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돌보는 법을 잊어버렸다.
아니, 알지 못했었다.
나 스스로를 돌보며 살아야 한다 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그러려니 하면서 살아갔는지도 모르겠다.
힘겨운 삶, 터져버릴 것 같은 응어리, 그 속에서 치열한 경쟁, 눈앞에 닥친 시련들,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가는 것에 벅찼던 시간은 속이 쓰리고, 마음은 외롭고, 공허했다.
이런 나를 돌보아야 한다는 생각 할 수도 없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어느 누구도 "너 자신을 돌보라고" 말해주는 이가 없었다.
어쩌면 나 자신을 돌보는 것 자체가 이기적이고 나쁜 것이라 생각을 했었기에
나를 돌보는 것에 신경 쓰지 않았고, 소홀했는지도 모르겠다.
상처를 받고, 끌어안고, 홀로 쓸쓸히 짊어가면서 나의 힘든 감정들을 그대로 무시한 채 그저 묵묵하게 버텨왔다.
나는 괜찮지 않아
나는 괜찮지 않았다. 아프고, 힘들었다.
너덜너덜 해진 나의 몸과 마음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었다.
살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많은 삶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었다는 걸
과거의 '나', 현재의 '나'는 나 중심으로 선택했던 것들의 집합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나로 시작되어 끝나버린 것들을 인정하는 순간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앞으로 더 달라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 수 있을 거라는 무언의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뼈가 가루가 되는 그날까지
모든 것이 엉망진창, 흙탕물로 뒤덮였다.
결국은 모든 것이 뒤틀어졌다.
인생이 다 끝나버린 것 같았다. 이렇게 감정이 휘몰아치다 보니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가?
남은 삶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 건가?라는 고민의 딜레마가 이어졌다.
내 안의 나에게 끝없는 물음을 던진다.
지금까지 삶에서 힘들었던 일, 억울했던 일, 마음 아팠던 일, 괴로웠던 일, 슬펐던 일이 무엇이냐고 ~
질문의 답을 하나, 하나 곱씹다 보니 고민의 덩어리들은 "뻥" 소리와 함께 분해되었다.
잊고 지냈던, 애써 잊으려 했던, 그냥 묻었던 감정들을 다시 마주하니 이제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된 것 같다.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작은아이가 눈에 밟힌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작은 골방에만 콕 박혀 앉아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것을 피해 숨어 지내는지도 모른다.
그 아이는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했다. 그래서 수많은 날들을 답답하게 지내야만 했었다.
마음의 상처 때문에 나 자신을 돌보는 것을 잊어버렸다.
'도저히 안될 것 같다'라는 공포의 문턱
'넌 뭘 해도 안될걸?'라는 내 안의 괴물은 점점 용기를 내지 못하도록 방패로 가로막았다.
나는 용기를 내야만 했다.
두려움에 맞서야만 했다. 내 삶을 바꿀 용기는 바로 내 안에 있기 때문에
그림자라는 도피처에 숨지 않기로 했다.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상처에 둔감하지 않고, 지금 상황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나의 내면의 마음을 더 깊게 들여다보기로 말이다.
나를 돌보는 법
"나"를 제외시킨 경우가 많다.
내 마음에게 물었다. "마음아 넌 정말 괜찮은 게 맞는 거냐고"
마음이 답한다. '제발 마음을 돌봐달라고, 마음을 챙겨달라고 ~'
마음이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나의 내면의 감정들이 점점 옅어지기 시작했다.
마음은 전체가 고통받지 않는다. 한 순간, 한 부분만 고통을 받을 뿐이다.
'아프다'라고 끝내지 말고, 어떻게 왜 아픈지, 어떤 마음이었을지 또 다른 '나'에게 공감해 줄 필요가 있다.
이제는 무심했던 나의 마음을 치유하고, 나 자신을 돌보자.
마음의 감기를 낫게 하려면 마음의 창문을 열어주어야 한다.
고통은 언젠가 사라진다. 그러나 아픔은 남는다.
그러나 나를 돌보지 않으면 "나"를 잃어버릴지도, 나의 존재를 잊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서 나를 완전하게 돌볼 수 있는 존재는 나 스스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