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과거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시간이 계속 흐르다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노라면 스쳐 지나간 순간들과 수많은 발자국이 찍혀있다. 그것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는 과정, 인류가 더 나은 미래를 구축하기 위한 성찰적 활동이 바로 역사인 것이다. 내가 어린시절부터 역사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무수한 전쟁사와 극적인 스토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내겐 역사란 집단적 차원의 이야기가 아닌 한 사람의 이야기처럼 들려온다.
일단 나는 "총균쇠"의 구체적인 내용을 잘 모른다. 어디서 주워들은 거를 가지고 주섬주섬 내 이야기로 전개해보고자 한다. 역사에는 지정학적 관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마치 개인에게 있어 운명과도 같은 관점이며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관점일 수도 있겠다. 이 지정학이라는 것은 땅의 위치에 따라 세계의 각 나라의 패권과 국가의 미래도 좌지우지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유럽사 관점으로 제국주의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 것은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리고 영국이 바다로 향해 뻗어 나가기 쉬운 위치에 있었다는 점이 역사의 운전대를 어디로 돌릴지 결정지었기 때문이다.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고 동유럽까지 위협하면서 더 이상 지중해는 유럽과 기독교 문명의 놀이터가 아니었다. 이제 주인이 바뀌었고 방 빼고 거리에 나앉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때 지중해의 무역로가 막히자 활로를 뚫어야 했다. 마침 콜럼버스와 바스쿠 다가마의 인도 발견과 마젤란 항해 등으로 대표되는 일련의 새로운 세계의 인식 확장은 코너로 몰린 유럽이 새로운 분출구로써 신항로 개척에 매진하게 되는 중요한 기회였던 것이다. 이에 관해서 지중해 패권이 넘어갔다는 단순한 이유도 있었지만 종합적인 관점에서는 종교적 열의가 기저에 깔려있었던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오스만 무역로는 열려있었다. 즉 거래할 수 있는 건 거래했고 충분한 협상만 할 수 있다면 중국까지 실크로드는 문제없이 이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문제는 중세의 냉전과도 같은 이념갈등이 유럽에 위기감을 불어 일으키고 있었다는 점. 흔히들 경제적 이유와 정치사회적 이유로 대항해시대를 분석하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이데올로기 관점에서 해석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필터링해주시길 바란다.
이 주장을 강화하는 근거는 종교는 지금도 그렇지만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문화적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는 구성원들에게 보이지 않는 힘을 생활 전반에 끼치고 있기 때문에 통계를 주장하고 양적 연구를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전자의 정치 경제적 수치를 제시하는 것이 대단히 유용하고 선호할지 모르겠으나 단순히 그런 이유에서였더라면 오스만을 남유럽이 북유럽 보듯이 혹은 북유럽이 남유럽을 보듯이 서로 그냥저냥 견제 혹은 적당한 교류로도 기존 지중해의 역할은 충분히 작동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정학적 관점으로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내 뇌피셜이다. 당연히 뻗어나가기 좋은 위치는 전성기를 맞이하기 유리하다는 점과 역사를 송두리째 바꿀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지금 당장 접하는 수많은 정보들도 어떻게 보면 일부 구성원의 극소수의 행동 정보에 불과하듯이 인류라는 전 지구의 서사로 확대하면 이는 온갖 변수들이 넘치고 넘침을 의미한다(물론 그런 점을 들어 주류관점을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은 핑계이겠지만).
미국이 초강대국이 된 이유는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바다 한가운데 위치한 거대한 단일 국가이기 때문이다. 한반도가 화약고인 이유는 대륙과 섬나라 패권 사이에 낀 완충지대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정의하기 이전에 미국으로 건너가고자 했던 이민자들의 동기와 이야기 그리고 한반도가 지금의 위치에 오기까지 이념적 갈등으로 나누어진 이유에 대해서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점이 있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