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131화 / 13장 바슬라와 야만인
장편소설 빛의 여정 131화 / 13장 바슬라와 야만인
바슬라의 왕 "메토네메우스"는 자신에게 온 서신을 읽었다.
"우리의 일이 잘 진행되고 있으니 폐하께선 크게 염려하실 일은 없을 것 같소. 바슬라의 골칫거리였던 아보테 국경의 "이잘"의 목을 베어 같이 보내니 우리의 정성을 알아봐 주시오. 이미 동부를 휩쓸고 있으니 이그네움 확보는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소. 곧 일을 마치거든 찾아 뵙겠소" - 아디일라의 왕 피네로 -
아디일라의 왕이 보낸 서신과 함께 천에 싸여 시간이 지나 쪼그라든 머리가 보였다. 이잘은 아보테와 바슬라 사이에서 신경전을 벌일 때 꽤나 바슬라의 속을 긁었던 국경 전초기지의 사령관이었으며 국경 근처에서 바슬라 사냥꾼들의 활동을 방해하고 항의하며 군사 배치등을 조정했던 자였다. 이제 몸뚱이 없이 싸늘한 머리로 바슬라에게 바쳐졌으니 국왕은 노여움이 풀렸다. 확인을 한 메토네메우스는 수하에게 손 짓을 하며 이만 되었으니 치우라고 명령했다. 다시 천에 싸여진 머리는 왕궁 밖으로 나갔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또 하늘은 먹구름이 끼었으며 눈 발이 날리고 있었다. 왕궁을 지키는 병사들은 한 치의 흐뜨러짐 없이 내리는 눈을 그대로 온 몸에 맞으며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바슬라의 왕궁은 도시 서쪽에 위치해 있었다. 강물의 상류에서 갓 신선한 물을 도시 내에서 처음으로 마실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깔깔 떠들어대는 하녀들은 왕궁에서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일반 백성이 마시기 힘든 최상류의 물로 빨래를 했다. 그리고 그 물이 흘러가면 도시 중간의 누군가가 마시게 될 것이다. 바슬라의 강 줄기 중 하나가 도시를 통과하였고 돌로 쌓은 제방과 수로는 영원히 흐를 듯 한 강물을 시민들에게 공급하고 있었다. 황무지에서 바슬라를 찾아온 상인들이 가장 먼저 찾는 것은 고객도 아닌 해갈 할 강물이었다. 도시 광장에서는 입 벌린 괴물의 조각상에서 물이 흘러나왔다. 조각품에 함부로 다가 갈 수 없도록 경비병들이 광장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왕궁으로 가는 길은 광장을 통과해야만 가능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집무실에서 일 처리를 마저하던 차에 서신이 날라왔고 이제 그것 또한 처리한 채 바슬라 백성들의 상소문을 읽고 있었다. 모피 무역 길드에게서 올라온 문서였다. 골자는 바슬라에 일부 자리잡은 야만인들, 정확히는 아디일라 부족민들이 모피 거래에 초를 치고 있다는 것이다. 사냥꾼들과 거래를 하던 길드가 점차 모피 수급량이 떨어지자 원인을 찾아보니 아디일라인들이 남하하는 바람에, 인근 야지에 동물들을 다 잡아가서 쉽게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왕은 상소문을 읽고 방금 전 이잘의 목으로 화를 달래다가 다시 화병이 도질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최근 후방부대 거점 마련을 핑계로 벌목까지 하는 바람에 나무꾼들과 야만인들이 다투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던 차였다.
공동 목표를 위해 일단은 참는 수 밖에 없었다. 불처럼 일어난 아디일라의 군세를 바슬라가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아보테를 박살내는 데에 만족하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제 오후엔 귀족회 의장이 찾아와 건의를 하는 데 아디일라의 풍습은 세련되고 문명화된 바슬라와는 차원이 달라 도무지 봐줄 수가 없다라는 귀족들의 불만과 이들의 인근 거주를 어느 정도 통제해야 할 것이며 이주민의 유입도 더욱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단순히 풍경의 문제가 아니라 여기저기서 사소한 다툼을 일으키는 것은 귀족들의 내정에 어려움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장이 말하기를
"고귀하신 폐하, 귀족회에서 여러 불만들이 사소한 것에서 중대한 것까지 쏟아지고 있나이다. 어제는 수로 청소에 대해 의견을 나누던 중에 하수도에서 물을 마시는 야만인들을 보고 기겁을 했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이는 단순히 도시 외관의 문제가 아니오라 도시 전체의 위신 문제이옵니다. 이들을 그냥 내버려두다간 거주구역 중 한 곳이 완전 거지 소굴이 될 까 우려스럽습니다."
메토네메우스는 얼굴을 찌뿌리며 의장에게 답하였다.
"아.. 더러운 종자들이군. 위와 아래 물 흐름도 모른단 말인가?"
의장이 다시 말했다.
"예, 폐하. 도시 내 어디든 물이 나온 곳에서 씻거나 마시고 있습니다. 지나가던 시민들이 놀라다가 그들이 장난스레 튀기는 물에 화를 낸답니다."
의장을 만난 후 국왕은 이렇다 할 해결책을 내놓으려는 의지는 없었다. 어서 빨리 이그네움만을 가져오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는 몇 주만 버티면 일이 끝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아보테로 향한 피네로의 진군 속도가 상당히 빨랐고 그의 아들 칼이 이끄는 2군은 서부까지 진입하고 있다는 소식은 피네로의 서신대로 아보테가 관리하고 있는 이그네움 채석장과 저장 창고들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뜻 했다. 자신의 집무실에 위치한 벽난로에서 밝은 광채를 내뿜으며 불타고 있는 이그네움을 바라보며 다른 생각에도 잠겼다.
이그네움의 정체를 그는 알 수 없었다. 흩어진 신의 흔적이라는 것을. 바슬라가 공물을 바치면 아보테는 그간 불씨 운반자로 하여금 이그네움을 하사품으로 주었다. 수도 디고의 기분에 따라 받는 양도 달라졌다. 항상 메토네메우스는 아부를 떨며 일개 교단 사제에 불과한 불씨 운반자를 기쁘게 해야 했다. 그의 콧대높은 자존심도 이그네움을 얻기 위해 내려놓아야 했고 불씨 운반자가 떠나면 그 날 하루종일 기분이 좋지 못했다. 신하들은 그 날은 아무리 급한 일이여도 눈치껏 왕궁으로 감히 가지 않으려 했다.
"헌데 왜 아보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인가? 대륙 동부에는 정녕 저런 돌이 없는 것인가?"
변덕스러운 저주받은 추위에 마치 아보테만이 축복을 받은 것 같아 메토네메우스는 세계 전체가 불공평한 것 같이 느껴졌다. 그 자신이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는 국왕임에도.
132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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