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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위와 순두부

by 감자나무

맛보다 디자인에 유독 눈이 갔다. 브랜드의 공통된 심플한 디자인에 색 변화로 성분의 차이를 표현해 낸 곳. 유당불내증이 있는 것인지 그냥 하늘색 보다 노란색 패키지를 들고 있는 나 자신이 예뻐 보였던 건지 회사 아래의 편의점에서 900미리의 저지방 우유를 사 마시던 취미가 내게 브랜드 충성도를 만들어 주었는데, 초콜릿 맛 두유와 아침마다 편하게 꺼내 먹기 좋은 천 원짜리 플레인 요거트. 계속 먹다 보면 내가 유산균에 적응되는 것 같아. 다른 브랜드의 것을 먹으면 화장실 가기가 어렵더군.

남편을 일찍 잃은 아내는 동사무소의 공공근로사업을 통해 노인 복지관의 영양사를 도와 구내식당을 꾸리기 시작했다. 봉사활동을 하러 오시는 분들은 많은데요. 다양한 곳에서 많은 분들이 오시다 보니 정리되는 느낌을 찾기는 어렵죠. 돈을 바라고 오신 분들이 아니다 보니 그분들 나름의 고집도 이해해 주셔야 해요. 제가 항상 이모님과 같이 있어드릴 순 없으니 적당히 잘 부엌을 지켜주세요. 아니, 뜯긴 고춧가루가 소금이 김치가 쌀 포대가 대체 몇 개야. 이 밥솥의 식은 밥은 또 뭐지? 누룽지를 만들려고 미리 빼 둔 거야. 카레가 좀 더 있을 텐데. 아직 반찬이 남았을 텐데.

단이 높은 바 의자에 앉아 대로의 골목을 쳐다보면 누런 불빛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방앗간, 그 안에서 떡을 팔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질문이 문안에 고여있었고 더 이상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포목상과 하나씩 꺼지는 동그란 불. 내복을 입고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는 사람과 평상의 마른 고사리, 너희 딸내미가 요구르트를 사 주었어. 나는 진영이가 사준 것을 먹을래. 쇼케이스 뒤편의 먼지꾸덩이, 딸기맛 요플레, 카드를 받지 않아요. 장례식장 입구에 ATM기가 있죠? 차를 타고 있지 않아도 대로의 불빛들을 보며 천천히 걸어 다닐 수 있다면 우리는 커피를 와인을 따뜻한 토마토 수프를 떠먹다가 오랫동안 꺼지지 않는 그 작은 골목의 구멍가게에 들어가 나는 작은 컵라면을 샀다. 잘 먹지 않는 손에 끼워 먹는 과자와 막걸리와 맥주와 나무젓가락과 누런 불빛이 유리문을 드르륵 열면 이불을 덮은 나를 덮치는 하얀 냉기가

언제 넣어 두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 된장과 매실청과 술지게미에 박아둔 장아찌 옆에 날짜가 지난 요구르트를 쌓아두었다. 어른들께 유통기한이 지난 요구르트를 챙겨드릴 수는 없으니까요. 가져가셔도 좋아요. 요구르트도 김치처럼 오래될수록 더 맛있지 않겠어요? 묻지 않아도 봉투에 모아 우리의 냉장고에 쌓아두면 진영이가 하나씩 꺼내 먹었다. 엄마, 요구르트는 오래될수록 물과 요구르트가 분리되는데, 물을 버리고 요구르트만 떠먹으면 좀 더 걸쭉해진 맛이 나는 것 같아. 일주일이 지나면 더 맛있어질 것 같으니까 이건 더 이따가 먹어야지. 나는 어르신들을 생각하고서 일하는 것이 아닌데, 우리 애들 밥을 먹이려면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이번 분기의 사업이 끝나고 다시 계약되려면 시간이 살짝 뜨지. 감사하게도 다시 찾아가면 내 눈 속에 없었던 사람들이 내게 반갑게 인사를 했어. 니가 제일 잘한다. 어디 다른 데서 일해 보신 적 있죠? 처음 해 보는 사람의 감각이 아닌데요-

나는 블루베리도 좋지만 냉동 망고가 조금 더 맛있는 것 같아. 냉동실에서 꺼낸 지퍼백의 노란 조각들을 작은 그릇 안에 채우고 기다리다 보면 하얀 냉기가 사라지고, 내 입안을 알랑거리며 부드럽게 씹히는 망고에 또다시 반할 때쯤 제주도의 노란 골드 키위를 예약하시라는 동네 마트의 소식을 보았다. 배달 금액을 맞출 생각에 잘 먹지 않았던 다른 브랜드의 커다란 요거트를 카트에 담고, 냉장고에 들어있는 사이즈가 제각각인 키위가 정말 노란색이 맞는지를 의심하며 작은 과도로 키위의 옷을 벗겨내고 노란 조각들을 하얀 그릇에 좌석이 남지 않은 기차처럼 채워 넣다가 이번에 산 요거트는 참 순두부를 닮았다며 유청을 버려내고 간장을 닮은 홍차 시럽이라도 올려 먹어볼까 생각하며 낄낄 웃었다. 브랜드 충성도를 지키기에는 너무나도 귀여운 순두부인걸. 우리 집 옆 세탁소에 누런 순두부 한 마리가 살았는데 말이야. 안녕 순두부야- 하고 인사하면 작은 웃음과 순두부 아닌데- 이야기하는 언니가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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