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엑소가 뜰 줄 알았지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949

by 포텐조

인문편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구백 사십 구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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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BTS가 광화문에서 컴백 공연을 했다. 전세계 아미들이 비행기를 타고 공연을 보러 오기 위해 한국이라는 나라를 찾아왔다.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나라이지만 이유는 하나, BTS때문에. 우리나라 소프트파워가 그만큼 단단해지고 있단 의미로 볼 수 있으며 반대로 소프트파워란 게 얼마나 중요한 국가적 자원인지 상기 시켜보게 된다. 그런데 그건 그거고, "왜 하필 BTS지?" 라는 생각이 솔직히 예전부터 들었었다.



1280px-Korea_KPOP_World_Festival_13.jpg 당시 대세는 엑소였다.

아이돌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대충 흘러 가는 연예란의 뉴스만 훑고 넘기는 나였지만 "방탄소년단"이라는 이름의 아이돌이 데뷔했을 당시 나도 그렇고 주변 또래들도 반응이 "방탄소년단? ㅋㅋㅋ"이었다. 왜냐면 그때는 대기업 SM의 첨병 "엑소"가 으르렁대면서 남자 아이돌을 다 잡아먹고 있을 때였으니까. 그래서 그때의 감정이 여전히 잔존한 채 최근까지 이어지는 방탄소년단의 열풍에 대해서 나는 이해를(정확히는 무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구글링도 해보고 지피티랑 제미나이한테 "BTS가 왜 그때 아이돌을 넘어서서 어떻게 대세가 된 거야?"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유를 찾았다. 결론은 대중에게 접근하는 방식이였다. 다른 아이돌들이 소통이나 팬을 챙기는 노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기적으로도, 그리고 방식에서 점점 차이가 났던 것이다. 일단 엑소가 등장했을 때 내수(?)를 정복한 건 기업의 빵빵한 지원도 있었지만 이미 그들은 칼군무와 함께 한치의 빈틈도 없는 완벽한 아이돌로 등장했다.



1280px-KOCIS_Korea_Mnet_BTS_02_(12986917913).jpg 2014년의 방탄소년단

이에 비해 아이돌 시장의 도전자의 입장에서 방탄소년단 그리고 그때의 빅히트는 후발주자였으니 아무래도 인지도나 접근 방식에 있어서 SM보다 체계적이지 못한다거나 그들을 그냥 따라해야하는 신세였다. 그래서 정면돌파보다는 다른 방법으로 그들의 길을 개척해냈다. 당시 미디어 플랫폼이 점차 확장되어 가고 있었고 유튜브도 지금처럼 일상생활의 필수품이 아니라 대중 어플의 하나이면서 동시에 서서히 커지고 있던 단계였다.


이때의 시기와 맞물려 방탄소년단은 그들만의 브이로그나 노래의 서사를 담으려고 많이 노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정 연령대의 공감가는 이야기를 노래로 담아냈던 "화양연화"같은 앨범이라던지 상대적으로 시네마틱한 느낌의 접근으로 그것을 팬들에게 2차 가공을 하게끔 만들어 참여하게 했다. 정리해보자면 방탄소년단은 자신들을 팬들과 같이 불완전한 같은 인간임을 노래와 춤을 통해 전한 아티스트였다는 점이 가장 강력한 그들만의 무기였던 것이다.



949화 오늘의 해석 : 나의 2014년, 그때는 엑소를 보며 다들 으르렁거렸다. 여러분은 방탄소년단의 미래를 예측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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