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임말로 대화하는 아이들> 16화 : 이 글을 쓰는 이유
독자 선생님이 업무와 관련하여 우리 교실을 방문했다. 독자 선생님은 5학년 담임, 나는 4학년 담임으로 우리는 인사만 하는 사이였다. 문 앞에서 서서 짧게 업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방문 목적을 달성한 그녀가 자신의 교실로 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가 다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선생님….”
나는 교실 문을 닫으려다가 도로 열었다. 그녀가 머뭇거리다 물었다.
“개인적인 질문이 있는데, 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들어와서 이야기할까요?”
나는 교실 문을 활짝 열어 독자 선생님을 맞이했다.
그녀는 우리 교실 이곳저곳에 눈길을 돌리며 질문했다.
“선생님, 학급 운영을 어떻게 하시는 거예요? 선생님네 반 아이들은 특별해 보여요. 저는 아직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독자 선생님은 발령받은 지 2년이 채 안 된 새내기 교사였다. 그전 해에는 전담 교사를 맡았고, 담임 경험은 그 해가 처음이었다. 학급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모르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학급 경영 노하우를 담은 책과 영상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도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공감만 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전문가들이 알려주는 수많은 방법 중 단 하나라도 실천하고 우리 교실에 적용해야 나의 학급 경영 방법이 된다. 2년 차 교사에게는 실천 사항을 찾는 일조차 큰 과제일 터였다.
독자 선생님이 우리 학급을 특별하게 생각해 주어서 고마웠다. 학급 경영이 어려운 자신을 인지한다는 것이 발전적이라고 생각했다. 젊은 선생님이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참 예뻤다. 나의 학급 운영 방법을 궁금해하는 후배 교사가 있다니, 이제는 내가 누군가의 선배가 될 만큼 경력이 쌓였나 보다 새삼스러웠다. 사실 전혀 예상치 못한 독자 선생님의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하나 막막하기도 했다. 그러나 친하지도 않은 중견 교사에게 힘들게 학급 운영 방법을 물었을 그녀에게 주먹구구식 대답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독자 선생님의 시선을 따라가기로 했다. 선생님이 우리 교실에서 관심을 보이는 것부터 소개했다. 칠판에 붙은 긴 줄넘기 급수표를 보는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모둠을 구성하여 1단계 ‘긴 줄 안에서 10번 넘기’부터 5단계 ‘긴 줄 안에서 5번 공 튀기기’에 도전하고 있다고. 독자 선생님은 흥미 있어하며 물었다.
“재밌을 것 같아요. 그런데 4학년들이 이렇게 어려운 걸 할 수 있어요?”
“잘하는 아이가 어려운 친구 도와주면 가능해요.”
“모둠 활동하면 싸우지 않아요? 특히나 체육 시간에는?”
“높임말로 대화하면 싸우지 않아요.”
가위바위보 인사 카드를 올려다보는 그녀에게 설명했다.
“우리 반은 아침마다 가위바위보 인사를 해요. 담임과 가위바위보에서 이기면 ‘행복하겠습니다.’ 비기면 ‘공감하겠습니다.’ 지면 ‘배려하겠습니다.’ 큰 소리로 인사해요.”
“아침부터 예쁜 말을 하네요. 가위바위보가 재미있기도 하고요.”
“매일 아침 소리 내니, ‘행복하겠습니다. 공감하겠습니다. 배려하겠습니다.’라는 말이 아이들 입에서 술술 나와요.”
“아이들이 평소에도 그런 말을 한다고요?”
그녀는 놀라며 물었다.
“높임말을 쓰니까 이보다 더 예쁜 말들도 부끄러워하지 않아요. 진짜로 행복하고, 공감하고, 배려하게 돼요.”
이번에 독자 선생님은 주제 글 공책을 펼쳐 보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다양한 주제로 글을 쓰고, 친구 글에 댓글을 달아요. 아이들이 주제 글 쓰는 시간을 기다려요.”
“그런데 댓글을 높임말로 쓰네요.”
“우리 반은 높임말로 대화하니까요.”
아이들의 댓글을 살펴보던 그녀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친구를 ‘○○ 씨’라고 부르는 거예요?”
“네. 이제는 ‘○○아’라고 하는 것이 이상하게 들린대요.”
나는 한 아이의 책상 속에서 ‘행복 일지’를 꺼내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우리 반 학급 특색 중 하나가 ‘1일 1 칭찬 제도’에요. 매일 칭찬받고 칭찬 내용을 기록해요.”
‘행복 일지’를 한 장씩 넘겨보던 그녀가 말했다.
“친구들이 한 칭찬도 많이 있네요. 아이들끼리 실제로 칭찬을 이렇게 많이 해요?”
“실제로는 적혀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이 해요. 처음엔 담임이 한 칭찬만 기록했는데, 점점 친구들끼리 하는 칭찬이 많아져요.”
“어떻게 아이들끼리 수시로 칭찬을 주고받을 수 있지요?”
“높임말을 쓰니까 저절로 그렇게 되더라고요.”
한참 동안 독자 선생님과 우리 교실을 투어 했다. 이 밖에도 학급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활동을 소개했다. 그녀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몇몇 활동은 자기 학급에 적용해 보겠다고 했다. 또 어떤 활동은 놀라워하며,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신기하게도 그녀의 질문이 무엇이든 나의 대답은 결국 하나였다.
“높임말을 써서 그래요.”
독자 선생님은 나에게 학급의 이모저모를 알려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긴 시간 빼앗았다며 미안해하기도 했다. 고마워하는 마음은 이해했다. 그러나 그녀가 나에게 절대 미안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경험을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기 때문이다. 나의 학급 운영에 관심을 가지고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쁨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교실을 나서며 독자 선생님이 말했다.
“선생님이 책을 쓰시면 제가 1등 독자 할게요. 높임말 쓰는 학급 운영 꼭 책으로 써주세요.”
그때의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열심히 아이들을 지도하며 나만의 색깔 있는 학급을 구축하고 있었지만, 기록의 필요성을 전혀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하다. 독자 선생님은 왜 나에게 책을 써달라고 했을까? 그녀의 말은 어쩌면 예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글을 쓰게 되었다. 학급 운영과 인성교육에 어려움이 있는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독자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후배 교사가 고개 끄덕일 수 있는 책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높임말로 대화하는 예쁜 아이들이 이 땅에 많이 탄생하기를 기도하며, 나의 학급 경영 노하우를 글에 녹여 담고 있다. 내 글을 읽어줄 독자가 단 1명이라도 있다는 희망, 몇 년 동안 마음 한편을 차지하고 떠나지 않던 독자 선생님의 말.
“높임말 쓰는 학급 운영 꼭 책으로 써주세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