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처럼, 내 사랑 낙곱새와 함께
저녁 메뉴로 삼겹살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곧 소주를 마시겠다는 의미다. 소주가 나의 최애 술이라 보긴 어렵지만, 소주가 아니면 안 될 상황은 분명히 존재한다. 낙곱새도 포함이다.오늘 저녁은 매콤칼칼 낙곱새, 두말없이 소주다.
소주를 주문할 때면 나는 늘 처음처럼을 주문한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부르는 이름이 좋아서다. "처음처럼이요." 주문할 때마다 굴리는 그 발음이 산뜻하다. 부르는 이름마냥, 정말로 처음부터 시작하는 그런 마음마저 들 때도 있다(이것이 작명한 이의 의도라면 대성공이다). 참이슬, 진로, 대선, 한라산, 사실 소주의 맛을 잘 구별하지는 못하는 입맛이라 뭘 시켜도 비슷하니 이왕이면 부르고 싶은 걸 부르는 셈이다. 쓰고 보니 타자감도 맘에 든다. 처음처럼, 처음처럼.
버너 위에 올린 낙곱새가 보골보골 끓기 시작하면 이제 소주를 주문할 타이밍이다(미지근한 소주는 기어코 적응이 안 된다). "이모~ 처음처럼요!" 가볍고 산뜻하게, 첫 잔은 안주 없이. 적당히 허기질 때 빈 속에 먹는 소주 한 모금에는 설명할 수 없는 쾌감이 있다. 그러고는 곧바로 알 수 있다. 오늘 소주의 맛을. 참으로 신비로운 것이, 소주는 어떨 땐 입에 쓰고 어떨 땐 설탕물처럼 정말 달다(거짓말이 아니다). 흔히 인생이 쓸 때 소주가 달게 느껴진다지만 나의 경우엔 글쎄, 잘 모르겠다. 인생이 달 때 소주가 달기도 하고 인생이 쓸 때도 소주가 쓰기도 하니까. 무튼 '큰일 났다, 소주가 달아서'라고 상대방에게 말하는 것은 이래저래 결국엔 신이 난다는 말이다. 두 잔째부터는 다 익은 낙곱새 한입, 소주 한입, 엎치락 뒤치락이다.
낙곱새 때문인지 처음처럼 때문인지, 얼큰하게 취기가 오르기 시작하면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여기에 부슬비까지 내린다면 말해 뭐하나. "처음처럼 한 병 더요!" 절친까진 아니더라도 가끔 만날 때마다 참 좋은 사이, 오늘 마신 소주와 오늘 만난 지인 S과는 그런 공통점이 있다. 각자의 인생이 쓴지, 단지 모르겠지만 간만에 만난 우리는 다행히 같은 선상에 있었다. 오늘은 달다, 소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