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948
인문편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구백 사십 팔번째
어제 2부에선 삼위일체 교리의 역사와 기독교 정체성에 대한 연관성을 살펴보았다. 마지막 문단에서 이해를 돕기 위한 신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 비유를 소개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독교인 아닌 사람들에겐 여전히 시원하지 않은 채 지적 궁금증과 호기심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그런 관점에서 마무리 해보고자 하며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말하는 삼위일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지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하나의 본질에 세 위격이 존재하는 신. 삼신이 아닌 단일신을 말하며 단일 신적의 본질 안에 구별되는 정체성(3 존재도 아니며 3 구조도 아니며 3 정체성도 아니다. 그냥 셋이면서도 하나인 구별된 정체성으로 억지로 이해해야 옳다). 오해하는 것들 중 삼신이 하나로 묶인 합체된 신(마징가가 아닌..)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의 신에 3개의 부분이 퍼즐처럼 존재하는 것도 아닌 하나의 본질, 세 위격이 동시에 앞 뒤 순서 없이 존재한다 보면 된다. 그리고 이것을 이성으로 이해하지 않으려 할 때 우리는 할 일을 다 한 것이다.
삼위일체에 대해 찾아보면서 결론적으로 이해할 수 없음을 말하며 기독교인 입장에서 거룩한 신의 신비성이자 인간의 이해로는 신을 온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건 기독교인의 입장이고 비기독교인들에겐 합리화를 하는 것으로 들릴 수 있다. 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알지 못한다면 기독교의 신 그리고 예수를 어떻게 유일한 신으로 우리는 확신할 수 있는 가?부터 따질 수 있으며 이는 한도 끝도 없어지는 유신론과 무신론적 논쟁까지 이어지기 쉽다.
다만 중립적인 관점에서 무미건조하게 바라본다면 삼위일체란,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그들이 믿고 있는 신을 이해하고자 최대한 애쓰며 합의하고 설명한 공인된 이론이라 보면 되겠다. 그리고 신이 있다 생각하는 유신론적 관점까지 포괄한다면 한낱 피조물이 세계를 창조한 신이 누구인지 이해할 수 없으므로 부분적으로라도 이해하려는 하나의 설명이라 보면 타 종교인도 어느정도 유연하게 생각해주지 않을 까?
마지막으로 삼위일체는 궁극적으로 종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논의되는 설명양식이다. 이를 이성과 합리 혹은 과학의 영역으로 도출하고자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즉, 인간의 "신앙"으로 이성과 합리의 영역과는 다르게 "믿는다"의 영역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인식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유신론적 세계관을 견지하고 있으나 나름 냉소적으로 악마의 변호인처럼 써보고자 했다.
삼위일체에 숨겨진 또 하나의 메시지는 통합이다. 불교에서는 인간이 자신과 타인을 구별짓는 순간 고통이 시작된다고 보았듯이 기독교도 마찬가지로 예수의 가르침 안에서 여럿은 연결된 하나이며 타인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라는 무조건적 사랑을 공유한다. 그들의 신이 세 위격이면서 하나의 본질로 존재하듯이.
948화 오늘의 해석 : 삼위일체, 종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피조물이 신을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하기 위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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