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130화 / 12장 첫번째, 시험
장편소설 빛의 여정 130화 / 12장 첫번째, 시험
로이딘의 마음은 꺾였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고 뒤로는 증인 중 누군가가 그를 해 하려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이제 벽 면에 기댄 채 주저앉아 성 메키아데메스의 찬송을 읆조렸다.
"아아! 믿음의 눈으로 걸어가세, 앞으로 향하여 영광을 쟁취하세! 피데라의 영광이 우리 앞을 비추니 두려워말라! 담대하라 형제여!"
피데라가 나타나 도와주지 않을 까하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죽음이 코 앞인 그에게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로이딘은 실망했다. 하지만 피데라를 욕하고 싶지도 않은 무력한 상태라 찬송만 아무 생각없이 외우다가 증인을 마주할 까 싶었다. 그는 자신이 왔던 통로의 어둠만을 응시하며 아무 대책없이 그렇게 있었다.
잠시 뒤 기억이 났다. 로이딘에게는 시험의 기회라는 게 있었다는 것을. 하지만 이내 또 다시 좌절할 수 밖에 없었는데 시험 도중 목숨을 잃는 것은 기적처럼 살려준다는 개념이 아닌 중도 포기나 탈진 등의 이유로만 가능했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는 도움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를 암살하기 위해 오고있는 증인은 시험과는 무관한 행위를 하러 오는 것이므로 기회를 쓸 이유가 되지 못했다. 고개를 돌려 어둠으로 빠져 죽는 선택도 기회와 무관했다. 그게 설령 시험의 장난이라 할 지언정 목숨이 날아간다면 이 역시 기회와 무관하기 때문이었다. 오직 무서워서 되돌아가 증인들에게 방법을 알려달라 징징거리는 것만이 기회를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암살자에게 통로가 막혀서 꼼짝도 못하는 상황이지만.
로이딘이 기회가 두 번이나 남았음에도 쓰지 못하는 것에 허무함을 느꼈다. 곧 그가 마안탄을 하고 있었을 무렵, 어둠 속에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피데라시스의 로이딘. 오늘 너의 시험은 인상적이었다."
터벅터벅 걸어오는 소리. 점차 커지는 음성.
"네 피데라가 옳으냐? 우리의 피데라가 옳더냐? 결국 이 순간으로 정해지게 되었구나."
목소리가 점점 익숙하게 들렸다. 로이딘은 긴장한 채 서서히 일어나 자세를 잡았고 달려 들어올 공격에 대비했다. 한 발만 더 뒤로 간다면 빨려 들어 갈 어둠이 기다리고 있었다.
익숙한 어둠 속에 익숙한 얼굴이 등장했다. 증인 중 한 사람, 돈테였다.
"나는 기회를 주었고 너에게 도움을 주었다. 왜냐? 너도 나와 같이 피데라를 믿기 때문이지, 허나 나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계약을 맺은 바 나의 심판을 피데라께 맡기기로 하고 말로트와 합의했다."
로이딘의 마음 속 잠시 용의선상에 들어왔던 돈테. 그가 일을 꾸몄다. 로이딘이 순간 분노가 차올라 이를 굳게 다물다가 물었다.
"네놈의 정체가 도대체 뭐야? 도와주고 이제 와서 죽이려 하다니"
돈테가 더 가까이 다가왔다. 상체와 하체가 뚜렷한 점토인간이 철퇴를 가지고 로이딘에게 빌려주었던 투구를 다시 쓰고 있었다.
"우린, 빛의 심판이다. 대의를 위하여 영원한 적과 합의를 맺고 거슬리는 적을 먼저 치기로 한 거지. 피데라께서도 원하시는 일이다."
로이딘은 헛소리라 여겼다. 피데라는 로이딘과 함께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와주지 않는 피데라와 약해진 마음에 의심이 들어 로이딘이 물었다.
"피데라께서 원하신다고? 그걸 네놈들이 어찌 알아?"
돈테가 두번째 시험과는 다르게 갑옷과 철갑 장갑까지 중무장 한 채 로이딘을 마주하며 말했다.
"그 분이 그걸 원하실 게 분명하니까. 왜냐하면 선지자께서 말씀하셨거든"
로이딘은 그게 무슨 소리인가 물어보려던 찰나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으려는 돈테가 달려와 철퇴를 크게 휘둘렀다. 하마터면 뒤로 넘어져 한 순간에 가버릴 뻔 한 로이딘은 벽면에 완전히 붙어 간신히 피하고 다시 들어오는 철퇴에 맞서 도끼를 휘두르며 좌우 벽을 사이에 두고 돈테와 뒤엉키며 맞붙었다. 돈테가 옆으로 휘두르자 철퇴가 벽면을 때려 파편이 튀었으며 로이딘이 휘두르는 도끼 날에 벽면에 홈이 파였다. 시험 때와 다른 돈테의 힘이 느껴졌다. 완력이 너무 강한 돈테에게서 로이딘은 앞선 시험에서 체력을 소진 한 지라 힘 싸움에서 점차 밀렸다.
물러나는 로이딘을 돈테는 투구 안에서 웃으며 말했다.
"하하! 너는 여기서 오늘 끝난다. 말로트와의 거래도 이제 끝나는 것이다!"
로이딘은 머릿 속 자신을 괴롭혔던 절망 그리고 돈테가 입 밖으로 꺼낸 "말로트"로 인하여 돈테와 빛의 심판이 정상적이지 않음을 실감했다. 그 말에 약간의 투지가 생겨났고 틈을 노려 돈테의 어깨를 도끼로 세차게 내리치자 점토인간의 살덩이가 흉부까지 갈라졌다. 모든 것이 점토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기괴하게 잘려진 몸통에 로이딘은 잠시 놀랐고 돈테는 아랑곳하지 않고 재차 맹렬히 달려 들었다. 무기로는 그를 없앨 수 없을 것 같아 로이딘은 바닥에 놓인 불타고 있는 이그네움 횃불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돈테가 달려와 그의 복부를 차는 바람에 넘어졌고 등 뒤엔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허공이 기다리고 있었다. 로이딘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주문을 외치기로 했다. 한 번에 될런 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살기 위해 모든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피데인티, 피데라여 피조물이 빛으로 어둠을 뚫게 하소서!"
그의 입에서 외쳐지고 현상으로 맺혀지는 주문. 로이딘은 여전히 적응하기 어려운 강렬한 빛이 솟아남을 목격했다. 도끼에 새겨진 각인이 강렬한 빛을 내고 있었으며 점토인간은 자신의 아래에서 쏘아진 빛으로 괴성을 질렀다. 통로가 떠나갈 정도로 비명을 지른 그는 이리저리 두 동강난 몸뚱이로 쏘다니다가 로이딘을 비켜 허공을 향해 달려갔다. 로이딘의 주문은 돈테 뿐만 아니라 어둠 그 자체를 박살 내버렸다. 하늘에서 내려온 빛이 아닌 땅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 허공에서 뿜어져 나온 빛 기둥들이 높이 솟아 공중에 투명하게 놓여있었던 바닥의 면들을 비추었다. 그제서야 로이딘은 이 시험은 길이 있었고 자신의 주문으로 해결할 수 있었음을 깨달았다. 한편 돈테는 빛을 뿜는 허공으로 고통에 몸을 날렸다. 얼마나 높이 떨어졌는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비명소리가 계속 이어져 오다가 몇 초가 흐르고 나서야 잦아들었다.
빛은 동굴 천장마저 뚫어버린 듯 했다. 천장 안에서 맺혔을 땐 그 끝이 강렬했지만 깔끔한 직선으로 뻗어 나감을 보고 로이딘은 그리 여겼던 것이다. 그 현상이 불러 올 결과에 대해 아직 그는 몰랐다. 빛이 비추는 공중에 떠 있는 바닥은 직선로가 아닌 군데군데 비어있는 위험한 통로였다. 설령 갈 수 있음을 알았다 하더라도 잘못 디뎠으면 돈테처럼 되었을 게 뻔했다. 새싹 같은 사람 크기와 비교하면 빛 기둥은 나무마냥 로이딘을 숲처럼 감싼 채로 그를 지키고 있었다. 빛나는 바닥을 조심스레 밟기 시작해 반대쪽 길이 보이는 동굴까지 도착했다.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때 마치 신호인 것처럼 모든 빛들이 먼지가 퍼지듯 깨져 사라졌다. 다시 어두워진 통로 안에서 로이딘은 뒤를 돌아보았다. 허공이 되살아난 듯 모습을 갖추었다. 그가 건너온 투명 바닥도 다시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돌아보지 아니하고 통로의 끝을 향해 달려갔다. 혹시나 하고 경계는 늦추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곧 로이딘이 위층 바닥이 뚫리면서 떨어져 기절했던 처음 그곳에 도착했다. 시험이 끝난 게 아닌지 또 나가는 곳이 어디인지 이리저리 둘러보던 때에 그를 깜짝 놀라게 했던 공중의 불덩이가 다시 나타나고 근처 벽면에 초상화 두 개가 등장했다.
이젠 돈테가 사라지고 여성과 남성 증인만이 있었다. 남성 증인이 말했다.
"너는 모든 시험을 통과했다. 덕분에 우리도 한결 마음이 편해졌지."
로이딘이 물었다.
"저는 그러면 나가게 되는 건가요?.. 돈테가 세번째 시험 때 나를 죽이려 했어요"
그러자 이번에는 여성 증인이 말하기를
"알고 있어. 사실 이곳은... 우리 부부가 몰래 살던 곳이었지. 성묘 수호대의 일원이던 우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유를 위해 빛의 심판의 일원이 되었어. 속았던거야. 그들은 우리를 가만히 두질 않았고 돈테를 보내 우리가 사는 곳까지 찾아오게 했어. 우리로 하여금 성묘 수호대의 극기 훈련법을 협박하다시피 해서 알아내서 일종의 선별자를 추리는 시험장을 만들었어. 우리는 돈테와 함께 걸려든 혹은 찾아온 자들의 시험을 지켜보는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었지. 이곳을 내어주고 협조하지 않으면 성묘 수호대를 공격하겠다고 말이야. 자기 형제들을 학살하려는 미친놈들을 도무지 막을 수 없어서 우린..."
로이딘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은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자신들의 집을 되 찾은 것에 기쁜 건지 후련한 건지 부부는 밝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시험 때와는 확연히 다르게.
"고마워. 이런 시험을 곳곳에 설치해 만들어 놓고 그들이 키울 선별자를 고르거나 적대자를 제거하고 있을 거야. 네가 어딜 가든지 피데라의 축복이 함께하길 빌게. 우린 당분간 좀 쉬어야 겠다."
로이딘은 조용히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초상화는 사라졌다. 동시에 공중의 불덩이도 사라지며 그가 갇힌 벽 한 쪽이 갈라지더니 빛이 새어 들어왔다. 문처럼 열려지는 벽은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들여보냈고 로이딘은 감개무량하듯 팔을 크게 펼치며 산들바람을 맞이했다. 하루 안에 끝난 시험이었지만 1년 같았던 고됨이었다. 그는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노래했다.
"아아! 믿음의 눈으로 걸어가세, 앞으로 향하여 영광을 쟁취하세! 피데라의 영광이 우리 앞을 비추니 두려워말라! 담대하라 형제여!"
131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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