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개안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763

by 포텐조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칠백 육십 삼번째



petri-heiskanen-vqO_1fUCNxg-unsplash.jpg

보이지 않던 것을 보는 것, 덮혔던 눈을 뜨는 것. 그것을 개안이라 한다. 우리는 매일 일상에서 잠 들고 일어날 때 개안, 즉 눈을 뜬다. 하지만 그것에 "개안"이란 단어를 쓰며 표현하지는 않는다. 그냥 눈 뜨고 일어났다 말하지. 진정한 개안은 보이지 않던 것을 보는 것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부분은 주제가 워낙 많아서 뭐라 말하기가 힘들다. 다만 자기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았던 것이라는 공통점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izabelly-marques-cB0rtI_FvNI-unsplash.jpg

여기서 보는 것은 결국 인식, 지각을 의미한다. 아는 것. 모르던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개안"되었다라는 말을 쓴다. 일상에서는 크게 쓰는 단어도 아니고 낯선 한자 단어이기도 하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크게 두가지로 함축 해볼 수 있지 않을 까? 첫째는 객관적 사실을 자기는 모르다가 어떤 원인에 맞닥뜨려서 그제서야 알게 되는 경우일 것이다.


둘째는 주관적 느낌인데 현상에 대해 고상한 지식으로 알게 된다거나 흔히 감정적 체험으로 마음이 바뀔 때 개안이 되었다고 말을 한다. 종교를 받아들일 때 혹은 철학적 고찰을 깨닫게 되었을 때 등등. 대부분은 두번째 정의인 주관적 느낌이나 경험에서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무지의 세계에서 벗어나 눈꺼풀을 올리니 밝은 세계가 나타난 것처럼 180도 바뀌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michael-mcauliffe-QnfePA4j-IQ-unsplash.jpg

개안의 순간을 마련해보려 해도 이런 순간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지가 않다. 이미 전혀 다른 모습으로 경험을 한 것은 자기가 알던 평소 세계의 규칙성을 완전히 뒤바꾼 채로 만나게 된 것이다. 정의를 다시하는 경우가 이런 개안적 상황을 맞이할 확률이 높이는데, 대부분은 수동적인 입장에서 원인과 사건의 파도속에서 빠진 채로 헤매게 된다. 정의를 다시하는 것은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것을 다시 보고자 하는 열린 마음이다.


열린 마음이 있어야 눈도 같이 열리게 된다. 정의를 다시 하려는 노력도 그리 흔치 않다. 왜냐하면 사실관계를 떠나 그것으로만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필요치도 않고 필요한지도 모르고 있다. 한편 다른 방법으론 장차 떠질 눈을 위해 감은 상태에서 준비하는 것이다. 아직은 모르지만 혹은 이게 뭔지 모르더라도 접근하고서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기만의 숙고를 가진 이는 장차 자기만의 숙고를 거쳐 개안의 정의에 가장 근접한 주관적 느낌에 의해 눈이 떠지게 된다.



[매일마다 마주하는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당신의 좋아요, 구독은 작가에게 창작의 에너지가 됩니다.]



이전 05화[인문] 왜 우리나라는 땅을 넓힐 수 없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