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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부르는 이름은. 2

by 감자나무

작은 규모의 화훼 단지를 걷고 있으면 하늘의 밝은 빛을 가리는 마법이 근처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 늦은 밤이 되어야 익숙한 동네로 도착하는 버스를 타면 멀리서 반짝이는 빛들이 캄캄한 버스를 투과할 때, 내가 어떤 빛에 한눈을 파는지 가만히 지켜보다가 저렇게 예쁜 빛을 감싼 회사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를 검색해 보았지. 모든 연상을 이어 붙인 추리가 정답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 검색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이름들, 다시 그 간판을 목격하지 못하더라도 밤하늘이 내는 문제는 언제나 많았고, 먼 곳으로 눈을 돌리면 문제의 숲에서 바로 나올 수 있었지. 화훼 단지가 가까워질 때쯤 벌어져있는 가방의 입구를 꾹 꾹 누르기 시작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해.

네가 집을 나간 사이 구청과 시장 사이에 식자재마트가 생겼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집으로 돌아오면서 치킨을 사 먹어야겠다고 늦은 밤에 먼 곳까지 걸어갔던 적이 있잖아. 거기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될걸. 밤이기도 했고 처음 가 보는 길이었으니까 멀게만 느껴졌던 것 같아. 오후에 친구랑 한 번 가보니 재미있더라고. 거기 엄청나게 커다란 두부를 작은 두부 가격으로 파는 것 있지. 네 팔뚝만 한 순두부도 있어. 정육점에서 특수부위라고 자랑하던 오돌뼈도 큰 봉투에 묶어 팔고, 식당에서 쓰는 국수를 작은 사이즈로도 팔아. 큰 것은 좀 더 싸지만 쓰기가 불편하지. 이름은 들어본 적 없는 브랜드인데 먹어보니 우리가 먹던 것이랑 크게 다를 것이 없어. 국수가 다 국수지. 뭐,

집이 아닌 집으로, 낯선 어둠과 창문을 통해 번진 평생 주인을 알 수 없는 자동차의 붉은 빛, 작은 바람에도 복도의 창문과 함께 모든 문이 덜컹덜컹 움직이는 집에서 나는 5분 거리의 큰 마트를 현관 삼아 걸어 다녔지. 다른 마트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 판매하는 상품들의 맛이 눈을 감아도 쉽게 입안에 아른거릴 때가 되어서야 새로운 것들을 찾아다닐 수 있었다. 반찬을 파는 코너가 생길 때 반찬가게를 찾아 두부조림에 밥을 비벼 먹었고, 기획상품의 우유 가격이 들쑥날쑥할 때 조금 더 걸어가다 보면 하나로마트가 있는데 중얼거렸지. 사두어도 한 달 동안 냉장고에 처박혀 있었는데 말이야. 이름만 달랐지 야채를 더 많이 팔지도 않았어. 특히 과일은 현관이 더 나았지. 바로 이마트 바로 이마트 이 동네에 바로 이마트가 얼마나 많은데요 체인인 걸 몰랐어요? 이 동네에 오래 살지 않았나 보네.

엄마와 함께 들러본 집 근처의 식자재마트는 역 근처 신호등을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사람들이 많았다. 이 동네 사람들 다 여기에 모여 있었나 보네. 김밥 집이나 다른 마트에서 그 이름이 들려올 때 나도 이 동네 사람인가 싶어 웃음이 나왔다. 이름이 따로 있는데, 큰엄마가 예전에 살았던 아파트와 같은 이름을 가졌는데도 나는 그 식자재마트에게 바로 이마트라고 다른 이름을 붙여주었지. 너는 매일 이상한 이름을 가져다 붙이더라. 역 근처에 있는 마트도 옛날 이름 그대로 쓰고 있잖아. 이름이 바뀐 지가 언젠데.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야. 이름마다 분위기가 있지. 그 거리는 초등학생 때의 나를 계속 떠오르게 해. 그래서 이름이 청해마트인가. 지금은 없는 이름이지만. 그리고 나는 어릴 때부터 큰 집에 가는 것 별로 안 좋아했어. 바로 이마트는 과일 도매상을 잘 알고 있는 직원이 계신 것 같아 좋아.

우리의 운목이는 오래 살았다. 직장에서 분양해 준 다슬기와 함께 생활했던 시기에는 흙에서 자라던 친구처럼 활발하게 잎을 만들어내기도 했고, 텅 비어버린 우유와 막걸리 병에 남아 있는 것들을 물과 섞어 맛있게 마시기도 했지. 하지만 그들에게 물이 어는 추운 겨울을 지켜봐 주는 사람이 없다면, 튼튼하던 입으로 불든 기계로 넣든 강아지 모양 풍선이 풀이 죽은 것처럼 어느샌가 우리 집에서 자리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지. 봄에 가까워질 때 마트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날 두 개의 줄기가 있는 행운목. 그러니까 떡목이를 다시 집었다. 물에 사는 친구에게 약간의 물을 주기로 했다. 물에만 있다 보면 계속 모기가 생겨. 물을 조금 줄 테야. 어느샌가 겨울이 왔다. 한 뿌리가 죽었다. 또 한 친구도 비틀비틀하는 것을 보고 이 친구를 운목이라 불러야 할지 떡목이라 부를지 망설여지는 나를 발견했다. 다시 봄이 오면 떡목이를 하나 더 데려올까. 내가 모르는 사이에 사라지는 방법을 나는 알 수 없다.

문을 일찍 여는 진짜 이름을 잃은 식자재마트에 가서 비싼 우유 사기를 취미로 둔다면 하루의 시작이 좀 더 상쾌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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