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917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구백 십 칠번째
오늘 독서모임에서는 작가 테드 창의 단편소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소개되었다. 이 책을 발제한 멤버는 내용의 강렬함과 함께 자유의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했다. 책에서 나오는 예측기란 기계는 1초 앞을 예측함으로 사람들에게 자유의지는 없다는 식으로 메시지를 줌으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선택은 결국 착각이라는 좌절을 안겨다 준다. 그래서 우리들도 만약 예측기를 가지고 있다면 절망할 까 아니면 어떻게 될 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유의지와 결정론에 대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오늘 날 현대 과학에서는 모든 것이 물질로부터 비롯되니 뇌는 화학작용에 의해 움직이고 우리의 행동과 감정들은 모두 결국 물질에 의해 돌아가는 것이니 이러한 자연의 메커니즘에서 벗어날 수 없단 의미로 결정론을 지지하는 편이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순수과학계의 이야기이며 나는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결정론에 대해 대단히 환원주의적이지 않나 느낀다.
마찬가지로 자유의지론도 철학적 환원주의의 면모를 보이긴 하지만, 환원주의란 복잡한 요소나 개념을 하위 요소로 퉁치거나 세분화하여 설명하려는 탑다운 형식의 설명구조를 말한다. 인간에 대한 복잡한 설명 대신에 예컨대 "인간은 뼈와 살로 이루어지고 진화된 뇌를 가진 생물이다"라고 정의하는 반박불가 이야기를 한다. 사회과학적인 관점 그리고 의미와 기능적 측면에서 이를 바라본다면 "어쩌라는 것인가?"라는 불만을 개인적으로 가진다.
자연과학계의 발견과 쌓아온 데이터는 경이로운 수준이지만 그에 대한 태도는 역설적으로 환원주의적이지 못한 고차원적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크하다못해 지적 우월감으로 모든 것을 결정론으로 치부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내가 반박하고 싶은 건 자유의지가 환상이어도 혹은 진실이어도 그것을 믿고 살아가는 것은 다른 문제이며 그리고 인간 개개인의 삶에 불확실함 그 자체가 자유의지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증거가 아닌가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결정론은 인간의 삶은 이미 결정지어졌다는 것이지만, 삶의 불확실함에 대하여 변수들이 너무 많아 쉽사리 예측하진 못한다. 뇌피셜이지만 중간은 자르고 뒤에서만 "결국 이 모든 건 결정된~"이라고 말하는 게 거부감이 든다는 게 내 생각이다. 불확실함이 불행만 주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행복과 놀라움을 안겨다주기도 한다. 자유의지가 되었든 결정론이 되었든 간에 연구하는 주체도 사람이요, 지식을 사용하는 주체도 사람이니 설명으로만 끝날 게 아니라 본다. 나무 잎은 초록색이다라고 끝날 게 아니라 초록색이니 어떻게 할 것인가를 우리는 고민해야 하지 않을 까?
917화 오늘의 해석 : 자유의지와 결정론, 무엇이 되었든 사람 손에서 태어나 사람 손으로 이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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