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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부르는 이름은. 1

by 감자나무
너는 이제 어떤 이름이 되었니

해가 잘 들지 않는 곳에 나보다 키가 한참이나 큰 행운목 대가족이 모여 살던 양배추 밭을 보았어. 아니, 브로콜리 밭이었나. 이사를 가다가 싣고 갈 자리가 없어 버려진 것이면 차라리 괜찮을 텐데, 회사를 정리하면서 오래전부터 시들어버린 화분을 버린 것 같더라고. 깔끔하게 꺾어내지 못했거나 잎끝을 잘라 전체적인 괴사를 피해보려던 흔적들은 꼭 미용실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남학생의 바싹 깎은 머리처럼 보였어. 앞으로 그 미용실 다시는 안 가! 왜? 너는 두상이 예뻐서 잘 어울리는데- 풀이 죽었거나 죽음의 문턱을 지나가고 있는 갈색의 아니, 몇 남지 않은 초록색의 행운목을 소개하는 종이를 화분에 붙여 두었더군. 아무나 가져가세요. 잘 키워주세요. 우리가 가져갈까. 날이 이렇게 추운데, 오랫동안 여기 있으면 아무도 가져가지 않을 것 같아. 이미 버려진 건 맞잖아.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었어. 곧 겨울이 찾아올 텐데도 유독 따뜻했던 날 부드러운 바람에 사랑하는 이들과 저절로 손을 쓰다듬는 건강한 행운목이라니! 내 주변에서는 그런 건강함을 보기가 어려웠거든.

큰 나무가 있었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너는 똑같은 방에 뿌리를 내리고 똑같은 자세로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지. 그럼- 할머니가 키우셨던 건데, 양평으로 귀농을 하시면서 굳이 들고 가실 이유를 찾지 못하셨던 거지. 키가 멀대같이 컸잖아. 우리가 종종 이발을 시켜줬는데도 그 모양이었어. 어디에 싣고 가겠어. 의자 하나, 변압기 하나 더 들고 가는 것이 이득이지. 그러니까 동네에서 잘 자라던 나무들을 자른다고 너무 미워하지는 마. 멀대보다 적당히 살집이 있는 것이 보기에도 좋잖아. 그건 나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눈 보기 좋으라고 자르는 거잖아. 그렇게 커지면 있을 자리도 없어. 자유롭게 100년 가까이 산 나무들을 봐 봐. 그래, 나무들이 땅을 살 수는 없지. 돈이 많거나 힘이 센 사람들에게 본인의 자리를 내어달라고 말하는 나무들도 많지 않을 거야. 꿈속에 나와서 협박을 하려나? 주인이 먼 곳으로 이사를 가고 그 나무는 유독 본인을 아껴주던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느꼈을지도 모른다. 얼마 되지 않아 겨울이 찾아왔고, 추웠어. 추워. 따뜻하지 않아. 보일러를 틀자. 보일러를 고쳐야 해. 추워. 보일러가 고장이 났어. 추워. 보일러를 바꿔야 가스비가 덜 나올 거야. 추워. 가스비를 감당할 수 없어. 추워. 함께 들러붙어 있어도 추운 밤, 나를 안아주는 사람은 없었어. 얇은 창문, 추워. 큰 키의 나는 따뜻하다는 흙에서도 뿌리가 얼고, 큰 키의 나는 따뜻한 봄에 오니 뿌리가 썩어 죽어. 엄마, 나무가 힘이 하나도 없어. 언젠가 다시 삐죽 튀어나올지도 몰라. 조금 기다려보지 뭐, 텅 비어버린 커다란 화분에 다시 채울 것을 찾지 못했지.

어디 엉킨 부분은 없나 손으로 머리를 빗질하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물에 잠겨 있던 투명한 화분, 아니 투명한 컵 속에서 그 나무를 키우려던 것을 보았다. 처음에 나는 네가 그 나무와 같은 식물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어. 꽃집에서 물어봤는데 행운목이라고 알려주셨어. 행운을 가져다주는 모양이야. 우리 집에서도 식물을 키우지 않아서 시간 맞추어 물을 주는 것을 난 해 본 적이 없어. 다른 친구들이 챙겨 줄 수도 있겠지만, 게으르고 무신경한 주인 때문에 죽는 것도 그 주인을 갱생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예쁜 화분이 사용되는 건 슬픈 일이야. 신경 쓰기 싫어서 그냥 들고 왔어. 내가 행운목을 좋아해서 들고 온 것은 아니야. 여름방학, 집으로 돌아가려던 길에 원형의 나뭇조각 안에서 뿌리를 내렸던 것이 부러져 손으로 잎을 잡고 이것을 어떻게 버릴 것인지를 고민하는 친구에게서 그 잎을 내게 줄 수 없겠냐고 물었다. 곧 죽을 텐데 종이컵을 가지고 있는 이를 찾아 작은 집을 마련해 주고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어. 한 손으로는 손잡이를 잡고 한 손으로는 종이컵을 잡고 있으면서도 곧 찾아올 너의 죽음을 피하고 싶은 내가 우스웠을까. 부러진 것도 모르고 평소와 같은 모습이던 너를 쳐다보던 많은 눈은 네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교문 주위를 조용히 걷고 계시던 수위님께 물었지. 죽을까요? 물속에 있으면 살 것 같은데. 뿌리가 남아 있잖아. 나무가 아니야. 네 이름은 이제 운목이야.

머리가 풀이 죽은 채 서로 달라붙어 있으면 머리를 오랫동안 감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보여. 보고 있는 사람도 신경이 쓰인단 말이야. 왜 이렇게 유난이냐고 묻지 마. 보이는 걸 어떻게 해. 보고 싶지 않아. 너도 내 유난 떠는 행동을 보고 싶지 않다고 했지? 그럼 내 눈에서 사라져 버리란 말이야. 못하지? 그럼 모든 것들을 다 회색으로 지워버려. 그것도 어렵지? 우리는 처음부터 붙어있었으면 안 될 사이였어. 아니, 세상에 거슬리지 않는 것이 어디 있고, 신경 쓰이지 않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냐. 표현의 문제지. 봄마다 손으로 머리를 빗으며 아니, 털실 모자를 쓰고 바로이마트까지 멍하게 걷다 보면 나는 웃자란, 진짜 주인을 만나기 전에 이미 커버린, 첫 번째 주인이 줄 수 있는 말랑말랑한 화분이 터무니없이 작아져 버린 식물들을 만나곤 했지. 머리에서 주머니에서 핸드폰에서 손을 떼고 너를 유심히 쳐다보다가 나는 무심한 주인에게서도 건강하게 자란 네가 내 손에서 완전히 무너질 것을 미리 생각하며 발길을 서두른다. 있잖아, 나는 한 번 붙어버린 장면을 이름을 결과를 쉽게 던져버릴 수가 없어. 미운 건 미운 거야. 오래전 풍경은 이미 이름이 지어져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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