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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영 Nov 06. 2023

수면에 대하여 관대해져라

시간을 통제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철칙

한 인지심리학 교수님의 강연에서 한국인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똑똑하고 부지런한 민족이라고 했다. 높은 IQ로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것은 익히 알려졌고 여행을 가서도 여행객이 아닌 근로자의 모습으로 노는 우리는 어디 가도 찾아볼 수 없는 특수한 민족성을 가진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똑똑하고 부지런한 우리는, 때문에 '잠'을 쉬이 죄악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상황에 잠이 오냐?>라든지 <잠은 죽으면 잘 수 있어>와 같은 잠을 자는 행위 자체가 멍청하고 게으르다는 본질에 맞닿았다고 착각한다.


상쾌한 잠이야 말로 자연이 인간에게 가져다주는 다정하고 반가운 자양분이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세계 3위에 빛나는 수면부족국가인 대한민국은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수면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다. 이미 시중에 마약베개, 마약 매트리스 등 꿀잠을 이루기 위한 아이템이 대거 등장했고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잠 없는 나라에서 잠을 잘 자기 위한 수면 도구가 팔리다니, 잠을 자지 않는 것이 자의든 타의든 사람을 힘들게 만드는구나 싶다.

전형적인 한국 사람인 내가 그렇다. 수면에 대한 적극적인 반대의 몸부림을 치며 하루 5시간을 주창하며 살았다. 그렇게 안 살면 어떻게 쟤네들 따라가. 심지어 여행은 가서도 언제 다시 와볼지 모르는데 최대한 많이 구경해야 되라는 강박증스러운 여행 코스를 소화해 낸다. 맞다. 우리는 [해낸다]라는 말이 적당할 정도로 하루하루를 잠 없이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눈 발갛게.
그리고 나는 경추를 편하게 잡아주는 베개를 샀다.


몸이 먼저 인지하고 있지만 잠을 자지 않으면 일단 힘들다. 푹 자지 못한 다음날은 행동도 굼뜨고 머리도 돌아가질 않는다. 감기에 걸리면 기침이 나오듯이 잠을 안 자면 머리와 몸이 굳는 증상이 나타난다. 오. 그걸 우리는 느끼면서도 버티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다들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그것이 '선'이라고 생각한다. TMI로 와이프는 신생아 수준의 수면이 필요하다. 10시간 이상 푹 자야 최상의 컨디션을 보인다. 24시간 중 10시간을 자면 14시간을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고 한다. 때문에 이르게 자고 정시에 일어나는 습관이 있다. 그리고 14시간의 집중력과 활동력은 박수받을 정도로 왕성하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10시간을 자는 것은 전형적인 한국인인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됐다. 게으르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었으니까. 하지만 5시간을 자고 19시간 흐리멍덩한 하루를 보낸 나와 10시간을 자고 14시간을 티끌 없는 유리창과 같이 맑게 보낸 와이프가 가진 시간이 다르다고만 할 수 없을 것 같다. 결국 내 시간. 인생에 집중하는 정량적인 정도는 사람마다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여기서 좀 더 수면의 질이 높고 체력이 좋은 사람들이 인생을 가꾸는 시간을 더 획득해 나간다고 생각한다.

다시 앞 서 소개한 인지심리학자의 다른 강의에서, 정확히 말하면 수면에 관한 강의에서 개인별로 가진 수면의 시간을 체크해야 한다고 한다. 몇 시간 잤을 때 개운한지를 매일 체크해서 몸이 필요로 하는 수면 시간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시간을 7시간으로 찾았다. 그리고 정말 기적적으로 헤비 커피 드링커였던 내가 커피 하루 섭취량이 절반으로 줄었고 심지어 아예 안 마시는 날도 생겼다. 그저 잠을 제 시간 잔 것만으로 말이다. 여기서 수면 시간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사람이 가지는 강박증을 없애는데 도움이 된다. 같은 7시간을 자더라도 내 시간을 모른 채 자면 빨리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피로하다. 이제는 나는 7시간형 인간이야. 일단 7시간은 충전해야 된다는 기준이 세워져 그 시간만큼은 잠으로 채울 수 있다.

현대 사회에 참 할 일이 많다. 우리 현대인은 그렇게 너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시간에 쫓기고 있다. 말 그대로 시간에 쫓겨 내 잠을 잃고 있었고 잠을 잃어 피곤함을 얻었다. 피곤함은 다시 능률을 떨어뜨렸고 그로 인해 다시 시간에 쫓기는 악순환에 빠졌다. 선순환은 고리는 잠을 푹 자는 것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안다. 바쁘다. 나도 7시간 매일 규칙적으로 잠을 자지는 못한다. 대신 원래 새벽에 잠들던 습관을 일단 11시~12시로 앞당겼고 대신 일어나는 시간을 조정하고 있다. 푹 자니 자연스레 커피가 줄었고 업무 미팅 시 차(tea)를 마시는 습관이 생겼다. 바쁠 때는 5시간, 6시간 자더라도 한번 만들어진 선순환 고리는 단숨에 끊어지지 않는다. 그저 잠이 적었던 다음 날 다시 7시간을 자 주면 된다. 자는 시간이 아까운 우리여. 행복을 위하여 수면에 관해 관대해지자. 시간을 휘두르기 위해서는 충분히 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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