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임말로 대화하는 아이들> 15화 : 전교생 높임말 프로젝트
“선생님, 실패했어요. 4학년 동생들의 반대가 너무 심했어요.”
“아휴! 답답해. 이 좋은 걸 왜 안 한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작년에 선생님 반이었던 5학년 동생들은 아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안 써 본 4학년이 말도 안 된다고 결사반대였어요.”
전교 회의에 갔던 6학년 우리 학급 임원들이 교실로 돌아왔다. 수업 마치고 참석한 전교 회의였다. 회의가 끝나면 바로 귀가해도 될 터였다. 그러나 담임에게 속상한 회의 결과를 알리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기 위해 다시 교실로 왔다.
전교 회의 전 학급 회의를 진행했다. 우리 학급 특색인 ‘높임말로 대화하기’를 전교생 프로젝트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높임말 사용의 좋은 점이 너무 많다는 것이 근거였다.
“높임말을 사용하는 우리 반은 싸움이 없습니다. 전교생이 높임말을 쓰면 학교폭력을 예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친구를 부를 때 ‘야!’ 대신 ‘○○씨’ 존칭을 사용하기 때문에 서로를 존중받는 느낌입니다.”
“높임말을 쓰면 갈등이 생겨도 대화로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 말이 다 맞았다. 우리 반은 높임말로 대화했다. 교사가 학생에게 이야기할 때, 친구들끼리 대화할 때도 높임말을 썼다. 서로를 ‘○○씨’라 불렀다. 처음은 항상 어색하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사용하다 보면 어느새 습관이 되어 있다. 예쁜 말은 예쁜 행동과 생각을 낳는다. 우리 학급은 매일 공감, 이해, 배려, 칭찬, 행복이 넘쳤다. 싸움은 일어날 수 없었다.
좋은 것은 모두 함께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아이들의 생각이었다. 학급 임원들이 전교 회의에 참석하여 ‘전교생 높임말 프로젝트’를 제안하기로 했다. 친구들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잘 어필하고 오겠다며, 부푼 포부를 안고 전교 회의 장소로 출발했다.
교실로 다시 돌아온 그들은 실망이 컸다. 동생들의 반대로 ‘전교생 높임말 프로젝트’ 의견은 채택되지 않았다. 좋은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임원들은 많이 속상해했다. 답답한 마음이 더 큰 듯했다. 높임말을 써 보지 않았으니 좋은 것을 모른다며. 일단 한 번 써 보면 다 알게 될 것을. 그리고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죄송해요. 높임말 마중물이 되고 싶었는데.”
“선생님한테 왜 미안해요? 여러분이 자발적으로 한 것인데. 괜찮아요. 너무 애썼어요. 동생들이 몰라서 그러는 것이니까, 우리가 더 열심히 높임말 사용해서 좋은 모습 보여주면 돼요.”
학급 임원들을 위로하고 집으로 보냈다.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말을 곱씹어 보았다. 아이들은 높임말의 마중물이 되고 싶다고 했다. 얼마 전 도덕 봉사 단원에서 ‘마중물’이라는 새로운 낱말을 공부했다. 배운 것을 일상 대화에 적용한 것이었다. ‘마중물’은 펌프에서 물이 나오지 않을 때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위에서 붓는 물을 뜻한다. 마중물을 한 바가지 붓고 펌프질을 하면 물이 콸콸 나오기 시작한다. 마중물이 깊숙이 말라붙어 있던 물을 끌어올리는 자극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 반 아이들은 전교생이 예쁜 말로 대화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 높임말 마중물이 되고자 했다.
다음 날 아침 학급 임원들이 전교 회의 결과를 전달했다. 나머지 아이들도 아쉬워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몇 시간 뒤 전교 자치회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전교생 높임말 프로젝트’ 자율적 실천을 결정했다고 했다. 담당 선생님은 말했다.
“학생들의 주장이 너무 논리적이고 확고했어요. 아주 열정적인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그 마음을 알아서 그냥 넘어가기 아쉬웠어요.”
전날 회의에서 찬성자 과반수가 되지 않아 의견은 채택되지 않았다. 전교생 의무 시행은 어려웠다. 그러나 고학년 위주의 자율 실천을 결정했단다. 우리 반 임원들의 열정적인 모습 덕분이었다. 좋은 것을 나누고픈 마중물 진심이 통했다.
그 후 ‘전교생 높임말 프로젝트’는 성공했을까? 아니다. 전혀 성공하지 않았다. 자율적 실천이 공지되었지만, 그야말로 자율적으로 흐지부지 끝이 났다. 높임말 사용의 시작은 교사와 학생이 모두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학교 구성원 모두의 합의와 의지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 반 학생들은 또 실망하고 답답해했을까? 아니다. 전혀 속상해하지 않았다. 대신 더 열심히 높임말로 대화했다. 학급에서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높임말 사용을 실천했다. 좋은 것을 몸소 보여주는 확실한 마중물이 되기 위해서였다.
학부모님들의 생생한 증언이 이어졌다.
“학원 가방 주려고 교문에서 하교하는 아이 기다리고 있으면 우리 반 아이들은 딱 티가 나요. 저 멀리서부터 높임말로 대화하며 오거든요.”
“선생님, 도대체 아이들한테 무슨 마법을 쓰신 거예요? 자기들끼리 통화할 때도 높임말을 해요. 어른과 통화하는 줄 알았어요. 심지어 문자도 높임말로 보내던데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우리 ○○씨가 집에서도 가족들에게 높임말을 해요. 이제 습관이 되었나 봐요. 저까지 ‘○○ 씨’ 부르게 되었어요. 호호호~ ”
“선생님, 학교에서는 높임말 전파를 못 했지만, 제가 학원에서 높임말 프로젝트를 제안했어요. 이제 학원 친구들이 모두 높임말로 대화해요.”
똑순 씨는 학원에서 높임말 마중물의 역할을 똑 부러지게 했다.
우리 반 아이들이 그토록 ‘전교생이 높임말 프로젝트를’ 원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높임말을 실천하며, 스스로 인간관계에서 소중한 덕목을 알게 되었다. 예쁜 말을 함으로써 행동이 바뀌고 생각이 변화함을 몸소 체험했다. 그리고 긍정의 변화를 학교 전체가 느끼기를 바랐다. 좋은 것을 나누고 싶었다. 말라붙은 펌프의 물을 끌어당기듯 아이들은 예쁜 말이 메마른 학교에 긍정의 변화를 전파하고자 자발적으로 높임말 마중물을 자처한 것이었다.
전교생에게 높임말을 전파하지 못한 채 아이들은 졸업했다. 그러나 좋은 것에 대한 확고한 신념, 좋은 것을 함께 하자고 제안할 수 있는 용기, 좋은 것을 꾸준히 실천하는 실행력만큼은 아이들의 재산이 되었을 것이다. 전교생 높임말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힘은 아이들 내면에 고스란히 남아 그들이 성장하는 에너지가 되리라 확신한다. 높임말로 대화하는 아이들은 앞으로도 좋은 것을 알아보고 실천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가꾸는 일에 앞장설 것을 담임은 굳게 믿는다.