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764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칠백 육십 사번째
극과 극을 경고하고 세상을 다양성있게 포용하고자 하는 시선을 위한 비유로는 흔히 빛의 스펙트럼, 색깔들을 이야기한다. 아니면 그냥 스펙트럼 범위 자체를 이야기하며 그 중 어딘가의 위치를 현실이라며 짚는다. 그런데 오늘 몸소 체험하며 또 다른 비유가 생각났다. 대중 목욕탕에서 탕에 들어가기 전 샤워를 하는 데 수도꼭지를 온수로 틀었다 된통 당할 뻔했다. 또 너무 찬 물을 틀자니 몸서리 쳐졌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정부의 신중치 못한 시장 개입에 대해 샤워실의 바보라는 비유를 사용했다. 이 바보는 물을 트니 갑자기 찬 물이 나와 놀래서 오른쪽으로 돌리니 이번에는 뜨거운 물이 나와 된통 당하고 다시 찬 물로 반복하며 틀어서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프리드먼은 자유주의, 즉 시장개입을 최소화하는 경제 노선을 제창한 거두로써 개인적으로 케인즈쪽이 와닿긴 하지만 케인즈학파의 고전적인 정부개입에 따른 문제를 너무 왼쪽도 오른 쪽도 아닌 적당한 쪽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즉 이 말은 좌우로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고 분명한 기준이나 목적에 맞는 균형을 유지보수해야한다는 이야기로 나는 받아들였다. 사실 정치적인 영역에서도 중립 기어 놓는다라는 말처럼 중립적인 입장이 위에 말한 균형이나 기준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좀 더 복잡하다. 흔히 기울어진 운동장에 중립으로 놓으면 그냥 차는 기울어진대로 갈 수 밖에 없듯이 대부분의 영역에서 기준과 균형을 찾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하다 못해 천장의 전등 전선이 나가면 교체하는 것도 균형을 찾기 위한 노력 중에 하나인 것인데, 나아가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중용이란 단순 중립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더욱 아니다. 어떻게 보면 중립의 중립의 느낌이기도 한데 무슨 말이냐면 사람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자질인 미덕은 인간의 악덕과 악덕 사이에 위치한 그 무언가다. 그런데 여기서 중용이란 악덕 사이에 끼어 있는 미덕의 위치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어딘가에 위치해 있는 그 미덕이 넘치거나 혹은 모자르거나 할때 문제가 생기는 것인데 그래서 그것을 바로 잡은 상태가 중용이라 말하고 있다. 이 말은 기계적 중립을 조심하라라는 의미로 들린다. 일단 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선과 악의 양 극단에서 논하는 게 아닌, 악과 악 사이에 위치한 선에 대한 절제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선이 흔들리면 그것조차 악이 되어버리는 것이고, 쉽게 생각해서 5였던 미덕이 악덕으로 변해서 다시 중용으로 악덕 사이에 있는 미덕을 잡아 유지했다면 그 위치가 3이나 8이어도 거기서 치우치지 않는 것이 바로 미덕이라고 이야기 한다. 옹 잼미따(샤워실 방금 나온 바보 아닙니다)
[매일마다 마주하는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당신의 좋아요, 구독은 작가에게 창작의 에너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