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121화

장편소설 빛의 여정 121화 / 12장 첫번째, 시험

by 포텐조

장편소설 빛의 여정 121화 / 12장 첫번째, 시험


5권 시작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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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미세한 어둠. 어둠. 미세한 어둠. 다시 어둠, 로이딘은 눈을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다리에 감각은 없고 머리에는 피가 부족한 것 같았고 상체와 하체가 마치 분리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의식이 점차 돌아오는 그에게 찰나의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그의 눈동자가 다시 빠르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설마하고는 로이딘은 벌떡 상체를 일으켜 자신의 다리를 살펴 보았다. 다행히 상체와 하체는 분리되지 않았고 다리도 멀쩡히 놓여 있었다. 그는 다시 눈만 깜빡이면서 이곳이 어디인지 두리번 거렸다. 어둠 속에서 점차 적응되는 눈이 보여주는 시야에 빛 마저 삼켜버린 듯한 어두운 통로가 그의 앞에 이어져 있었다.


분명 그가 물 주머니를 챙기고 도망치려 하다가 의식을 잃기 전 까진 그때 까지만 해도 뚫린 천장으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곳은 마치 거대한 관 속에 자기가 묻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답답했고 보이지 않았으며 공기가 무거웠다. 그나마 "숨이라도 쉬어서 다행이지"란 생각과 함께 서서히 다리를 일으켜 세웠다. 떨어진 충격에 어디 멍이라도 들었는지 허벅지 쪽이 땡겼다. 그는 갑옷을 입은 상태였던 지라 흠집이 여러 군데 나있었고 어쩌면 이 정도의 부상으로만 끝난 게 다행인 것은 갑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지상의 소리든 근처의 소리든. 그저 로이딘 자신이 숨을 거칠게 몰아 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점차 불안해지는 와중에 어둠 속에서 앞으로 이어지는 통로는 끝이 어디인지를 몰랐다. 가만히 있어봤자 답답함만 가중되니 그는 몸을 이끌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조심스레 벽을 짚으면서 한 걸음 씩. 로이딘은 "지하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짚고 있는 벽은 바위 벽이었기 때문이다. 산 채로 묻혔다면 높은 확률로 흙 밖에 잡히지 않았을 테지만 바닥과 달리 에워 싼 벽들이 돌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는 오른 팔로 기댄 채 얼마 못 가다가 어지러움이 몰려와 잠시 벽에 기대어 숨을 골랐다.


헤르논의 수도원에서 주문 그리고 전투 훈련과 함께 쉴 새없이 연습했던 건 피데라시스의 기도와 호흡 조절이었다. 전투에서는 호흡을 가지런히 해서 몸의 리듬을 정돈하고 육체적 전투를 이어나가는 것을, 특히 지구력을 중요시하는 피데라시스 수도사들의 방식상 의도적인 호흡 조절은 반드시 연습해야 할 중요한 능력이었다. 평상시 일상에서는 기도와 주문을 외우며 어느 순간 무아지경이 되는 순간에 사용되었다. 로이딘은 반사적으로 호흡을 고르게 하고 있었다. 들이쉬고 잠시 후 내쉬고. 그가 하고 있는 "마안탄"이란 호흡 조절법은 주문과 함께 호흡을 내쉬고 들이쉰다. 로이딘의 주문은 "피데인티, 피데라여 피조물이 빛으로 어둠을 뚫게 하소서"였으며 그가 마안탄으로써 들이 쉴 때는 "피데인티"를, 내쉴 땐 "피데라여"를 마음 속으로 같이 외웠다.


몇 분정도 벽에 기대어 호흡하고 있으니 불안이 가라앉는 듯 했다. 하지만 갈 길은 멀어보였다. 여전히 어둠은 계속 되었고 무엇이 튀어 나올지 몰라 허리띠에 떨어질랑 말랑 매달려 있던 그의 도끼를 바로 잡아 꺼내어 들었다. 몇 걸음을 더 걷다가 어디선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로이딘은 자신이 잘 못 들었는지 싶었으나 이내 다시 한번 들려 잔뜩 긴장했다. 얼어 붙은 채 도끼를 단단히 잡고 휘두르거나 당장 주문이라도 외울 태세로 있었다. 소리가 이번에는 좀 더 가까이서 들려왔다. 이번에는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있었는데 어디선가 들어 본 소리였다. 저번 꿈 속에서 물을 마시고 헤매고 있을 때 그에게 들려왔던 그 음성. 여러 사람의 소리가 동시 다발적으로 들려왔다.

"카카다아쿠누..."

"...푸티라!"

"..놈이 아니다."

목소리가 마치 로이딘 앞에 멈춰 선 것처럼 그의 귓가에 들려오다 뚝 끊겨 버렸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몰라 로이딘이 시선을 허공에 향한 채 조심스레 입을 뗐다.

"성묘..수호대이십니까?"

로이딘은 성묘 수호대의 돌격 전 전투 구호인 "카카다아쿠누 푸티라"를 경전과 문헌을 통해 알고 있었다. 성묘 수호대를 만난 걸까? 그의 물음에 어둠 속의 목소리들은 반응이 없었다. 시간이 흘러도 반응이 없자 로이딘이 다시 한번 외쳤다.

"혹시 성묘 수호대이십니까? 저는 헤르논의 전투 수도사입니다!"


반응이 돌아오지 않았다. 로이딘은 하는 수 없이 이제는 물 주머니 대신 두려움을 가득 안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오른 팔을 벽에 기대며 왼 손에는 굳게 도끼를 잡고 한 발씩 걸어보았다. 처음 힘을 주고 걷는 바람에 바닥에서 흙 먼지가 미세하게 일어나는 듯 했다. 곧 몇 걸음 다시 걷다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서서히 긴장이 풀어졌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통로는 마치 영원히 걸어야만 하는 게 아닌 가 하는 불안함을 주고 있었다. 그래도 뭔가 인위적으로 깔끔하게 뚫린 듯 한 통로로 보아선 입구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위안삼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또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르겠지만 시테온과 루네는 어쩌지?란 생각이 앞서 들었다. 자신이 죽은 줄 알고 착각한 그들이 어떻게 반응 할 지 두려웠고 난감했다. 어서 빨리 이곳을 탈출해서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었다.


얼마나 걸었을 까? 갑자기 자연스레 꺾여지는 오른 쪽의 모퉁이를 조심스레 돌아보았지만 같은 통로가 반복되었다. 방향을 튼 채 일직선으로 난 어두운 동굴을 홀로 걷고 있던 로이딘 앞의 오른쪽 벽에 횃불이 걸리듯 갑자기 공중에서 불덩이 하나가 확 지펴졌다. 로이딘이 기겁을 하며 반 쯤 주저 앉으며 몸을 움츠렸다. 목소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땀이 온 몸을 적셨고 허벅지의 통증이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어깨는 담에 걸렸는지 굳어서 고통에 그는 벽에 등을 기댄 채 다시 "마안탄"을 해야했다. 오른 팔로 어깨를 잡고 다리는 바닥에서 조금 올려 기댄 채 통증을 이겨내려 했다. 로이딘의 얼굴은 찡그려졌고 웃고 있던 이 악령들을 향해 욕 한 바가지를 대차게 갈기고 싶었다.


"하하하! 저 녀석 꼴 좀 보게"

"우리를 아나 본데?"

불똥과 함께 방금 전 전혀 보이지 않았던 어둠 속 목소리들의 정체가 맞은 편 왼쪽 벽에서 드러났다. 떠도는 유령의 모습도 아니요, 먼지로 사람의 모형을 이룬 정령도 아니니, 그건 벽에 그려진 초상화였다.



122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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