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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mja Sep 24. 2023

위스키를 사러 여행을 가는 것은 아니지만

맥캘란 루미나, 여행을 궁리하는 우리집 방구석



나라는 사람은 종종 메인보다 곁다리에 더 눈독을 들인다. 이를 테면 횟집엘 가서 회보다 쯔께다시(좋은 우리말로 바꿔쓰고 싶지만 그럼 도저히 그 맛이 나지 않아 쓴다)에 더 바삐 젓가락을 놀린다거나, 새 가방을 샀는데 본품보다 더스트백에 더 열광한다거나 하는, 뭐 그런 것들. 물론 쯔께다시를 먹으러 횟집을 가거나 더스트백을 얻으려 가방을 사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맛깔나는 쯔께다시나 멋들어진 더스트백이 없다면 아주 꽤나 무척이나 섭섭할 테다. 여행을 갈 때면 면세점이 유독 기다려지는 것 또한 이런 맥락에서겠지만, 여기서의 곁다리는 분명 횟집이나 가방과는 다른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다름아닌 위스키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공항에 갈 때마다 나는 위스키, 그중에서도 '맥캘란 루미나'라는 싱글몰트를 찾는다. 수많은 위스키 중에 왜 하필이면 그것인고 하면, 나름의 서사가 있다. 우선은 싱글몰트부터. 시작은 순전히 대세 때문이었는데, 몇 년 전 마침 싱글몰트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던 거다. 이 동네 저 동네 신기루처럼 생겨난 작은 위스키 바에 갈 때면 (그때로선 생소했던) '글렌피딕'이나 '발베니' 같은 싱글몰트 위스키를 바텐더는 곧잘 권했다. '맥캘란'도 그중 하나였지만, 솔직히 당시엔 글렌피딕이니 발베니니 맥캘란이니 그냥 다 무난하게 괜찮았던 술 정도로만 퉁명스럽게 기억할 뿐이다. 그러다 면세점 주류 코너에서 맥캘란을 처음 발견했을 땐, 그리 친하지는 않았지만 호감이었던 학창시절 친구를 용케도 사회에서 다시 마주친 기분이랄까. 오직 면세점에서만 살 수 있는(EXCLUSIVE TO TRAVELLERS) 맥캘란이라는 점도 매력적이었다(게다가 발베니는 할인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름도 가격도 정감 가는 '맥캘란 루미나'라는 위스키 한 병을 쫄래쫄래 사온 그날 이후로 면세점에서 맥캘란 루미나를 찾는 일은 공항에 갈 때면 빼놓을 수 없는 나의 루틴이 되어버렸다. 맛이나 향도 아직까지는 나무랄 데 없다.


물론 맛에 대해 자세하게 논하기엔 부끄러울 정도로, 위스키와는 아직은 좀 데면데면하다. 맥주나 소주, 와인에 비해 함께해온 세월이 턱없이 부족하니 그럴 만도 하다. 오늘 유독 술이 달다며 마셔댔다가 밤새 변기와의 무한 씨름 끝에 필름이 끊긴어린 날의 치기를 위스키는 모르지 않나. 다음날 최근 통화 기록에 찍힌 엑스의 번호를 확인하고서(흔히 말하는 이불킥이라는 표현으론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순간이다) 내가 또 술을 마시면 댕댕이, 얼마 가지도 못할 다짐을 곱씹던 (나의) 날들을 소주와 맥주는 알아도 위스키는 알지 못한다(그래서 참 다행이다 싶다). 그러니까 아직은 멀쩡한 모습만 보이고 싶은, 사귄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 같다. 조금 더 오래동안 고상하고 고결하게 지내고 싶은 친구. 값비싼 위스키가 아니더라도 나름 아끼고 아껴 마시는 이유다. 얼추 주량을 채웠지만 이대로 끝내기엔 무지 아쉽고 그렇다고 맥주를 먹기엔 너무 배가 부른, 이런 피치 못할(?!) 상황에서만 '루미나 타임'을 (속으로) 외치곤 한다. 


그렇게 아껴 마셨는데도 루미나가 동난지 벌써 몇 달째다. 지난 여름 여행의 공항에서는 안타깝게도 품절이었고(날로 인기가 많아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지난 겨울 여행에 데려온 아이는 이미 공병이 된 지 오래다. 이제 다시 슬슬 떠날 때가 된 건가. 크리스마스가 코앞인 연말, 어느 따스한 휴양지의 해변에서 최대한 게으르게 보내는 한낮을 그려보는 것으로 슬슬 다음 여행의 막을 올려본다. 대본 감자, 각색 감자, 작품명 <루미나를 찾아서>.




맥캘란 루미나 The Macallan LUMINA

이니그마, 퀘스트, 테라와 함께 면세 전용 상품으로 출시된 맥캘란의 종류.

독하고 독특한 향의 위스키가 아직은 어렵기도 하거니와, 그래서 비싼 위스키를 덥썩 사기에도 애매한 위린이들에게 위린이의 마음으로 추천.

- 하일랜드, 싱글몰트, 14.1%

- 면세점에서 한화로 10만원대 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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