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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엄마 Aug 01. 2024

마레(Le Marais)의 추억

문화재의 거리 마레     

프랑스 파리의 센 강 오른편에 마레 지역이 있다. ‘마레’(marais)는 프랑스어로 ‘늪’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살 수 없는 넓은 늪에 15세기 초부터 왕실의 사저나 왕실 특권층의 저택이 들어서서 고급 주택가로 된 유래가 마레를 역사적인 거리로 만들었다. 왕정 시대에 마레에 들어섰던 호사스러운 저택들은 건축물만으로도 예술품이었다. 당대 최고의 화가, 조각가, 가구 제조인들이 집 안팎을 치장해 주었다.      


그러나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유행의 물결은 생 제르맹 데 프레를 중심으로 센 강 왼편으로 옮겨진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 분노한 민중은 마레의 건축물을 파괴하고 예술품을 가져갔다. 화려했던 마레는 잊혔다. 이런 마레는 1962년 국회에서 통과된 말로 법안(la loi Malraux) 덕분에 부활한다. 당시 문화성 장관 앙드레 말로가 제안한 이 법안은 프랑스 안에 방치된 문화유산과 낡은 거리를 보호하자는 게 취지였다. 이 법안은 과거에 함몰된 장소 마레를 문화재의 거리로 새롭게 부활시켰다.      


보주 광장(Place des Voges)

‘보주 광장’은 마레의 간판이나 다름없다. 마레 곳곳엔 왕정 야사가 숨어있는데 보주 광장 역시 드라마 같은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1559년 프랑스 왕 앙리 2세는 마레에 있는 사저 투르넬 관 앞 광장에서 기마 경기를 연다. 딸의 결혼을 축하하는 행사였다. 이때 접전을 벌이던 왕실 호위대장 몽고메리는 실수로 왕의 눈에 창을 날린다. 쓰러진 왕은 열흘 후 운명한다. 충격을 받은 카트린 드 메디치 왕비는 이곳을 저주받은 장소로 여겨 허물게 하고 발길을 끊는다. 


하지만 앙리 4세는 등극 후 파리의 미관을 개선하기 위해 특별히 마레를 택한다. 버려진 터에 왕실 광장을 짓기 시작한다.  1605년에 건설이 시작된 왕실 광장은 앙리 4세의 아들인 루이 13세의 통치 기간인 1612년에 완공된다. 루이13세는 만 여명의 왕실 측근을 거느리고 화려한 축성식도 벌인다. 


마레는 보주 광장과 더불어 17세기 내내 왕실 행사를 치르는 화려한 시절을 누린다. 사각의 광장을 둘러싼 36채의 건물 중 ‘왕의 집’과 ‘왕비의 집’을 제외하고는 모두 똑같은 비율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도록 지어진 곳이다. 단정하고 고요하다. ‘센 강 오른편 오아시스’라고 불릴 만하다.   


박물관미술관 거리

마레의 많은 저택들은 박물관‧미술관들로 사용되고 있다. 서간집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여성 문인 세비녜 후작 부인이 살던 저택인 ‘카르나발레관’은 파리 역사박물관이다. 선사시대부터 20세기까지 파리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프랑수아 1세 이후의 왕정사를 당시 실내 양식을 보존한 40여 실의 화려한 방에 전시한 전시공간은 방문자들의 발길을 잡는다. 프랑스 문화‧예술의 장으로 제공되는 곳 중에서 앙리 4세의 재무대신 쉴리 공작이 살던 ‘쉴리관’도 빼놓을 수 없다. 역사유적지 관리국이 자리해 전통 건축술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쌀레 관에는 ‘피카소 박물관’이 자리한다. 20여 개의 전시실을 다니며 피카소의 전 생애 경향을 거의 망라하는 1000여 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동양의 인형극 모형들을 전시한 이국적인 ‘권온박물관’도 있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 망사르의 작품인 게네고 관에는 ‘사냥 자연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각종 사냥 무기, 특히 화려한 사냥총들을 시대별로 전시한 방을 지나 사냥 노획물 박제실로 들어서면 사슴, 호랑이, 백곰뿐 아니라 고릴라, 악어 등이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의 생생한 모습으로 박제되어 있다. 빅토르 위고가 1833년~48년에 살던 보주 광장의 아파트는 박물관 ‘빅토르 위고의 집(Maison de Victor Hugo)’으로 공개되고 있다. 마레에 살던 숱한 유명 인사들은 개성 있는 사교 살롱을 열며 마레를 문화 중심지로 뿌리내리게 했다.


유대인 거리

로지에 거리(Rue des Rosiers)에서는 마레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까만 둥근 모자를 눌러쓴 유대인들, 흰 수염을 날리는 랍비들이 오간다. ‘시편(Psaumes)’이라고 이름 붙인 카페도 있다. 이스라엘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곳은 아주 오래된 유대인 거리이다. 나치 점령 시대 때 프랑스인 밀정의 고발로 숨어있던 한 무리의 유대인들이 집단 학살된 뼈아픈 과거도 있다. 1956년 ‘무명 유대인 순교자 기념관’(현(現) 쇼아 기념관)이 근처에 들어서게 된 유래이다. 그런가 하면 골목골목엔 아기자기한 예쁜 상점들도 가득하다.     

성당 

마레 지역을 대표하는 성당도 둘러보자. ‘생폴 생루이 성당’은 루이 13세가 부지를 하사하고 몸소 초석을 놓은 성당이다. 1641년 완공 후 1796년에 생폴과 생루이, 두 성인에게 바쳐졌다. 프랑스 고전주의와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을 결합한 예수회 양식 건축물로 라모, 샤르팡티에 등 당대 최고의 음악가를 음악장을 둔 명성 있는 종교 음악 센터이기도 했다. 이 성당은 17세기 내내 왕실 가족과 귀족층 인사들을 교인으로 맞으며 파리 사교계의 중심지 역할도 했다. 바르 거리로 접어들면 고요한 구석에 아름답게 서 있는 ‘생제르베 생프로테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2세기 네로 황제 시절 밀라노에서 순교한 쌍둥이 제르베, 프로테 성자들에게 봉헌된 성당이다. 고전 양식과 고딕 양식의 건축술이 성공적으로 조화를 이룬 건축물로 인정받는다.      


골동품 가게

마레에서는 문화재뿐 아니라 온갖 종류의 작은 골동품 가게들도 만날 수 있다.  생폴 생루이 성당 뒤 자르댕 생폴 거리에 가보자. 구불구불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나오는 이 마당 저 마당에 노천 골동품 시장이 열린다. 식기, 의류, 촛대, 거울, 액세서리, 서적, 음반 등 별의별 물건이 다 나와 있다. 이 마을엔 자그마한 옛집들도 잘 복원되어 있어 아름다운 시골 동네에 와있는 느낌도 누릴 수 있다.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에서 남자 주인공 길(오언 윌슨)과 골동품 가게 아가씨 가브리엘(레아 세이두)이 처음 만나는 곳이 마레의 이런 골동품 가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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