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파시즘과 군사독재 흐름 2부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932

by 포텐조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구백 삼십 이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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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우리는 구닥다리같은 파시즘의 특징과 짧은 역사에 대해 살펴보았다. 오늘은 파시즘이 군사독재 및 개인독재에 어떻게 자연스레 흘러가게 되었는 지 살펴볼 것인데, 냉전은 핵무기 사용 등의 열전으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그에 대한 압력이 내부 정치, 사회구조에 고스란히 영향을 주었다. 미국의 사례로 반공주의, 음모론의 선동자 중 하나였던 "조지프 매카시"가 나 빼고 모두가 "빨갱이"란 식으로 현대판 마녀사냥을 일으키기도 했다.



Pinochet_y_la_Junta_Militar_de_Gobierno.jpg 쿠데타에 성공한 피노체트 군부

바야흐로 독재자들의 인큐베이터 같은 시간이 찾아온다. 1세계의 자유주의냐 2세계의 공산주의냐 그것도 아니면 독자노선 3세계냐를 두고 전세계 많은 국가들이 외교전을 벌였고 어디로 붙을 지 계산기를 두드렸다. 국내 상황이 불안정한 나라들은 한쪽에 붙어 지원을 받으며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미국이나 소련 중 하나를 택해 등에 업고 쿠데타를 일으킨 독재자들은 이후에도 친미, 친소 노선을 타며 물질적, 기술적 지원을 받는다.


파시즘은 대중동원과 민족주의와 지도자 숭배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지만 이내 유통기한이 끝났다. 그래도 냉전의 독재자들에겐 파시즘은 필요한 것만 빼어갈 수 있는 방금 폐차된 자동차와 같았다. 입맛대로 개인숭배를 강요하고 싶으면 대중동원이나 관변단체를 만들어 밀어주고 쿠데타를 일으켜 성공한 군인들은 명분이 부족하니 어디 뭐가 없나 폐차장에서 파시즘의 요소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고스란히 "왜 우리 군이 기존 정권을 뒤짚어 엎었는지"에 대한 이유와 함께 냉전이라는 시대적 위기감을 고조시키며 대중의 시선을 딴 데로 돌리고자 애썼다.


군사 독재자들로 대표될 사람들은 많지만(전두환도 그렇고), 전형적인 냉전의 독재자와 군사정권의 콜라보의 사례를 남긴 칠레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기존 좌익계 정권, 살바도르 아옌데의 칠레 정부를 상대로 미국의 지원을 몰래 받아서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에 아옌데가 대통령궁에서 항전하다 자살하면서 쿠데타는 성공하게 되고 피노체트의 군사정부가 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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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평등", "인권"이라는 개념이 근현대에 형성되어 세계대전이 끝나고 안착되어 가면서 사람들이 공유하는 보편적 가치관이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 과거 군주제와 다를 바 없는 독재로 돌아가자하는 것은 명분도 없었고 필요성도 없었다. 더군다나 군사독재 같은 경우는 자국군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니 명분이 더더욱 없을 수 밖에 없다. 성공하면 혁명이라지만, 그러면 그 혁명이 무엇이냐를 대중에게 알리고 정당성을 만들어 내야 했다.


그래서 군사 독재자들은 파시즘적 포퓰리즘을 보인다. 기존 정부와 차별화하는 정책들을 내놓거나, 상명하복이 분명한 조직이 나라까지 장악하니 최고지도자가 원하는 바대로 속전속결로 밀어붙이는 장단점을 보인다. 그만큼 부작용도 크기 마련이다(삼풍 백화점 붕괴는 전두환 정부가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지만 당시 만연했던 개발독재의 건설병폐와 연관되어 있었다). 눈치가 빠른 독재자는 자신의 책임을 일부 회피하기 위함과 함께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를 앉혀서 경제 개발을 기치로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932화 오늘의 해석 : 냉전은 내부의 적을 규정하기 쉬운 최적의 독재자 탄생시대였다. 덕분에 유통기한 지난 사상을 끌어다가 그럴듯 한 명분을 만들고 헌법을 뜯어 고치거나 파탄난 경제회복을 기치로 민심을 잡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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