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십자군의 이면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599

by 포텐조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오백 구십 구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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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를 재미나게 읽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작가에 대한 논란과 역사적 편견, 완전하지 않은 검증까지 겹쳐서 십자군 전쟁의 역사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볼 필요가 있었다. 대학생때도 역사 교양과목에서 십자군을 집중적으로 다루어 수업을 받았었는데, 그때도 시오노 나나미의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너무 겉핥기로만 파악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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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이라 한다면 종교적 광신성에 의해 교황과 영주들이 부르짖으며 성지를 향해 군중이 무기를 들고 달려가 기독교의 적들을 박살내려는 이미지를 떠올리곤 한다. 그나마 균형 잡힌 시각이라면 이슬람의 입장과 그들이 취한 반응 또한 살벌했다는 점? 종교라는 이름으로 피가 피를 부르는 전쟁이었다고 생각하는 십자군 전쟁에 무엇이 보충해야 할 부분인가 묻는 다면, 기본적으로 외. 교. 전을 깔고 가야 했던 것이 바로 십자군 전쟁의 배경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 대규모 종교전쟁이라 생각되는 역사의 이면에 계산기를 두드리는 이성이 필요했다는 이야기다. 우르바노 교황의 입장과 각 영주들의 입장, 그리고 빠져서는 안 될 동로마 제국의 입장, 당시 예루살렘의 입장 등등 각자 물질적 손익계산서와 명분과 종교적 손익계산서등 고려할 게 많았다. 그리고 이 전쟁을 단순한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내 뇌피셜의 근거는 지금의 국제전과 똑같이, 수많은 나라(왕과 영주)들이 연합국식으로 뭉치고 싸우고 갈등을 빚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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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9차의 십자군 파견, 예루살렘 탈환 혹은 실패, 유지와 실패를 반복하는 역사가 계속 흐르는 동안 4차 십자군의 막장성은 십자군이 성지탈환이라는 종교적 단일동기보다는 보다 더 복잡스런 이유가 있음을 증명한다. 오늘날 대규모 병력을 저 수천 킬로 떨어진 곳을 이동시키는 것은 강대국이나 할 수 있는 것처럼 중세는 그 수준을 더더욱 달리했다. 상업 몰빵으로 번영했던 제노바나 베네치아 공화국이 그나마 이를 감당할 수준이었고 십자 연합군이 이들에게 지불해야 할 부채는 어마어마했다.


결과적으로 4차 십자군은 부채 갚기와 당시 동로마의 이전의 실책과 갈등으로 인해 함께 뱃머리를 예루살렘이 아닌 콘스탄티노플로 돌리게 했고 그 결과, 콘스탄티노플은 같은 종교를 가지고 있던 형제들에게 살육과 강간, 약탈을 당하고 심지어 교회로 피신해 자비를 빌던 모든 이들도 피 묻은 검을 피할 수 없었다. 다른 의견으로는 4차 십자군이 유별난 것이다라는 주장이 있지만, 공식적인 십자군의 원정중 하나로 카운트 되며 그 영향은 향후 원정에도 크게 미쳤다. 교황도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막으려 했으나, 실패한 원정의 흑역사 중 하나로 기록된다.


만약 순수한 종교적 동기와 열의로 인한 종교전쟁이라 한다면 오히려 종교개혁 이후 구신교도들의 전쟁이 더 가깝지 않나 생각한다. 물리적 충돌 이외에도 신교도들의 독립과 교리 체제를 완비해 나가는 과정까지를 살펴보면 그렇고 종교의 목적성을 가지고 종교전을 이야기한다면 니케아 공의회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나 움마 후계자 논쟁이 더 맞지 않을 까?



[매일마다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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