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404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사백 사 번째
앞서 현재 중국의 국제 관계에 대한 태도를 이해하는 데 그 기원과 문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술했다. 황제를 중심으로 구축된 유교적 시스템은 한족 중심의 단일 정체성으로 사회를 안정화시켰다는 것에 의의를 둘 수 있겠다. 한나라가 망하고 다시 분열 양상을 보이다 새로운 제국의 등장이 반복적인 패턴으로 중국역사에 등장한다. 오랑캐라 깔보던 흉노부터 몽골과 여진족에게 대륙이 집어삼켜졌지만, 한족 중심의 시스템은 무너지지 않았다.
과거 이리저리 침입해 오던 북방 유목민족도 자신들의 약탈전략이 화약의 발달로 서서히 먹히지 않는다는 점도 있었다. 또한 대륙을 한번 휘어잡았던 경험도 있었기에 저 성벽너머 도시와 적이라 불리는 머나먼 친척들이 그리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유목 민족의 한계는 정주 문명의 공동체 수명과 달리 상당히 짧았기 때문에 유용하고 안정적으로 느껴지던 한족 중심으로 동화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청나라 말기, 구심점을 잃은 대륙은 군벌과 군벌들 간의 세력 다툼으로 심화되었다. 이를 그대로 예전버전으로 표현해보면 춘추전국시대의 왕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비약이 아니었던 게 군벌이 차지한 영역은 단순히 지역 통제를 넘어 자체적인 군수공장, 군대 제식화를 어느정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격렬한 시간을 보내고나서 외세의 침입과 함께 사분오열 되었던 대륙의 승자는 결국 마오쩌둥의 홍 군이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승리한 홍 군의 일만 킬로 대장정은 신화가 되었고 마오쩌둥은 제2의 진시황이 되었다. 그의 절대적 권위는 공산주의 시스템 특유의 상명하복 구조와 함께 시너지를 냈다. "말 위에서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는 교훈은 마오쩌둥도 피해 갈 수 없었다. 현대판 황제로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행한 대약진 운동은 2차 대전의 모든 국가의 사망자수와 얼추 비슷할 정도로 중국인민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정책적 실패로 자리가 위태로워지자 현대판 분서갱유인 문화 대혁명을 일으켜 공칠과삼이라고 평가하기에는 너무나 큰 스케일의 상처를 남겼다. 이후 문화적 기반들의 제 발목 자르기가 계속되어 21세기 중국의 소프트 파워는 여전히 미진한 편이다. 레닌과 당의 권위, 개인숭배의 정점을 찍었던 스탈린주의로 비롯된 공산주의가 중국에 유입되면서 마오쩌둥이라는 황제를 낳게 되었고 농민 중심의 공산 사회 개편은 다시금 제자백가의 영혼들을 불러 모은 셈이었다.
유교 특유의 가치관과 결부된 중국식 공산주의는 내외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마오쩌둥 사후 덩샤오핑과 장쩌민은 작금의 대약진과 대혁명으로 작살난 중국 수습을 위해 강경책과 유화책을 써가며 천안문 시위를 진압하기도 하고 남부 지역에 무슨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외치며 경제성장을 이끌어낸다. 이때까지는 도광양회(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린다)로 불릴만한 외교책을 써가며 자본주의 세계의 착실한 공장이 되어 몸집을 불려나간다.
현재의 중국과 시진핑. 국제관계는 유무형의 문화적 소실에 길을 잃어버린 중국이 그나마 끄집어낸 것 중 하나가 민족주의적 유교 가치관을 더해 전통적 외교를 고수하는 것이다. 달리 보면 계급타파에 앞장서는 공산주의와 계급 안정화에 힘을 썼던 유교가 어울리지 않는 듯 싶지만, 유교관의 개념을 선택적으로 택해 내부적으로 인민에게 중국공산당을 중심으로, 외부적으로는 과거의 통일국가들이 그러했듯 한족중심의 구시대적 사고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21세기에도 조공외교를 원하고 있다. 이제 G2의 위치에 오르자 발톱을 드러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