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926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구백 이십 육번째
고종이 사망하고 한달 하고도 보름이 안되어 삼일운동이 일어났다. 민심이 곧 천심이라 하듯 일본은 식민지배의 전략적인 측면에서 대단한 실책을 했던 셈이다. 당시 조선인들 입장에서 짧은 기간동안 일어났던 불미스러운 일들은 모두 일본인들이 일으켰으며 꼭두각시처럼 고종을 조종하려 함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은 고종이 조선의 국왕이자 조선인을 대표하는 상징이었기 때문에 그의 옥체를 건드리는 일은 유리 그릇 다루듯 보다 더 조심스러워야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고종이 몰래 보낸 특사들이나 외교활동으로 뿔이 난 일본이 그를 퇴위시키고 순종을 앉히면서 저항이 생겼다. 정미년에 의병활동이 일어났고 일본은 무력으로 진압을 했다. 고종이 일본에 의해 강제로 끌려내려지고 멋대로 왕을 앉힌다는 소식은 당시 근현대를 맞이한 조선인 그리고 자유와 인권에 대해 알고 접한 삼천리 한반도 사람들이 보기에도 심각해지는 여론 상황이었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대한의 "왕국"이었고 고종은 우리 왕이다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왕이 위태로워도 공화정은 이론에 머무는 정도에 불과했다. 허나 퇴위 당한 고종이 얼마 지나지 않아 서거까지 했다? 당시의 소식은 입소문을 타고 도니 고종을 독살했니 안했니 등의 이야기가 많았을테지만 무엇이 사실이든 고종의 죽음은 일본과 연관되어 있다 생각한 것은 자연스러운 조선인의 추리였던 것이다.
뚜껑이 열린 조선인들, 그리고 사실상 마지막 왕이었던 고종의 사망과 서거 후 왕의 자리를 맘대로 앉히는 일본 때문에 굳이 왕을 받들어 모실 필요가 없어졌다. 여전히 근왕주의자가 되겠다는 건 일본의 선택에 동조하겠다는 논리로 이어졌기 때문에 매력도 없고 설득력도 떨어졌다. 그래서 지식인, 종교인 중심으로 민족 대표들이 자유와 인권 그리고 이제는 왕도 없겠다, 우리가 결정짓는다는 공화정 사상도 자연스레 주장하게 되었다. 즉 대안이 마련된 것이다.
삼일운동이 전국적으로 백만 단위에서 일어나고 그 과정에서 일본의 폭력과 학살로 이어지면서 희생으로 빚어진 비폭력운동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정당성 또는 명분을 획득하게 되었다. 그때 운동하신 분들 덕택에 우리는 민주주의 공화정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뿌리는 바로 삼일운동에서 나온다. 그래서 헌법에서도 자연스럽게 명문화하여 언급된다.
일본은 이 사건이 대외적으로 알려지자 보다 교묘하게 "문화통치"란 택갈이를 하고 일본 총리로 가는 루트 중 하나인 조선총독의 자리를 입김이 센 육군보다 마이너한 해군 출신인 "사이토 마코토"를 앉힘으로 변화의 코스프레를 시작했다.
926화 오늘의 해석 : 상징성은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다. 왕이 무너지면 백성이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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