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의 언어들 : 삼위일체 2부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947

by 포텐조

인문편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구백 사십 칠번째



00058_christ_pantocrator_mosaic_hagia_sophia_656x800.jpg

하나지만 하나가 아니며 셋이지만 셋이 아닌 삼위일체. 이 교리는 니케아 공의회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를 거치면서 자리를 잡아갔다. 초대교회 역사 4세기경까지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으며 이 중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에 대해 별의 별 관점으로 규정하고자하는 시도들이 많았다. 학문적 차원이나 신앙의 발전 차원에서 자유로운 논의를 거친다는 것은 건강한 의미임을 상징했지만 초대교회의 대표들이 다 같이 모여 신앙체계를 세울 땐 현실적으로 서로 다른 주장이 공존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960px-Μιχαήλ_Δαμασκηνός_-_Α΄_Οικουμενική_Σύνοδος_7741.jpg 니케아 공의회와 바닥에 있는 아리우스

삼위일체를 부정했던, 가장 논리적으로 강력했던 사제 아리우스의 주장은 성자의 객체를 주장했다. "성부 성령 동일해도 성자는 분리된 것이다. 그리고 성자 예수는 가장 훌륭한 피조물이 될 진 몰라도 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부분은 정확히 이슬람이 예수를 인정하는 부분과 일치한다. 헌데 지금까지 초대교회에서 예수를 향해 예배 드린 것과 성경에서 예수와 하나님을 동일시 여기는 것을 그럼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는 지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즉, 예수를 신이 아니라 부인하면 유대교와 다르지 않으며 애매하게 사이에 끼어버린 예수를 숭배하는 우상숭배 종교가 되어버리는 헛점이 있었다. 성경에는 신이 예수와 분리되는 듯한 구절이 있긴 하지만 같음을 말하는 구절도 존재한다. 아리우스와 그의 지지자들은 예수까지 신으로 묶는 논리는 유일신이 궁극적으로 아니라는 측면으로 주장했다. 독자들이 확실히 알아야 할 점은 옳고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기독교는 사실상 예수의 이름을 빌린 그냥 신흥종교로 봐도 무방하다.



mayur-gala-2PODhmrvLik-unsplash.jpg

왜냐하면 예수 또한 신과 같은 본질임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예수를 믿는 기독교 정체성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분리시켜 바라본다면 우리는 몇 천년전 논쟁의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가서 이단들이 똑같이 말하던 논리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기독교의 핵심 교리는 성자 예수까지 신으로 보는 시각을 인정하는 삼위일체. 그러면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가?


신학과 서양철학계의 거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세계의 본질 중 하나를 들어 비유했다. 물론 이 또한 논리적으로 완벽한 건 아니지만 그나마 와닿는 설명이다. 그는 "사랑"이라는 개념으로 삼위일체를 설명했다. 사랑은 단일 개념이지만 혼자 있지 않다는 것. 사랑은 사랑받는 자와 사랑하는 자 그리고 사랑 그 자체가 공존한다. 허나 그 셋은 구별되지 아니한 사랑이라는 것으로 설명했다. 그나마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다. 3부에서 계속




947화 오늘의 해석 :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 기독교 정체성의 갈림길이다.



[벽돌은 혼자 있지 않습니다. 당신의 좋아요 하나면 다음 벽돌이 놓입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9화신념의 언어들 : 삼위일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