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계속 파다 보면
무얼 먹고 싶냐고 물어보는 이에게 너는 무얼 먹고 싶은지를 되묻는다. 나는 질문을 했지, 너에게 다시 질문을 받아오고 싶지 않았는데. 특별히 먹고 싶은 것이 없어.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고, 함께 그것을 먹었을 때 혹시라도 벌어질 다음이 무서워. 맛이 없으면 어쩌지. 너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나 때문에 먹는 것이면 어쩌지. 네 덕에 내가 그것을 좋아하게 될 수도 있는데. 진지하게 부정의 길을 걷다가도 가끔은 길을 돌려볼 수 있지 않니? 말을 뒤집고 그냥 반대 방향으로 뛰어봐.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돌아가 슬픈 말들을 던지고 있는 너를 변호해 보는 거지. 진지하지 않기가 어렵다면, 가벼워질 수 없다면 더 섞어. 와글와글 복잡해진 머릿속에서 제일 먼저 높은 곳으로 올라가 큰 소리로 말해. 내 맘대로 할 거야. 우선 좋은 생각만 해볼 테다!
잠이 오면 잠을 자야지. 잠을 자는 동안 벌어질 일들을 내 두 눈으로 바라보지 못할까 아쉽니, 툭하면 감겨오는 두 눈으로도 원하는 만큼 바라볼 수 있을까. 꿈속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그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오래 기억하고 싶다고 했지. 바쁜 사람에게 말을 걸어 귀찮게 굴지 말라고 했지만, 그가 바쁜지 여유가 있는지는 내가 정확하게 알아차릴 수 없는걸. 그곳 콩나물을 싸게 팔아요. 이번에 비가 너무 많이 오긴 했지요. 위의 산이 가볍게 무너지기도 했어요. 산 아래에 살던 분이 집을 정리하시는데 애를 먹었죠. 제가 가장 먼저 발견했거든요. 다른 곳에 계셨던 주인분께 바로 전화를 드리고, 집에 들어온 흙과 물을 적당히 치워드렸죠. 가지고 있는 것들을 평생 어떻게 써먹을지의 문제지요.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도 그냥 가만히 두면 결국 썩어 문드러져요. 놓지만 말아요. 어디에 있건 간에 벌떡 일어나서 자리를 잡아요.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것은 언제부터 나와 함께 했는지,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남게 되었는지를 알고 있으면 놓을 수가 없죠.
나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조그마한 글자들이 빼곡히 모인 누런 종이들의 묶음이 내 방에 몇몇 개 꽂혀 있기를 바랐을 뿐이에요. 버리지 않은 교과서가 널려 있었죠. 먼지만 타던 책을 다시 살펴본 이유는 별것 아니었어요. 내 이름을 어떻게 쓰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을 뿐. 또 다른 뜻을 품고 있는 건 아닌지, 그 시절 어떤 바람과 마음으로 생각을 이어갔는지 상상했어요. 우리는 어디서 시작되었지? 지도를 보며 언젠가 먼 곳으로 사라질 생각을 했어요. 배와 비행기를 타고 도착하는 곳만이 먼 곳이라고 말하기에는 버려지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자주 오지 않은 버스를 타고, 같은 버스를 탄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며 눈을 감고, 차가 들어가지 않는 작은 길에서도 여러 번 헤매다 결국 만나게 되는 작은 동네들도 먼 곳이지 않을까요? 그런 것들은 지도책에 없어요. 생각으로 끝낼 것도 없지요. 눈으로 직접 내가 어디에 발을 붙이고 마는지를 확인하면 되죠.
다시 집으로 천천히 걸어가다가 무엇이 나올지 아니,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땅을 파고 있는 건 아닐까 삽을 던지고, 다른 곳으로 뛰어가진 못했지. 던진 삽을 다시 상자에 넣고, 그 주변을 어슬렁거렸어. 무얼 얻고 싶어 삽을 들었더라? 땅을 파고 싶었더라? 어슬렁어슬렁 버스정류장 옆의 모종 가게에 들러 오래된 씨앗을 샀어. 흙을 다시 덮어 꼭꼭 눌러 씨앗을 풍풍 뿌려 물을 촉촉하게 부어 언젠가 삐죽 튀어 오른 이파리를 본다면 구수한 냄새가 나는 비료를 뿌려 주어야지. 맡아본 적 있는 냄새가 날까. 목장의 냄새와 비료 냄새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 되면 또 어떤 말을 던질 수 있을까. 오랜만에 만난 사람과 인사를 나누다 먼 곳에서도 바로 발견할 수 있는 웃음을 내가 많이 좋아한다는 걸 알았지. 그 웃음을 나도 배우고 싶었나. 계속 보고 싶었나. 구분하고 싶은 것들이 늘어난다면 나는 이 주변을 계속 어슬렁거려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