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의 가족까지 사랑할 자신이 없어.’
이게 나의 가장 큰 생각이었다.
흔히 미디어나 온라인에서 봤던 결혼의 이야기는, 20대 청년인 내게 그다지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나면 멀쩡히 대학을 나오고 번듯한 직업을 가진 사회인임에도, 여자라는 이유로 일을 그만두라 강요받는다던가,
고기반찬은 아들에게만 슬쩍 넘겨주고 며느리에게는 찬밥만 퍼주는 치사한 시어머니라던가,
남편도 얼굴조차 모르는 조상의 제사까지 챙기러 동원된다던가,
그 집 딸은 귀하고 며느리는 일꾼 취급을 받는다는, 너무나 흔한 이야기들 때문이었다.
‘며느리의 도리.’
그놈의 도리는 누가 왜 써낸 건지, 분명 대접받지 못해 한이 맺힌 사람이 만들어낸 논리 같았다.
내 성격상 그런 상황에 놓이면, ’좋게좋게 넘기자’며 참고 참다가 결국 빵 터져 모든 걸 뒤엎을 모습이 바로 그려졌다.
이혼보다는 비혼이 낫지 않겠는가?
연애만 하면서 살아도 충분히 괜찮지 않은가?
그런 생각들을 했더랬다.
결혼은 그저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하며, 여자는 손해만 보는 일이라고 여겼다.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더니, 나는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였다.
“난 비혼주의다!”라며 호언장담하던 나에게 속았다며, 남편은 지금도 종종 놀리듯 말하곤 한다.
연애 시절의 남편은 굉장히 수용적인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매일 저녁 운동을 다니던 남편에게, 퇴근 후 데이트 시간을 빼앗기기 싫다고 투덜대던 날 위해 그는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퇴근하고 나면 온전히 나와 시간을 보내줬다.
고작 네댓 시간 자고 피곤했을 텐데도 군말 없이 매일같이 새벽 운동을 하고, 저녁이면 나를 만나러 와줬다.
감정 공감을 어려워하는, 소위 말해 대문자 T의 사람이지만 나름대로 내 감정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어떻게든 문제를 개선해 보려 고민해 주는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런 사람이라면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괜찮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조금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한 순간이 있더라도, 온전한 ‘내 편’이 되어줄 이 사람과 함께라면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거짓말쟁이가 된 비혼주의자는 스물일곱, 또래보다 다소 이른 나이에 웨딩마치를 올렸다.
내가 상상했던 결혼의 재앙은 현실과 거리가 멀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물에 발을 담근 느낌에 가까웠다.
우리 집과는 전혀 다른 가풍과 대화 방식, 생활 습관들이 처음엔 모두 낯설었다.
아마 시어른들 역시 나를 꽤 생소한 존재로 바라보셨을 것이다.
분명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들도 있었고,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서로의 배경이 다르다는 점만 알면 자연스레 납득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그리고 남편은 그 사이에서 생각보다 훨씬 단단하게 중간 역할을 해주었다.
그 결과, 나는 시댁에서 철부지 아들을 건사한 ‘똑 부러지는 며느리’가 되었고 남편은 언제나 철없는 불효자식 역할을 도맡았다.
그 모든 과정을 돌아보면—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