥을 먹으며 TV를 보고 핸드폰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누군가에게 반찬을 올려주거나 떨어진 반찬을 줏어서 버리는 추가 행동이 들어간다면 너무나 당연히 앞 선 3가지 행동 중 무언가는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전제는 각 행동들이 개인의 '기억'까지 다다러야 한다는 것이다. 밥도 충분히 먹고 TV 콘텐츠 내용도 얼추 기억하며, 핸드폰으로 카톡까지 올바르게 보내야만 의미있는 멀티태스킹 아니겠는가.


따라서 우선순위와 난이도에 따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간에 '해당 업무만 해야하는 일', '두가지 일을 병행해도 되는 일', '세가지 일을 병행해도 되는 일'로 구분할 수 있다. 123법칙에 맞춰서 업무를 처리함에도 하루가 부족하다면 분명 너무 인생의 욕심이 많거나 업무가 과다한 것이라 생각한다. (앞 선 자괴감이 다시 스물스물 올라오지 않도록 내가 못나서이다!는 제외한다.)




앞으로 새롭게 배우고 학습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최우선순위와 높은 난이도를 부여한다. 해당 업무들은 당분간 다른 업무는 OFF하고 집중해서 처리한다. 기존 십수년을 해오던 업무는 우선순위에 속하겠지만 난이도는 낮기 때문에 멀티태스킹을 통해 빠르게 처리하는데 집중한다. 앞으로는 나의 업무 스타일이 변해야만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수개월에 걸쳐 빠진 자괴감 덕분에 새롭게 나아갈 방향을 구상하고 잡아낸다. 심지어, 모두가 아는 쉬운 개념이었다니. 실천만 남은 것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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